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과천에서 공연하던 돌고래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인기몰이하던 돌고래쇼 중단하고 바다로 내보내
추적기 달았지만 일부 방류 개체는 소식 끊겨
동물권익 강화속 '동물쇼' 폐지 추세
경북 경주 황룡사와 전북 익산 미륵사, 서울 노원구의 화랑대역. 이 곳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터’라는 점입니다. 한 때 아주 웅장한 절과 승객들로 붐비는 기차역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으로 남아, 눈에 보이지 않는 옛 이야기를 좇으며 추억을 전시하는 공간들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전시하고 보호·연구하는 기능이 우선인 동물원에도 최근 ‘터’가 등장했습니다.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돌고래쇼 공연장 터를 꾸민 ‘돌고래 이야기관’입니다. 아이들이 떠나버린 폐교를 허물지 않고 새로운 교육공간으로 가꾸거나, 이설된 기찻길과 간이역을 레일바이크로 개조하는 것처럼 공간은 살려두고 이야기를 전승하는 ‘추억 공간’이 동물원에도 등장한 것이라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관심입니다.
돌고래 이야기관은 작년 10월 생겼습니다. 28년동안 발디딜틈없이 인파가 몰리던 해양관 내 돌고래쇼 공연장의 예전 구조를 그대로 살려뒀습니다. 많게는 한번에 2000명까지 채워지던 관람석, 돌고래들이 힘차게 헤엄치던 수조, 물개들이 뒤뚱뒤뚱 걷던 무대까지 그대로입니다. 사육사들이 던져주던 생선 냄새가 코에 닿을 듯 생생합니다. 돌고래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자취를 살려놓으면서 돌고래쇼를 생태 설명회로 바꾸고, 다시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주는 전시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돌고래쇼는 1984년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문을 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지금처럼 전국 곳곳에 ‘아쿠아리움’이라는 이름의 대형 수족관이 생기기 전, 해양 동물들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았습니다. 사육사들의 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물에서 솟아오르고, 앙증맞게 재롱 떠는 모습에 사람들은 즐거워했습니다.
별도 입장료를 받았는데도 인기 만점이었던 돌고래쇼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은 동물원 전시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부터입니다. 해외 유명 수족관에서 퍼포먼스 중심의 쇼를 잇따라 폐지하거나, 야생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알려주는 설명회로 전환하면서 우리도 이 길을 따라야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집니다. 전국 동물원의 부실한 관리실태를 폭로하는 각종 보도들이 잇따르면서 ‘인권’ 못지 않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증진됐습니다.
이런 흐름에 서울대공원 돌고래쇼도 2012년 3월 18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인위적인 동작을 시키지 않는 생태설명회로 전환됩니다. 이 조치는 이듬해 5월 홍학쇼, 9월 물개쇼의 폐지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돌고래쇼 폐지는 더 큰 차원의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다를 뛰놀다 인간에게 납치된 돌고래들을 가둬놓고 있다는게 온당한 일이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됩니다. 일부 돌고래 반입 경로가 불법 포획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류하자’는 의견이 우세해졌습니다.
그러나 당위성을 앞세워 위험천만한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돌고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결국 야생에 적응하도록 제주 앞바다에서 충분히 훈련시킨 뒤 돌려보내는 쪽으로 가닥이 잡힙니다. 서울대공원과 해양수산부가 방류위원회를 구성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 사안이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2013년 제돌이, 2015년 태산이와 복순이, 2017년 금등이와 대포 등 남아있던 돌고래 5마리가 야생 적응 훈련 과정을 거쳐 제주 바다에 방류됐습니다. 놓아주기 전 생존 여부를 알 수 있도록 위치추적기를 달고 등지느러미에는 숫자도 표시했습니다. 바다로 돌아간 돌고래들은 현재 무사할까요?
