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텅 빈 영화관에 개그맨들이 떴다

김성현 기자 2021. 2.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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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사라진 극장서 '입심'만으로 스탠드업 코미디 펼치는 개그맨들
2021년 2월 5일 서울 신촌 CGV 아트레온에서 선보이는 라이브 개그 '쇼그맨' 출연진들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연정 객원기자

금요일 밤 서울 신촌 복합상영관 CGV 11층에서는 영사기가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불 꺼진 스크린 위에 개그맨들이 올라온다. 지난 5일에도 ‘개그콘서트’ 출신의 개그우먼 김영희(37)가 마이크 하나를 들고 무대에 섰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관객이 급감하자 고심하던 극장이 영화 상영 대신 스탠드업 코미디를 공연하기로 한 것이다.

김영희는 최근 열 살 연하의 전 프로야구 선수 윤승열(27)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새댁’에게는 신혼 생활도 웃음의 재료가 됐다. “열 살 연하와 결혼했다는 소식에 주변에서 ‘괜찮냐’고 묻는데, 솔직히 기분이 더럽더라.” “11년 만에 사귄 남자 친구였는데, 오랜만에 연애를 하니 매사에 덜컥 의심부터 들더라.” 연애와 신혼 생활을 주제로 깨알처럼 쏟아내는 재담에 객석에서는 연신 웃음꽃이 피었다. 친구들과 함께 찾은 관객 이희선(27)씨는 “넷플릭스를 통해서 외국 스탠드업 코미디는 많이 보았지만 문화적 차이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았는데, 극장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 맘껏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CGV 신촌에서 열리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쇼그맨'.

기존 방송에서 친숙한 콩트 형식이 아니라 스탠드업 코미디 방식이라는 점도 이채로웠다. 이날 출연한 개그맨 7명은 별도의 의상이나 분장 없이 마이크 하나만 들고 한 명씩 나와 오로지 ‘입심’으로 승부를 걸었다. ‘개콘’에서 갸루샹·다중이 같은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개그맨 박성호(47)씨는 팝송의 영어 가사를 발음이 비슷한 한국어로 바꿔서 부르는 음악 개그를 선보였다. 데뷔 25년 차로 출연진 가운데 최고참인 그는 “분장도, 가발도 없이 무대에 선 건 오늘이 처음”이라며 “벌거벗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1시간 40분가량 계속된 이날 공연은 코로나 여파로 무대를 잃은 개그맨과 신작(新作)이 사라진 영화관이 의기투합해서 마련했다. 최근 CGV는 e스포츠(컴퓨터 게임 경기) 생중계, 시 낭송회와 콘서트 중계까지 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닌텐도·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를 가져오면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대관해주기도 한다. 코미디 쇼 역시 코로나 시대 영화관의 변신 시도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개콘 폐지와 코로나의 이중고로 갈 곳을 잃은 개그맨들에게도 영화관 공연은 ‘탈출구’다. 박성호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60여 차례에 이르던 공연 스케줄이 지난해에는 2~3회로 줄었다”면서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오늘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김영희씨도 “그동안 맥줏집과 한옥마을, 공장을 개조한 미술관까지 안 서본 곳이 없었지만, 코로나 이후 모두 중단됐다”면서 “석 달 만에 처음 서는 무대”라고 말했다.

설 연휴 이후에도 전유성·김원효·김재욱·정범균 등 개콘 출연진과 신인 개그맨들이 매달 1차례 이상 영화관에서 공연한다. 전체 관람가와 19세 이상으로 관객 연령층도 세분화할 계획이다. 이규환 CGV 신촌아트레온 점장은 “지금까지는 극장이 영화만 틀어주는 곳이었다면, 앞으로는 관객과 쌍방향으로 소통 가능한 모든 콘텐츠를 올리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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