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살 수 있을까.. 업계 "최소 수년 걸릴 것"
테슬라, 부품업체·근로자엔 현금 줘야 해 재무구조 취약 우려
"비트코인, 법정화폐 아니라 국내선 당장 매매 어려울 것" 전망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가 앞으로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은 가치가 고정돼 있지 않은 데다 여러 규제 때문에 사용처가 제한적인 가상화폐인데, 전기차 1위 기업인 테슬라가 이를 거래 수단으로 삼겠다고 발표하면서 현실성이 있는지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린 것이다.
머스크의 발언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해 개당 500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테슬라는 또 현금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면서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수했는데, 덕분에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대치로 치솟았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테슬라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서 "자산 다각화와 현금 수익 극대화를 위해 투자 정책을 업데이트했다"며 "앞으로 자산의 일부를 디지털 자산에 더 투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테슬라의 시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 나온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미국에서 지난해 출시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모델Y’를 4만9990달러에 판매하고 있는데, 9일 기준으로는 1비트코인으로 모델Y를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내리면 동일한 모델Y 한 대를 구매할 때 더 많은 비트코인을 내야 하고 반대의 경우 더 적은 비트코인으로도 모델Y를 살 수 있게 된다. 이는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화폐가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과 미국 금융사 JP모건, 골드만삭스 등이 거래에서 비트코인을 취급하고 있지만, 글로벌 제조업체가 생산한 제품을 구매할 때 가상화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테슬라가 처음이다.
현금 대신 비트코인으로 대금을 받는 테슬라 입장에서는 재무구조가 취약해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비트코인 결제가 확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테슬라는 부품 협력사와 근로자에게 현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소비자에게 비트코인을 받는다면 현금 자산보다 비트코인 자산이 더 많아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오른다면 테슬라의 자산 가치는 높아지겠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 테슬라의 지급 능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허원호 코인플러그 이사는 "국내 상황만 보면, 일론 머스크가 차값을 비트코인으로 받겠다고 한 계획은 당장 현실화되기 어려운 내용"이라며 "국내에서는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법 등 관련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매매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몇몇 소규모 상점들이 있지만 이는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수준"이라며 "차와 같은 고가의 자산을 가상화폐로 매매하려면 수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머스크가 가상화폐의 투자 가치를 높게 평가해 투자처를 다변화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번에 비트코인을 언급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테슬라는 지난해 처음 연간 흑자를 달성하면서 현금 자산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고 있지만, 배출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주(州)정부로부터 받는 ‘규제 크레딧’이 더 쏠쏠한 현금 창출처가 되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 5년간 33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규제 크레딧으로 벌어들였다. 작년에 벌어들인 규제 크레딧 수익만 16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테슬라의 순익 7억2100만달러를 크게 웃도는 금액으로 규제 크레딧 수입이 없었다면 지난해 순손실을 기록했다.
테슬라가 비트코인을 주목하는 이유는 전기차뿐 아니라 자율주행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율주행 시대에서는 통신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테슬라가 비트코인으로 차 값을 받겠다는 것은 블록체인으로 차량 보안까지 지키겠다는 의미라는 해석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럽 중앙은행이 유로코인 발행을 논의하는 등 가상화폐의 입지가 커지는 상황에서 머스크는 블록체인이 최고의 보안매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실제로 머스크는 그동안 테슬라에 대한 최대 위협 요인이 사이버 공격(cyber attack)이라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고 말했다.
이번에 테슬라가 비트코인을 매수한 것을 놓고 전세계에 전기차 붐을 일으킨 테슬라가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영일 다날핀테크 과장은 "머스크의 발언대로 비트코인으로 차량을 매매하는 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날핀테크도 국내에서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계속 달라지는 페이코인을 상장해 물건을 결제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며 "소비자의 결제 시점과 판매자 정산 시점을 정하면 이에 맞는 지급솔루션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머스크의 비트코인 발언은 가상화폐의 가격 변동리스크를 본인이 감당하겠다는 뜻으로, 머스크는 비트코인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여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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