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전담 지정뒤 사직 압박..간호사 "병원이 우릴 버렸다"

박태우 2021. 2.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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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코호트' 뒤 재개원 앞둔 미소들요양병원
3차 대유행 때 226명 집단감염 뒤
전담요양병원 자원해 15일 '재개원'
200병상 규모에 간호인력 30여명
"나머지는 중수본 파견 채울 예정"
일부 간호사들 사실상 "권고사직"
감염 감수하며 일한 간호사들 분노
"필요없다고 자르는 게 말 되나"
"단순 비용절담 대상 삼아 화나"
지난해 12월30일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동일집단(코호트) 격리중이었던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최희찬 과장은 (청와대 청원 글에서) 나라가 환자를 버렸다고 했지만, 병원은 우리를 버렸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 3차 유행의 정점에서 226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한 간호사의 말이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12월15일 첫 확진자가 나오고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된 뒤 확진자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의료진이 제때 파견되지 않는 등 ‘방치 논란’이 일었고, 최희찬 신경과장은 지난해 12월27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코호트 격리 후 아무런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호소 글을 올렸다.

미소들요양병원은 오는 15일 감염병전담요양병원으로 재개원할 예정이다. 전국 7곳에서 운영 중인 전담요양병원은 고령에 거동이 불편해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무증상·경증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들을 전담 치료한다. 지난해 연말 3차 유행 때 요양병원·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환자를 이송할 병상이 없어 문제가 되자, 정부는 일부 요양병원을 감염병전담요양병원으로 지정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전담요양병원이 뭐가 문제길래 이번엔 ‘병원이 우리를 버렸다’는 호소가 나오는 것일까.

■ 전담요양병원 지정 뒤 줄어든 의료인력

지난해 연말 집단감염 사태 전 100명에 이르던 이 요양병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은 현재 30여명 규모로 줄어든 상태다. 애초 서울시의 전담요양병원 지정에 반대하다 지난달 25일 ‘수용’으로 전환한 병원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전담요양병원으로 바뀌어도 계속 근무할지를 물었다고 한다. 계속 근무할 간호사에게는 기본급의 2배 지급이 약속됐다. 반대의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권고사직’ 처리하겠다고 안내했다.

병원 관계자는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전담요양병원 지정 이후 운영할 2개 병동 가운데 1개 병동은 자체 인력으로, 다른 병동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서 파견될 인력을 바탕으로 운영할 방침”이라며 “전담요양병원 운영 이후에도 힘들게 일해야 하는데 직원들을 붙잡을 수 없어서 1개 병동을 운영할 수 있을 만큼의 기존 인력을 설득해 남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겨레>와 인터뷰한 의료진의 증언은 달랐다. 근무 중 코로나19에 확진됐던 간호사 ㄱ씨는 “병원에 근무 의사를 밝혔는데도 근무할 수 없다고 했다. 나가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달라 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간호사 ㄴ씨 역시 “병원 쪽에서 ‘간호사 근무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몇명은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면서 ‘중수본에서 파견 인력을 뽑으면 올 것이냐’고 묻기에 ‘알겠다’고 했다”면서도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출근해달라고 읍소하다가 이제 필요 없어지니 자른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5일 병원장 주재 회의에 참석했다는 의사 ㄷ씨도 “원장님이 ‘그동안 큰 피해를 본 병원을 살릴 수 있는 만큼의 정부 지원을 약속받았다’며 ‘잘 따라주는 간호사로 20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사직한 인력을 중수본을 통해 파견받는 형식으로 근무하게 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동일집단 격리 중에도 의사 10여명은 전원 현장을 지켰지만, 병원이 안정을 찾고 확진자가 줄면서 ‘병원의 사정으로’ 일부는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전담요양병원 지정 이후 남아 있는 의사는 4~5명가량이다.

