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옛자료 세상에 내놓는 기쁨" 학술지 '문헌과 해석' 25주년 맞았다
1996년 겨울, 처음 그것은 ‘백수(白手) 청년들의 모임’이었다고 이종묵(60)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회고했다. “선비들은 유배지에서 오히려 큰 학술을 하지 않았나? 매인 곳 없는 여러 전공의 30대 보따리 시간강사들이 옛글과 옛 책을 함께 읽고 소주잔 기울이며 새로운 해석을 해보자고 했다. 그 흥미로운 텍스트를 자기들 좁은 분야에 매여 재미없게 공부해서야 되겠나!”
그렇게 서울 양재동에서 결성된 ‘두시언해’ 공부 모임은 문헌 중심의 한국학 학술지 ‘문헌과 해석’의 출간으로 이어졌고, 이번에 25주년을 맞아 통권 86호를 내게 됐다. 그동안 학술 모임은 1300여회 진행됐고 200여 건의 옛 자료가 새로 발굴됐다. 현재 회원은 400여 명이다. ‘문헌과 해석’의 주요 멤버인 이종묵 교수와 정승혜(56) 수원여대 교수, 김영진(53) 성균관대 교수는 “사반세기 동안 먼지 쌓인 옛 자료를 새로 읽고 세상에 내놓는 기쁨에 빠져 살았다”고 했다.
국어·국문학, 한문학, 사상사, 과학사, 예술·연희사(演戲史), 고문서학, 서지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번역과 주석, 토론을 쌓아가며 서로에게 새로운 영감을 줬다. 고문서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재야 고수들도 모였다. 학술 논문의 형식을 벗고 ‘짧지만 강한’ 글을 싣는 동안 성과가 쌓였다. ‘정조대(代) 문헌 시리즈’ 4권이 출간됐고, 조선 시대 담배 문화를 다룬 ‘연경’, 한국 차(茶) 문화의 대표 저술 ‘동다기’ 등의 발굴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종묵 교수는 미국 버클리대에서 중국 명나라 문인이 조선 한시를 수집한 ‘조선시선’을 찾아냈으며, 정승혜 교수는 일본 동양문고와 오구라 문고를 이 잡듯 뒤져 목록에 없는 책을 확인했다. 김영진 교수는 “존재도 몰랐던 자료를 남보다 먼저 발견하고, 거기에 기존의 상식을 넘어서는 내용이 있다는 걸 확인할 때 즐거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종묵 교수는 “새로 발굴된 문헌에 드러난 조선 시대는 우리 통념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치고 스펙트럼이 넓었다”고 했다. 19세기엔 서양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입한 명문가의 세련된 삶과 극도로 빈한한 기층민의 삶이 공존했는가 하면, 판소리에 당시(唐詩)가 등장하는 것처럼 민중이 상층 지식인의 고급 문화를 수용하기도 했다.
2018년 계간에서 반년간 발행으로 바뀌는 변화 속에서도 비(非)상업적인 학술지를 꾸준히 내온 데는 출판사 태학사의 힘이 컸다. 조윤형 태학사 주간은 “한국학 진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현구 회장의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이종묵 교수는 “요즘 학생들이 종이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활력이 꼭 예전 같진 않지만, 조선 시대 출판 편집가 시리즈 같은 새로운 기획을 계속 이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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