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81> '建國'에서 '奕辰'으로..혁명·정치 힘빠진 곳에 문화만 남아
21세기 들어 중국도 개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아름다운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해졌다. 과거 ‘정치’나 ‘혁명’을 앞세웠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세다. 대중문화를 통해 접하는 스타들이나 브랜드를 통해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문화적인’ 이름이 늘고 있다. 설날을 앞두고 이웃나라 중국의 이름짓기에 대해 살펴본다. 중국 공안부가 최근 발표한 ‘2020년 성명(姓名) 보고’를 참고했다.
‘중국성씨대사전’에 따르면 유사 이래 현재의 중국 판도 내에서 한자로 기록된 성씨는 모두 2만4,000여개였다. 이는 한족은 물론 비(非)한족 소수민족도 포함한 수치다. 여기에는 만주왕조의 마지막 황제(선통제)의 이름이었던 아이신기오로 푸이(愛新覺羅 溥儀·애신각라 부의)도 들어간다. 현재 중국 내에서 사용하는 성씨는 6,000여개 정도로 파악된다. 중국내 다양한 민족과 인구에 비해서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에는 무려 30만개의 성씨가 있다. 반면 한국에는 250여개의 성씨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외에 인구 대비 비중이 큰 순서로는 리(李·이)가 1억9만명(7.1%)으로 왕에 거의 접근했다. 이어 장(張·장)이 9,540만명(6.8%), 류(劉·유) 7,000만명(5%), 천(陳·진)이 6,330만명(4.5%) 등으로, 이들 5개 성씨의 전체 점유율이 중국 인구의 대략 30%에 달한다.
지역별로도 다소 차이가 있는 것도 특이하다. 베이징을 포함한 화북 지방과 만주에서는 왕씨 성을 가진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인이 만나는 사람이 왕씨일 확률이 더 높은 셈이다. 반면에 상하이에서는 장씨가 1위 성씨였다. 또 저장과 푸젠·광둥에서는 천씨가 가장 많았다. 쓰촨이나 후베이에서는 리씨가 가장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이런 순서가 아예 고정된 것은 아닐 듯하다. 이는 신생아들의 성씨 변화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내에서 공식 호적등록된 신생아는 1,003만5,000명이었다. 1,000만명이라는 숫자가 많은 듯하지만 전체 인구 대비로는 그렇지 않다. 앞서 2019년에 호적등록된 신생아가 1,179만명이었음을 감안하면 무려 14.9%나 줄어든 것이다. 사망률이 그대로일 경우 2020년대 중반쯤에는 중국 총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난해 신생아 가운데 리씨 성을 가진 아이는 72만5,972명으로, 전체의 7.2%를 기록해 1위였다. 이는 왕씨 성의 70만7,524명(7.1%)를 앞지른 것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중국 전체 성씨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는 셈이다.
중국에서 복수 성씨도 적지 않다. 한족 고유의 복수 성씨가 있고 이후에 비한족들이 한족화하면서 자신의 성씨를 한자에 맞추다 보니 복수 성씨가 된 경우도 있다. 중국내 최대 복수 성씨는 어우양(毆陽·구양)으로 인구는 111만2,000명이다. 어우양씨는 ‘구양수’ 등 역사상으로도 유명한 사람이 많다.
복수 성씨에는 이어 상관(上官·상관)이 8만8,000명, 황푸(皇甫·황보) 6만4,000명, 링후(令狐·령호) 5만5,000명, 쭈거(諸葛·제갈) 4만8,000명, 쓰투(司徒·사도) 2만3,000명, 쓰마(司馬·사마) 2만3,000명 등이 있다. 완옌(完顔·완안, 6,000명)과 무룽(慕容·모용, 5,000명) 등 과거 유목민족 국가의 수장들의 성씨가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이채롭다.
중국 민법전에 따르면 아이들의 성씨는 부친이나 모친의 성씨를 따른다고 되어 있다. 부친의 성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통적 관념이 있지만 최근 모친 성을 선택하는 사람이 더 늘고 있다고 한다. 이는 2016년 ‘한자녀 정책’이 폐지되면서 변화되고 있는 시대상이다.
