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었다, 3명이 700명 되고, 아픈 사연들 만나 430km 긴 물결
암 투병으로 헐거워진 작업복 줄여 입고 나선 천릿길
36년 부당해고에 정년 넘겼지만, 복직 없인 정년 없어
내 복직은 억울하고 부당한 시대 끝났다는 선언 의미
줄잇는 산재 사망, 노동자 목숨이 기계보다 싸기 때문
한진중, 노동자 희생 강요 말고 경영 잘못에 책임져야
은퇴 뒤 텃밭 가꾸는 꿈 이루기 전엔 싸움 멈출 수 없어
푸른색 작업복을 수선했다. 헐거워서 그대로는 입을 수 없었다. 10년 전 타워크레인에 오를 때는 꼭 맞았던 옷이다. 옷이 늘어난 게 아니었다. 두차례 암 투병으로 몸이 축난 거였다. 2020년 12월30일, 줄인 작업복을 입고 먼 길을 나섰다. 치료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회사가 정한” 정년이 하루 남은 날이었다. 청와대 앞에서는 얼추 보름이나 노숙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몸의 감각으로 가늠할 수 없는 거리였다.
부산에서부터 430㎞를 꼬박 걸어 2월7일 청와대 앞에 당도했다. 몸 축난 건 보이지 않더니, 불어난 일행은 절로 보였다. 출발 때는 3명, 도착 때는 700명이 넘었다. 단식하는 이들과 얼싸안는 것으로, 그의 복직을 요구해온 동조 단식이 48일 만에 마무리됐다. 위태로운 몸들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요구를 관철하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니었다. 애초 “복직 없이 정년 없다”는 선언에 회사가 그 끝을 정하고 말고 할 순 없었다.
지난 5일 ‘한진중공업 36년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김 지도)을 만났다. 그날도 십수㎞를 걷고 난 직후였다. 최종 목적지를 앞두고도 교섭은 제자리였으나, 괘념치 않는 듯했다. 회사의 막무가내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었다. 이 인터뷰가 며칠 뒤면 구문이 되길 바라는 기자 마음만 다급했다. 이틀 뒤 청와대 앞 연설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2011년 크레인에서 수도 없이 외친 그 구호였다.
―왜 하필 걷기였나요?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달리 없었죠. (몸 상태가) 단식할 만한 조건도 아니고요. 일단 걷기로 했죠. 재작년 내 친구 박문진(보건의료노조 전 지도위원)이 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복직 농성할 때도 부산에서 일주일을 걸어서 찾아갔는데요. 그때 몇달 전부터 거리를 늘려가면서 연습을 해둔 게 있긴 했습니다.”
김 지도는 걷는 데 어려움이 있다. 현장 노동자 시절 용접 작업을 하다 감전돼 양쪽 다리가 부러지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지금도 겨울이면 오른쪽 발목이 시리고 저리다.
―그저 걷는 건 김 지도 이미지와 어딘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노동운동가로 살면서 물리적으로 가장 과격한 투쟁은 뭐였습니까?
“글쎄, 물리력 써서 투쟁해본 적이 없어서…. 지금도 이렇게 부채 하나 달랑 들고 걷고 있네요. (그는 행진 내내 ‘한진중공업, 고용 없는 매각 반대’‘‘노동 존중 사회’는 어디로 갔습니까?’ 같은 글귀가 적힌 부채를 들었다.) 나를 강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굉장히 여려요. 상처도 잘 받고. 부당한 것에 타협을 못해서 그리 보이는지 몰라도.”
―한달 넘게 걸었습니다. 출발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처음 세 사람이 시작했을 때는 걷다가 쓰러지면 병원 가면 되지 했는데, 행진 인원이 점점 늘어나니까 책임감이 커지고, 행진의 엄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군요. 나 혼자 걷는 게 아니구나,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구나. 그렇게 연대하고 소통하고 유대감이 생기니까 걷는 게 좋더라고요. 지금 인터뷰하느라 앉아 있는 게 더 힘들어요.”
―길동무는요?
