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홀몸 어르신께 전국 팔도에서 올리는 '랜선 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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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허경심 제주시 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제주에는 타지에서 건너와서 오랫동안 홀로 지낸 홀몸 노인이 많은데, 세배 봉사를 가면 '20여 년 만에 세배를 받아봤다'며 눈물을 흘리시거나, 방문한 청소년들 손을 꼭 잡으며 '너무 감사하다, 고맙다'며 말을 잇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오전, 제주시 한 주택가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는 오 모 할아버지와 김 모 할아버지 두 명에게 설날 선물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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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가정집.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천송희(16) 양이 거실 벽면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허리를 숙였다.
쪽빛 저고리와 붉은 한복 치마까지 곱게 차려입고,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정성껏 올린 세배. 큰절을 받는 이는 꺼진 텔레비전도, 노란색 벽지도 아닌, 얼굴도 모르는 어르신이다.
■ 스마트폰 앞에서 '큰절' 넙죽…코로나19가 부른 '랜선 세배'
코로나19로 인해 얼굴을 마주 보는 활동이 제약받는 시대. 전염병은 봉사활동의 형태도 '비대면'으로 바꿔놨다. 설 연휴를 앞두고 제주시 자원봉사센터의 고민이 깊어진 이유다.
제주시 자원봉사센터에서는 2018년부터 설날마다 '세배 봉사'를 진행했다. 청소년 등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홀몸 노인 가정을 방문하며 세배를 올리고, 함께 떡국도 끓여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자식들은 있지만, 오랜 시간 가족들과 왕래 없이 지내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은 더 서글프다.
허경심 제주시 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제주에는 타지에서 건너와서 오랫동안 홀로 지낸 홀몸 노인이 많은데, 세배 봉사를 가면 '20여 년 만에 세배를 받아봤다'며 눈물을 흘리시거나, 방문한 청소년들 손을 꼭 잡으며 '너무 감사하다, 고맙다'며 말을 잇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모임은커녕 대면 활동 자체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예년 같은 세배 봉사는 꿈도 못 꿀 지경이 됐다. 갖가지 아이디어를 모은 끝에 나온 것이 이른바 '랜선 세배' 봉사였다.
■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전국 팔도서 70여 명 '큰절'
제주시 자원봉사센터는 지난달 말부터 1365 자원봉사포털에서 '랜선 세배' 봉사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참여 방법은 설 연휴가 시작하기 전까지 직접 세배한 영상과,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는 따뜻한 '손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 모집 창을 열자마자 서울에서부터 제주까지, 각지에서 참가 신청이 쇄도했다.
이렇게 전국 팔도에서 골고루 보내온 큰절 영상만 70여 개. 어린이집 원아들부터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중인 중년의 공무원까지, 참가자들도 남녀노소 다양했다.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편지는 우편 배송에 시간이 걸리는 탓에, 본인이 쓴 편지를 사진 찍어 파일을 보내면, 이를 자원봉사센터에서 인쇄해 어르신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당초 지난 4일까지였던 '랜선 세배'는 접수 마감 이후에도 "나도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지자, 설 연휴 직전인 10일까지 기한을 연장하기도 했다.
■ 사회적 거리는 2m지만,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이
지난 8일 오전, 제주시 한 주택가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는 오 모 할아버지와 김 모 할아버지 두 명에게 설날 선물이 도착했다.
대면 봉사활동이 제한되면서 지난해처럼 세배 인사하러 다니는 행렬은 없었지만, 정기적으로 홀몸 노인들을 살피는 봉사자들이 설날을 앞두고 가가호호 방문에 나선 것이다.
후원 물품 박스에는 두부와 달걀, 된장 등 각종 먹거리와 생활 물품이 담겼다.
"어르신, 직접 원래 청소년들이 다 같이 와서 세배도 드리고 편지도 드렸는데, 올해는 편지를 받아왔어요. 보여드려도 될까요?" 제주시 자원봉사센터 김효린 씨가 할아버지의 방에 물품 상자를 내려놓자마자, 70여 명의 세배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반갑게 내밀었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설 보내시라"며 서울에 사는 중학생이 보내온 편지는 눈이 침침한 어르신들을 위해, 곁에서 읽어드렸다.
"이렇게까지 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뜻밖의 새해 인사와 손편지를 받은 두 할아버지는 연신 감사하다며 봉사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의 눈시울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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