서울대공원에 따르면, 제일 먼저 방류된 제돌이는 최근까지 무사하다는 소식이 돌고래 보호단체를 통해 들려왔다고 합니다. 다만 2017년 방류된 금등이와 대포는 방류 이후 모습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능희 서울대공원 동물원 동물기획팀장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보다는, 폐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홀로 생존해 있거나, 다른 해역권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말했습니다. 모쪼록 지난한 과정을 거쳐 방류된 돌고래들이 최대한 야생에서 오랫동안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대공원에서 33년동안 돌고래들이 머무는 동안 2세 번식에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늙거나 병들어 죽으면 새로운 개체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충원이 이뤄졌습니다.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한 돌고래들은 14마리입니다. ‘돌고래 이야기관’은 개관 뒤 일주일 정도 일반에 개방되다가 코로나의 여파로 지금은 휴관 중이며 조만간 온라인 관람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그 일주일동안 사전 예약과 현장 신청을 통해 300명이 다녀갈 정도로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 사이에서는 “여기서 우리 엄마 아빠랑 함께 돌고래쇼 봤었는데”라는 추억담이 이어졌습니다.
대공원에서 살았던 돌고래는 남방큰돌고래와 큰돌고래 2종으로, 회색빛 몸뚱아리에 튀어나온 주둥이를 가진 전형적인 돌고래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돌고래들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 지구촌 곳곳에서 터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래는 크게 입의 모양에 따라 먹이를 먹는 방법에 따라 수염고래와 이빨고래로 나뉩니다. 돌고래는 이빨고래에 속하는데, 극지부터 아마존강까지 서식 환경에 맞게 적응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빨이 변형돼 길다란 창 같은 뿔을 하고 있어 ‘바다의 유니콘’이라고 불리는 북극의 일각고래, 만화 캐릭터처럼 둥글둥글한 외모를 한 흰돌고래(벨루가), 분홍색 몸뚱아리를 하고 있는 아마존 강의 희귀종 강돌고래, 바다의 포악한 사냥꾼으로 악명높은 범고래 등이 모두 돌고래 무리입니다. 한국에도 특산종 소형 돌고래 상괭이가 있습니다. 한 때 한강까지 올라올 정도로 흔하게 보였지만, 최근 마릿수가 급감하자 해양수산부가 특단의 보호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발표했지요.
돌고래들이 보편적으로 가진 이미지가 있습니다. 손으로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은 맨들맨들한 피부에, 늘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은 입매와 눈, 그리고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는 사실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착하고 똘똘한 동물’이라는 이미지이죠. 이런 매력적 요소 때문에 돌고래들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수족관에서도 인기 만점의 전시 동물이었습니다. 서울대공원의 돌고래는 모두 떠나고 흔적만으로 남아있습다만, 전국 7곳의 수족관에서는 모두 돌고래 27마리를 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고래가 헤엄치는 대형 수조도 결국은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처럼 ‘지난날의 풍경’이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해양수산부가 올해 동물원·수족관법을 고쳐 새로 문을 여는 수족관은 고래류를 못 들여오게 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눈앞에서 돌고래와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아쉬움을 충분히 덜어낼만큼, 이들이 뛰노는 야생의 바다가 더욱 안전하고 깨끗해지기를 바랍니다.
◇조선일보는 매일 아침 재테크, 부동산, IT, 책, 영어 학습, 종교, 영화, 꽃, 중국, 군사 문제, 동물 등 16가지 주제에 대한 뉴스레터를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시거나, 조선닷컴으로 접속해주세요.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부음]박순철 울산시의회 사무처장 부친상
- 한동훈 “李위증교사 단순사건…판사 겁박은 양형가중 사유”
- 내년 경주서 ‘APEC CEO 서밋’… CEO 1000명, 알파벳 b 모양 ‘엄지척' 이유는?
- 연일 완판 행진 카이스트 탈모 샴푸, 단독 구성 특가
- 美국방장관 지명자 헤그세스, 성비위 의혹...‘극단주의’ 문신도 논란
- 잠자던 ‘고래’가 깨어난다... ‘트럼프 랠리'에 움직이는 가상화폐 큰손들
- 독거미 320마리를 배에… 페루서 밀반출하다 걸린 한국인
- 野 3차 정권퇴진 장외집회…이재명 ‘의원직 상실형’에 서울도심 긴장
- 尹·시진핑 "한중 FTA 서비스투자 협상 가속화"...방한·방중도 제안
- 🌎 ‘수퍼 트럼피즘’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