“대우버스와 한국게이츠(대구의 자동차부품 회사)의 정리해고 노동자들, 파업 중인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이 줄곧 함께했습니다. 구간마다 훨씬 많은 분들이 오갔고요. 10년 전 ‘희망버스’ 타고 찾아온 장애인, 성소수자, 해고자들처럼 이번에도 각자 아픈 사연을 갖고 와서 함께 걷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아픔들이 만나 긴 물결로 흐르는구나 싶데요. 사연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죠. 자동차 딜러 하다 해고돼 길게는 7년이나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여성 특고(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확인차 여쭙습니다.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며 걸은 겁니까?
“하루라도 복직해서 내 발로 걸어 나오게 해달라는 거죠. 36년 전에 유인물 돌렸다는 이유로 보자기에 덮어씌워져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받고 그길로 해고됐어요. 회사가 제시하는 ‘재입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당연히 복직에 따른 임금과 퇴직금도 요구합니다. 금속노조에 위임해서, 액수는 모릅니다. 다만 36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위로금’이 아닌 정당한 ‘임금’이어야 합니다.”
회사는 김 지도 해고가 정당하다고 1980년대에 확정 판결까지 받았기 때문에 복직을 시키고 임금 보상을 하면 배임죄에 걸린다고 주장한다. 탈맥락적이고, 탈역사적이며, 역사적 배임이다. 2009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는 김 지도의 싸움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고, 복직을 권고한 바 있다. 최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김 지도 해고를 ‘국가폭력’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김 지도가 쓴 <소금꽃 나무>를 보면 회사가 지급한 도시락에서 쥐똥이 나오고, 거기에 공업용수로 밥 말아 먹은 얘기가 나와요. 어느 인터뷰에서는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절망해서 지리산에 올라가 죽으려고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일터가, 노동이 지긋지긋하지 않나요? 복직이 왜 그토록 간절한 건가요?
“실제로 죽으려고 했어요. 주민등록증을 땅에 파묻고 산에 올랐으니까요.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내 삶은 왜 이렇게 비참하고 그 삶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가 싶어, 젊어서 그게 그렇게 서글프고 절망스럽습디다. 산에서 겨우 내려와 노동조합을 알게 되고, 전태일을 알게 되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렇게 삶의 태도가 바뀌었죠. 복직이 왜 그렇게 간절하냐 하면….”
얘기가 40여년 전으로 훌쩍 거슬러 올라갔다.
“나도 기사나 책으로만 접했던 ‘똥물 사건’의 피해자들, 70년대의 전설이나 다름없는 그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이 내 복직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셨어요. 원풍모방, 콘트롤데이타 해고노동자들도 함께요. 이런 말씀을 하시데요. ‘우리는 40년이 지나도록 복직을 못 했다. 김진숙은 그 한을 꼭 풀었으면 한다.’ 이미 다 일흔이 넘은 분들입니다. 일하던 사업장은 다 사라지고 없고요. 그런데도 여전히 복직을 간절히 원하고 있더군요.”
이내 물음 형식의 답변으로 넘어갔다.
“그분들에게 복직이란 뭘까요? 그분들 마음, 너무나 잘 알겠더라고요. 복직은 내 평생 가장 간절한 소원이지만, 나 혼자만의 복직이 아니구나, 그분들이 똥물 뒤집어쓰며 싸워야 했던 시대, 그런 억울하고 부당한 시대는 끝났고 더는 용인할 수도 없다고 선언하는 것, 그것이 그분들과 나의 복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70년대 해고노동자들은 다들 여성이군요. 김 지도도 그렇고요.
“우연일까요? 2003년에 나만 빼고 모두 복직됐을 때 여성단체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이 나왔어요. 생경해서 몇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가족이 없기 때문에, 가장이 아니기 때문에, 내 존재를 노조에서조차 소홀히 취급한 면이 있었다고 봐요. 당시 노조 간부였던 남성 동지들이 요즘 나한테 회한과 부채감을 털어놓습니다.”
―산재를 직접 여러차례 당해봤고, 비참한 죽음을 일터에서 숱하게 보기도 했는데요. 산재 문제를 놓고 보면 과연 시대가 변한 게 맞나 싶습니다.