■ 고용 의료진 적을수록 유리한 구조

감염병전담요양병원으로 지정되면 정부가 병상마다 하루 16만4천원의 손실보전금을 지원한다. 그 병상에 환자가 입원하면 2배, 그 환자가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와상 환자면 0.5배 가산된다. 병원은 이를 바탕으로 인건비 등 운영비용을 충당해야 하지만, 중수본 파견 인력을 받으면 인건비가 들지 않는다. 병원으로서는 직접고용하는 인력은 줄이고 파견 인력을 많이 받는 게 유리한 셈이다. 병원이 1개 병동은 파견 인력으로 운영하겠다고 한 것도, 간호사들에게 ‘사직 뒤 중수본 파견 인력으로 복귀’를 제안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근무할 뜻이 없어 사직한 이들도 단순히 감염 위험이나 높은 노동강도 때문에 사직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병원 쪽에 배신감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근무 중 확진된 간호사 ㄹ씨는 “확진자 발생 이후 매뉴얼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기본적인 정보도 잘 공유되지 않았다”며 “초반엔 의료진에게 기본적인 보호장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폐쇄된 병동 안에서 먹고 자게 하면서 심할 때는 24시간 이상 연달아 일해야 했다. 병원이 직원들을 지켜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뒀다”고 했다.

간호사 ㅁ씨도 “간병인들이 확진되거나 이탈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환자 기저귀 갈기, 식사, 체위 변경 등을 간호사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병원 직원 단체대화방에서 간호사들이 공공연하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며 “간호사 인력 충원이 절실했는데 병원이 중수본에 인력 파견을 요청한 것도 너무 늦었다”고 했다. 그는 “(환자들이) 내 할아버지들이고, 내가 빠지면 다른 멤버(동료)들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버텼다”면서도 “최희찬 신경과장은 국민청원에서 ‘나라가 환자들을 버렸다’고 했지만, 병원은 직원을 버렸다”고 말했다.

의사 ㄷ씨는 “코로나19가 아무리 무섭다고 하더라도 몇년 동안 근무했던 직원들이 내 병원에 대한 애착을 깔끔하게 버릴 수 있게 된 데는 분명히 경영진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 쪽은 “근무 희망 의사가 있음에도 사직을 권고한 사람은 없다”며 “지금이라도 근무를 희망하는 경우 무급휴직 상태로 대기하면 되고, 현재 채용공고도 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나가는(사직하는) 사람을 힘들게 잡지는 않았다”며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환자가 0명이 되는데, 100명이나 되는 간호인력을 어떻게 먹여 살리겠냐”고 반문했다. 병원 관계자는 “동일집단 격리 상황에서 간호인력 내부 갈등이 매우 심각했다. 우리(병원 경영진)만 옳다고는 얘기 못 하고 직원들의 억울함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를 어디까지 챙겨줄지에 대해서는 형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중수본 “자체 인력 활용 먼저”

전담요양병원 지정이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는 당국도 파악하고 있다.

중수본은 이미 지난달 22일 지방자치단체에 “중수본 인력 파견은 자체 인력을 우선 최대한 활용했음에도 인력이 부족할 때 지원하는 것으로 단기 파견이 기본 원칙”이라는 내용을 담아 공문을 보냈다. 중수본 관계자는 “기존 인력을 사직하게 한 뒤 중수본 파견 인력으로 복귀시키는 방식으로 국가 예산을 쓰는 것은 제도를 굉장히 악용하는 사례”라며 “병상을 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높은 수준의 손실보전금이 지급되고 있기 때문에 사직한 인원이 있다면 병원이 인력을 자체 채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존 의료인력이 병원을 사직한 뒤 중수본 파견 형식으로 같은 현장에 투입되는 일은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의사 ㄷ씨는 “고생한 의료진을 단순히 비용 절감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 보상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수고했다고 격려해주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어느 정도 (동일집단 격리) 상황을 정리했으니까 (전담요양병원 지정을 계기로)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남기려는 의도로 읽혔다”며 “병원이야 전담병원 지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지만, 무너져가는 병원을 지킨 의료진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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