지난해 신생아의 성씨 가운데 부친의 성과 모친의 성을 따르는 비율은 대략 12대 1이었다. 즉 지난 한해 모친 성씨를 받은 사람이 80만명 가까이 되는 셈이다. 외국인에게는 여기서 혼돈이 발생하기도 한다.
최근 캐나다에서의 억류와 미국에서의 가수 데뷔로 국제적 화제의 중심에 오른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 딸들의 이름이 런(任)아무개가 아닌 멍완저우와 야오안나(본명은 야오쓰웨이)인 것이 중국에서는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멍(孟·맹)과 야오(姚·요)는 각각 그녀들의 모친의 성이다.
가장 많은 여자 이름은 이눠(一諾·일락) 2만4,820명, 이눠(依諾·의락) 1만9,426명, 신이(欣怡·흔이) 1만7,623명, 쯔한(梓涵·재함) 1만4,626명, 위퉁(語桐·어동) 1만2,444명, 신옌(欣姸·흔연) 1만2,096명 등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이른바 ‘신중국’이 세워지고 나서 10년 동안은 아이들의 이름에 세울 건(建)이나 나라 국(國), 평정할 평(平) 등이 많이 들어갔다. 1949~1959년 출생아 가운데 남아 최다 이름 10개는 젠궈(建國·건국), 젠화(建華·건화), 궈화(國華·국화), 허핑(和平·화평), 밍(明·명), 젠핑(建平·건평), 쥔(軍·군), 핑(平·평), 쯔밍(志明·지명), 더밍(德明··덕명) 등이었다. 1953년 생인 시진핑(習近平·습근평) 중국 국가주석의 이름이 ‘진핑(近平)’인 것도 특이하지 않다.
이 시기에는 여자이름에도 꽃 영(英), 난초 난(蘭) 등의 이름이 많이 들어갔다. 1949~1959년 출생의 여아 최대 이름 10개는 슈잉(秀英·수영), 구이잉(桂英·계영), 슈란(秀蘭·수란), 위란(玉蘭·옥란), 구이란(桂蘭·계란), 슈전(秀珍·수진), 펑잉(鳳英·봉영), 위전(玉珍·옥진), 위잉(玉英·옥영), 란잉(蘭英·난영) 등으로 기록됐다.
이후 남녀 이름 모두 점차 연성화됐는데 1960~1970년에는 남녀의 이름에 쥔(軍·군), 융(勇·용), 잉(英·영), 리(麗·려) 등이 많이 보인다. 1962년 생인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의 이름에도 ‘리(麗)’가 들어간다.
이후 1980년대에는 웨이(偉·위), 레이(磊·뇌), 징(精·정), 리(麗·려) 등이 많아졌다. 1990년대는 제(杰·걸), 하오(浩·호), 쉐(雪·설), 옌(艶·염) 등이, 2000년대 들어서는 타오(濤·도), 하오위(浩宇·호우), 하오란(浩然·호연), 신이(欣怡), 쯔한(梓涵) 등이 환영받고 있다.
인구와 관련해서 중국은 두 개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벌써부터 인구 감소 전망이 나온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불과한 개발도상국이다. 그런데 3만달러가 넘는 선진국 마냥 인구감소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경직된 체제와 빈부격차 등으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공안부 통계와 다른, 국가통계국의 일반 통계에 따르면 ‘한자녀 정책’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2016년 1,786만명을 기록하던 중국내 연간 출생아 수는 2017년 1,723만명, 2018년 1,523만명, 그리고 2019년 1,465만명으로 오히려 줄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출산장려 정책이 필요하지만 경제성장률에만 몰두하는 중국 당국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대부분의 인구통계학자들은 2020년대 하반기부터 중국의 총인구가 하락 곡선을 그을 것으로 예상한다.
다른 하나는 여전히 지나친 남초 현상이다. 중국내 지난해 전체 호적등록된 출생아 가운데 남아는 529만명, 여아는 474만5,000명이었다. 이는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뜻하는 출생 성비가 111.5명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의 남초 현상의 주범으로 비난받아 온 ‘한자녀 정책’이 폐지된 상태에서도 남아가 여아보다 10% 이상 더 많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나친 남초가 사회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참고로 2019년 기준 한국의 출생 성비는 105.5명이었다. 인위적 조작이 없는 상태에서 생물학적으로 정상적인 성비는 103~107명 수준이라고 한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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