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과 협의 前정권 인사 '적폐' 몰아.. "집단사표 요구는 불법"

이희진 2021. 2. 1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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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1심 선고 배경
공공기관 임원 낙하산 인사 주도
사표 거부자들엔 '표적감사' 보복
재판부 "관행" 주장도 배척해
내정자가 서류심사서 탈락하자
'적격자 없음' 처리도 유죄 판단
김은경 前 장관측 항소장 제출
文정부 '내로남불' 도덕성 타격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9일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면서 문재인정부의 도덕성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공정과 정의를 강조해 온 문재인정부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이들을 ‘적폐’로 몰며 자의적인 인사조치를 하고,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임용 과정에 개입한 의혹이 사실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내로남불’ 사례란 비판과 함께 문재인정부 출신 장관이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박근혜정부 시절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하고, 본인들이 점찍어 놓은 인물을 공공기관 임원에 앉히려 한 과정에서 각종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예컨대 김 전 장관은 내정자를 공공기관 임원에 앉힐 때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지시해 미리 내정자들에게만 기관 업무보고와 면접 예상질문을 제공하도록 했다. 심지어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내정자에게는 지원 자격을 보충해주고, 업무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해줬다.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임원추천위원회 위원(환경부 실·국장)들은 서류·면접심사에서 추천 배수를 늘렸고, 내정자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했다. 위원들은 내정자에게 최고 점수를 부여했고, 결국 내정자들은 각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최종 후보자로 선정됐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범행 전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봤다. 김 재판장은 “피고인은 청와대와 협의해 원하는 사람을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용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사표를 징구했다”며 “그 과정에서 사표 제출을 거부하는 임원에 대해서는 표적감사를 실시해 사표를 제출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공동피고인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과 공모해 공석이 되거나 공석이 될 산하 공공기관 임원 직위에 청와대와 환경부 몫을 정한 다음, 내정자를 정하고 내정자를 임원추천위원회 심사에서 최종 후보자에 포함되도록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의 이 같은 행위가 “공공기관운영법의 입법취지를 몰각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로 12명의 공공기관 임원이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직했거나 지위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며 “정상적으로 심사됐을 경우 최종 후보자로 선정될 수 없었던 일부 내정자가 공공기관 임원에 임명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각 임원 공모에 지원한 130여명에게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심한 박탈감을 안겨줬으며 지원자와 국민들에게 공공기관 임원 채용 과정에 깊은 불신을 야기했다”고 꾸짖었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 측은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인사들을 교체하는 게 ‘관행’이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령 이전 정부에서도 변호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지원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명백히 법령에 위반된다”며 “폐해도 매우 심해 타파돼야 할 불법적인 관행이지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일축한 것이다.

청와대가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내정자로 점찍어 놓은 인사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자 김 전 장관이 서류전형을 통과한 7명을 ‘적격자 없음’ 처리한 것도 문제가 됐다. 재판부는 “청와대가 추천한 내정자가 서류심사에 탈락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임원추천위원회 면접심사에서 서류심사 합격자를 모두 적격자 없음 처리하도록 했다”며 “공공기관 임원 채용이라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해당 임원 공모에 지원한 지원자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고 질타했다. 해당 인사는 결국 김 전 장관의 입김을 빌려 공공기관이 주주인 유관기관의 대표로 취임했다. 김 전 장관 변호인은 “저희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판결”이라며 이날 즉시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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