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노량진 불효자 오징어.."비싸서 비싼데 바가지로 오해"
산지 요구 못따라가는 낙찰가.."작아서 가격차이 발생"
지난해 오징어 경매량 늘었지만.."너도나도 잡으니까"
차떼기 경매 전성기 옛말..소매시장서는 진작에 찬밥 신세
"오징어 사려다가 비싸서 발길 돌려..바가지 시장 오해"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애초 예상한 가격보다 싸게 낙찰됐어요. 씨알이 잘아서 어쩔 수 없네요.”
지난 3일 새벽 0시15분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도매시장 오징어 경매장. 값을 깎으려는 도매상인과 제값을 받으려는 경매사 간에 눈치 싸움이 한창이었다. 결과는 상인의 판정승이었다. 낙찰가가 예상가를 밑돈 것이다.
안쓰럽게 증가하는 오징어 물량
노량진도매시장 오징어 경매는 2018년 어획량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휘청였다. 2017년 8만7000t이 잡힌 오징어는 그해 4만6200t으로 급감했다. 한 해 만에 절반이 쪼그라들었다. 다행히도 지난해 오징어 어획량(5만1800여t)은 전년보다 9%(4730t) 늘어나며 한숨 돌렸다. 그 덕에 노량진도매시장 오징어 경매량은 지난해(3960t)가 전년(2800t)보다 40% 늘어 회복했다.
오징어 가격은 한번 오르면 공급이 엔간히 늘어서는 쉬 내리지 않는다. 시장의 불안이 가격을 위에서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비싼 오징어를 잡으려는 배가 늘고, 그래서 어획량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씨알이 상대적으로 잘은 게 많아서 안쓰럽다. 이날 경매 물량의 80%가 20㎝ 남짓의 소(小)짜 오징어였다는 게 방증이다.
한때 오징어는 노량진 시장을 이끌던 주역이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오징어 어획량은 20만t 가량이었다. 경매 경력 18년의 신대일 과장은 “하루에 많게는 3만 짝씩 들어오곤 했는데 십수 년 전 일”이라며 “시기별로 오징어 어획량과 크기가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요즘은 이런 법칙도 깨져서 시장을 가늠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상용 대표는 “오징어 샘플 박스만 보고서 차떼기로 경매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기후 변화와 중국 어선의 불법 어획을 탓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수산학계와 업계에서 꼽는 결정적인 요인은 남획이다. 남획 가운데 아픈 것이 바로 어린 오징어를 잡아들이는 것이다. 오징어는 외투장이 19~20cm로 자라야 생식이 가능한 성숙 체장으로 치는데,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오징어까지 잡아팔기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덜 잡히다 보니 작은 것까지 잡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어획 체장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악순환이다.
이제 오징어는 천덕꾸러기 취급까지 받는다. 소매시장에서 골치다. 공급이 꾸준하지 않아 물량 확보가 어렵고, 소량이나마 떼어오면 팔리지 않아 문제다. 가격이 비싸서 고객도 손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폐기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결국 취급하는 상인이 줄었고 현재 노량진 소매 시장에서 오징어 상점은 단 한 곳뿐이라고 한다.
이날 새벽 소매시장에서 만난 상인 A씨는 “오징어 횟감이 한 마리에 2만5000원 정도 하는데 고객들은 가격만 묻고 비싸서 사질 않는다”며 “오징어 산지 가격 자체가 비싸서 비싸게 파는 것인데, 고객은 바가지를 씌운다고 오해한다”고 말했다.
오징어는 억울하다. 한때 효자라고 치켜세우던 시절이 있었다. 오징어를 사러왔다가 다른 수산물을 함께 구매하기 때문에 시장 전체가 반겼다. 그런데 요즘은 오징어 탓에 시장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인다는 것이다. 가만있는 오징어를 불효자로 만든 것은 산지의 욕심과 판매자의 상술, 소비자의 무지였다.
이게 비단 오징어 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비자를 현혹해 어린 어종을 상품화한 대표 사례는 부지기수다. 개중에 어린 붉은대게를 일컫는 `연지홍게`, 새끼 청어를 달리 부르는 `솔치`, 기름가자미 새끼 `물가자미`, 민어의 미성숙 어종 `통치`가 대표적이다. 이들을 방치하면 제2의 오징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피해는 돌고 돌아서 결국 사람을 덮친다. 새벽 소매시장에서 만난 상인 B씨는 “오징어만 취급하는 상점도 많았지만 이제는 오징어만 팔아서 먹고 살 수 없는 지경”이라며 “오징어 유통으로 손해를 본 상인이 많고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량진에 오면 개도 오징어를 물고 다닌다고 하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도 아닌데…”라고 했다.
전재욱 (imf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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