"차라리 2017년 이전이 더 나았다"..인국공은 지금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인국공 갈등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대통령의 방문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2017년 5월12일, 취임 3일 차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현장에 있던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직원들은 환호했다.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소방대 비정규직 노동자 A씨는 대통령과 대표로 악수도 했다. 그로부터 3년9개월, 대통령과 맞잡았던 A씨 손엔 아침마다 피켓이 들린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그는 지난해 여름 해고됐다.
2020년 6월 '인국공'은 하나의 '사태'로 불리게 됐다. 비정규직 중 일부인 2143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겠다는 공사의 발표가 발단이었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몇 차례 진행해 온 노·사·전(노조·공사·전문가) 논의를 무시한 결정이라며 맞섰다. 취업준비생들은 공정이 무너졌다며 분노했다. 이후 공사는 비정규직 직접고용 과정에서 예고에 없던 경쟁시험을 진행해 47명을 해고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마저 사게 됐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의 그림자
"차라리 그때 대통령이 방문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월26일 인천국제공항공사 청사에서 만난 해고자들은 "안정적 자리를 꿈꾸다가 있던 자리마저 빼앗겼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복직을 외치며 오전엔 청사 앞, 오후엔 청와대 앞에서 7개월째 매일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돈을 모아 청사 인근 오피스텔을 구해 임시 사무실로 쓰고 있다. 일부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십여 년간 청사 야생동물 통제요원으로 근무한 세 자녀의 아빠 이종혁씨는 "어떤 사전 얘기도 없이 갑자기 해고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그 후 이 상태로 반년이 흘렀다. 요샌 아이들이 5000원씩 모아 용돈을 주더라"며 눈물을 보였다.
2017년 비정규직 제로 선언 이후 초반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노갈등'이 극심했다. 3개였던 노조는 각각의 이해관계로 갈려 10개까지 늘어났다. 한 직원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인국공이 '모래알 조직'이 됐다"고도 전했다. 2017년 말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유화적으로 대응했다며 지도부에 대해 불신임을 표명하기도 했다. 비정규직들은 정규직들이 자신들의 성(城)을 지키려고만 한다고 반발했다. 언론도 노노갈등에 집중했다.
2020년 6월 인국공 사태를 기점으로 노조들은 분노의 대상을 한 곳으로 모으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결국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정부의 일방적인 졸속 추진 때문이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실제 지난 1월 노조가 조합원 100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98%가 "인국공 사태는 정규직 전환이 졸속으로 추진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노조 측 관계자는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구성원들의 관심도가 떨어진 부분도 있지만, 분명 정부와 사측의 일처리가 잘못됐다는 사실은 정규직·비정규직 할 것 없이 동의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인국공 노조 김지호 국장 역시 "2017년 이전엔 청사 앞이 이렇게까지 현수막으로 도배된 적이 없었다. 정부의 졸속 정책으로 조직이 혼란에 빠졌고, 그 과정에서 사측에 대한 직원들의 불신은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3년여간 이어온 이 미완의 과제는 고스란히 2월2일 취임한 신임 사장의 몫이 됐다. 지난해 구본환 전 사장이 해임된 후 100일 만에 새 수장 자리에 오른 김경욱 사장의 첫 출근길은 대화를 요구하는 노조에 가로막혔다. 노조는 '졸속 정규직 전환 강행하는 낙하산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섰고, 김 사장과 노조위원장 간에 간단한 대화가 이뤄진 후에야 상황은 정리됐다. 노조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일단 새 사장이 조직원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는 의지는 있어 보인다. 산적한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진 않겠지만 최대한 충돌 없이 계속 이야기를 나눠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고자의 복직 문제는 단연 김 사장 앞에 놓인 최우선 과제다. 최근 이들의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인천지방노동위원회 결정에 이어, 해고 조치를 시정하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도 나왔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공사 측은 즉각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는 등 끝까지 법적 다툼을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보통 수년이 걸리는 과정이다. 그 때문에 해고자들은 신임 사장이 이 기약 없는 다툼의 과정을 서둘러 단축해 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른 문제도 많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발표 후, 정규직 전환을 노리고 브로커를 통해 용역업체에 취업하는 등 채용 비리가 계속돼 온 사실이 최근 밝혀지기도 했다. 김지호 노조 국장은 "2018년에도 채용 비리가 터졌는데 당시 명확히 증명하지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 감사원에서 '앞으로 더 공정하게 채용하라'고 권고한 게 전부였다. 그 후 계속 암암리에 채용 비리가 이뤄져 왔다. 앞으로도 비슷한 의혹이 계속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인국공 사태 '2차전' 가능성 배제 못 해"
내부에선 "조만간 인국공 사태 '2차전'이 벌어질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보안검색요원 1902명에 대한 직고용 절차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임 사장이 온 이후로 차일피일 미뤄졌던 이 문제는 소방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또 한 번 해고 사태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그 와중에 인천 중구청에서 보안검색요원 노조 중 하나인 보안검색서비스노조의 설립을 돌연 취소하겠다고 통보해 또 다른 법적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보안검색서비스노조는 정부와 공사가 추진해 온 직고용 방식을 꾸준히 반대해 온 곳이다. 해고 사태를 우려해서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구청에서 노조 설립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노조신고증이 발급된 지 9개월여 만에 노조를 해산하라는 통보를 했다. 노조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반하는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우리를 무리하게 해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린 노조 설립 과정에서 절차상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며 "노조 탄압이라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건 오히려 저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졸속 정규직 전환' 의견이 지배적인 구성원들의 긴급 설문조사 결과와 여러 가지 상황을 신임 사장에 전달하고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김 사장에 대해 '국토부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라는 규탄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충주에 출마했다 낙선한 경험도 구성원들이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다. 노조는 김 사장 취임에 앞서 "비항공 전문가이자 국회의원 배지만 바라보는 정치인 내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 직원 자리에 '낙하산 반대' 피켓을 붙이기도 했다. 과연 고용 문제 해결에서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겠냐는 우려인 것이다. 현 정부의 시작을 함께한 인국공 문제가 과연 언제 어떤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게 될지, 새 수장이 들어선 지금 또다시 인국공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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