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으로 31억원짜리 名畫 산다"..그림 투자가 뜬다
[이코노미조선]
밀레니얼 세대 주목 ‘아트테크(예술로 하는 재테크)’
‘고액 자산가 전유물’ 탈피
1만원으로 피카소 작품 산다
고수익 얻을 수 있어 눈길
1월 27일 오전 10시, 일본 야요이 쿠사마의 그림 ‘인피니티 네트(Infinity Nets)’를 구매하기 위한 경쟁이 펼쳐졌다. 유명 갤러리나 경매장에서 벌어진 일인가 싶지만, 아니다. 바로 예술품을 공동구매하는 국내 온라인 플랫폼에서 벌어진 클릭 전쟁이다. 시작한 지 1분 만에 모니터에 ‘더 이상 구매 신청이 불가능합니다’라는 글자가 떴다.
이날 1100만원짜리 그림 투자에 성공한 사람(32명)보다 대기자(96명)가 더 많았다. 첫 투자에 나선 김보미(30)씨는 "전날부터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소유권을 공동구매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는데 선착순 경쟁에서 밀렸다"며 "오늘은 실패했지만 다음 기회를 또 노려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미술품이 핫한 투자처가 됐다. 아트테크(예술과 재테크의 합성어)는 그간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진입 문턱이 낮아지면서 젊은이의 투자처로 떠올랐다. 국내에 2018년부터 미술품 공동구매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속속 생겨나면서, 투자자들은 마우스 클릭 한 번에 미술품 일부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플랫폼 업체가 작품 가격을 산정한 뒤 수백~수만 조각으로 나눠 펀딩을 시작하면, 투자자들은 원하는 금액만큼 투자하면 된다.
미술품 공동구매 투자 열기는 가수 콘서트 매표만큼이나 뜨겁다. 아트앤가이드가 지난해 8월 내놓은 요시모토 나라의 ‘Slash with a Knife’는 20초 만에 펀딩이 끝났고, 아트투게더가 같은 해 9월 선보인 호안미로의 ‘The Seers Ⅲ’는 30초 만에 마감됐다.
미술품 공동구매는 기존 미술품 투자 방식과 다르지만, 수익을 얻는 방식은 비슷하다. 미술 작품이나 판화·공예품 등에 투자한 뒤, 작품 가격이 오르면 시세 차익을 얻는 것이다. 플랫폼은 다수의 투자자가 작품을 판매하기 전까지 영업 공간에 임대해 수익을 얻거나, 프라이빗 갤러리에 전시한다.
물론 다른 사람과 함께 구매했기 때문에 투자한 작품을 집에 걸어둘 수는 없다. 투자자들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상현실(VR) 전시회를 즐기거나, 작품이 걸려 있는 프라이빗 전시장, 영업장 등을 찾아 그림을 감상해야 한다. 그렇지만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복제나 위조, 소유권 문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암호화를 통해 해킹으로부터 데이터베이스를 보호하는 기술로 작품명, 거래 과정, 최종 낙찰 가격, 소유자 등을 기록해, 디지털 인증서가 된다.
아트테크가 젊은이의 눈길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소액으로 유명 작가 그림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적게는 1000원, 많게는 100만원을 투자하면 공동구매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국내 생존 작가 중 최고가 기록을 가진 이우환 작가의 ‘동풍 S.8508B(15억9500만원)’에는 257명이 투자했다. 이 작가의 ‘프롬포인트(3억1000만원)’ 펀딩에는 262명이 참여했다.
투자자들은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취미 생활로 즐길 수도 있다. 직장인 천민아(29)씨는 "미술품 공동구매로 ‘덕투일치(좋아하는 취미를 활용해 재테크하는 것)’를 꿈꾸고 있다"며 "아트테크 인터넷 강의를 수강해 눈을 키우고 그림 투자를 시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저금리 시대,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주요 온라인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의 수익률을 살펴보면, 아트앤가이드 17.9%, 아트투게더 23.21%였다. 피카프로젝트는 20%의 수익률을 보장하고 나섰다. 작품의 가격이 6000만원 이하이거나, 작가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소득세 비과세 대상이기 때문에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위험 부담도 있어
물론 아트테크에도 위험 부담은 있다. 아트테크는 작품을 잘 골랐을 때만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작가가 중간에 작품 활동을 그만두거나 명성을 얻지 못하면 그림을 재판매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빠른 현금화가 어렵다는 점도 단점이다. 일부 플랫폼에서는 고객끼리 조각을 사고파는 것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 1~2년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국내 미술품 공동구매 시장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옥석 가리기도 필수다. 최근 들어 공동구매 플랫폼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어 신뢰도 있는 기업을 찾아야 한다. 아트테크 플랫폼은 금융 당국에 신고·등록하는 공식 금융 투자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손해를 입어도 투자금에 대해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이승행 아트투게더 대표는 "그림 공동구매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으로 투명성이 높아졌다"면서도 "최근에 워낙 많은 업체가 생기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주의는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
"미술품, 보지만 말고 투자하세요"
국내에서 가장 처음으로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을 설립한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는 회계사, 사모펀드사 매니저 출신인 금융맨이다. 그는 미술이 좋아서 금융권에서 간송미술관으로 일터를 옮겼다가 ‘아트앤가이드’ 출시에 이르렀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투자한 작품은 57점, 매각 작품 수와 금액은 각각 18점, 11억6260만원에 이른다. 김 대표는 4482억원(2019년 기준)밖에 되지 않는 국내 미술 시장 규모를 키우는 것이 목표다. ‘이코노미조선’이 1월 26일 서울 논현동 열매컴퍼니 본사에서 김 대표와 만나 국내 아트테크 시장에 대해 들어봤다.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을 만든 계기는.
"20대 때부터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다. 회계법인,사모펀드사에 있을 때 미술 시장을 분석하거나, 아트펀드를 다루며 더욱 흥미가 많아졌다. 그러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해보자 마음먹고 미술 시장에 뛰어들었다. 와서 보니 정보가 비대칭적이어서 사기꾼도 많고 시장 성숙도도 낮았다. 투명한 정보가 오가는 시장, 안정적인 시장을 만들 수는 없을까, 계속 고민하다 미술품 공동구매를 생각해냈다. 부유층뿐 아니라 대중이 관심을 가져야 시장이 커지고, 성숙해질 것이라 봤다."
창업할 때 투명성을 위해 신경 쓴 점은.
"미술품 공동구매를 진행하면서 투자자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수수료 기반으로 매출을 내면, 인기 없는 예술품을 비싼 값에 사와서 적당한 가격에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회사는 돈을 벌겠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은 줄어들고 만다.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투자자와 한 배를 타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5~10% 정도 투자한다."
시장에도 변화가 있나.
"지난해 한 해 동안 고객 수와 매출이 두 배가량 늘었다. 최근에 투자자가 늘면서 ‘투자하고 싶은데 선착순 투자에 실패했다. 방법이 없느냐’는 전화도 많이 온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
아트테크에 투자할 때 유의할 점은.
"초보자가 신진 작가, 중견 작가 그림에 투자해 돈을 벌기란 어렵다. ‘유명한 작가 작품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구매하는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같은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도 크기, 재료 등이 다르면 가격은 천지 차이다. 투자할 때부터 지금 미술 시장의 흐름이 어떤지, 사고자 하는 예술품과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인지,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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