“며칠 전이네요. 2019년 공사장에서 추락사한 고 김태규씨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돈봉투를 건네데요. 몇번 거절해도 ‘돈이 적어서 그러느냐’며 하도 간곡하게 내밀어 하는 수 없이 받아왔는데, 봉투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고 김태규 엄마’. 아들 이름 앞에 ‘고’ 자를 붙이는 엄마 마음이 어떻겠어요. 오늘은 김용균씨 어머니를 뵀는데, 너무 야위셨더라고요.”
―김 지도가 걷기 시작할 무렵, 그분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며 국회에서 한창 단식농성을 했지요.
“그렇게 단식해야 그나마 그런 누더기 법안이라도 만들어지네요.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국회에서도 자본의 입김이 저렇게 먹히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조선소는 감전 사고가 많아요. 나도 당해봤지만, 전기로 일하니까 운명이려니 생각했어요. 해고되고 나서 알고 보니 용접기에 전격방지기를 설치하면 감전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대당 200만원이라데요. 노동자 죽는 값이 200만원보다 쌌다는 얘기죠. 오늘도 현대중공업에서 사망 사고가 났어요. 노동자 목숨 값이 싸니까 지금도 어이없고 말 안 되는 죽음이 끊이지 않아요.”
그에게는 두 명의 전·현직 대통령 ‘동지’가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부산에서 함께 노동법 공부도 하고, 자신과 동료들이 감옥 가면 무료로 변론해주던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그는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라는 글에서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같은 글에서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곽재규 두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을 때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한 말을 깊은 회한으로 새기기도 했다.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복직을 요구하려고 걷고 있습니다. (김 지도는 7일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라고 외쳤다.) 왜 번번이 관계가 바뀌는 걸까요?
“사실 나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답답해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왜 저 자리만 가면 저러는가 싶기도 하고. 자본의 힘이 그만큼 세고, 높은 자리 올라가면 그 힘을 절감하고, 굴복하고, 자기합리화하고, 그게 궤변이 되고, 그러면서 사람도 변하는 게 아닐까. 문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트위터에 ‘더 이상 노동자들이 굶지 않고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고 죽지 않아도 자신의 의사가 평화롭게 전달되고 그 목소리가 들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피력했던 기억이 나네요.”
―대통령에게 복직에 대한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한진중공업은 법정관리 중인데요.
“실무적이고 실질적인 책임은 채권은행인 산업은행 회장에게 있다고 봐요. 하지만 산업은행의 최대주주는 정부잖아요.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는 셈이지요.”
―산업은행 회장이 김 지도 복직과 임금 보상에 대해 노동자의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고 하던데요.
“지금 경영 위기는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 잘못 투자한 조남호 회장과 경영진의 잘못이 100%입니다. (경영에서) 손만 털면 아무 책임도 묻지 않으면서, 무고한 노동자들더러 고통 분담하라는 게 맞나요? 노동존중 정부라면서, 노동자들에게는 단 한마디도 묻지 않고 투기자본에 매각하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래도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도 지킬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적어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기술 능력은 충분합니다. 특수선과 군함 만드는 데 우리만큼 유능한 조선소가 없어요. 엘엔지(LNG)선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입니다. 사람 자르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제대로 된 경영진만 들어오면 얼마든지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김 지도의 행진은 마무리됐다. 인터뷰 당시 ‘회사와 산업은행 쪽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을 때, “다른 계획을 세워 뭐든 계속할 것”이라고 그는 답했다. 복직 다음의 꿈은 ‘텃밭 가꾸기’라고 했다.
“얼마 전에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서 ‘고구마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전국에서 고구마가 왔더라고요. 어제 방송에서는 ‘부동산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곧 전국에 내 텃밭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가 복직하고 은퇴해 텃밭을 일굴 수 있게 된다면 노동자가 부당하게 해고되지 않고, 노동자 목숨 값이 기계 값보다 싸지 않고, 노동 시간이 줄어 누구라도 텃밭을 일굴 수 있는 시대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신호가 아닐까.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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