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닥다닥 고시텔, 수저·반찬까지 공유 '방역 무방비'
서울 관악구 신원동의 A고시텔에 들어서자, 폭 1m가 되지 않는 복도 양옆으로 40개의 방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가장 싼 방은 월세 30만원. 화장실도, 창문도 없다. 이곳에서 1년 넘게 살았다는 배모(51)씨의 방은 이부자리를 펴면 네 귀퉁이 끝에 남는 데가 별로 없는 1평(3.3㎡) 남짓한 크기다. 배씨는 “20년 전 누나 빚 보증을 섰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 편의점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코로나로 그 일자리마저 잃고 작년 11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고 했다. 수령액은 월 50만원 남짓. 월세 30만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한 달을 난다. 고시텔에서 공짜로 주는 밥과 김치로 끼니를 해결하고, 간혹 라면과 막걸리를 사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 생필품 사러 나가고, 하루 한 번 사람 없는 틈을 타 2평(6.6㎡)짜리 공용 주방에서 라면 끓여 먹는 게 배씨 세상의 전부다. 그는 “화장실·샤워실·주방을 공동으로 쓰는 게 무섭긴 하지만 화장실 딸린 방은 월세가 10만원 더 비싸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A고시텔에는 배씨와 비슷한 처지의 25명이 얇은 벽 하나씩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산다. 5칸짜리 화장실 겸 샤워실을 함께 쓴다. 고시텔 사장 유모(66)씨는 “여긴 대한민국 최빈층이 사는 곳”이라며 “여기가 없었으면 다 노숙자 됐거나 저세상 신세일 것”이라고 했다.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고시텔이 코로나 방역(防疫)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시텔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지 1주일도 안 돼 입주자 13명, 직원 2명 등 15명이 집단감염 됐다. 이곳 역시 여느 고시텔처럼 좁은 복도 양옆에 방들이 밀집한 환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주방·화장실·샤워실·세탁실을 함께 쓰고 일부 입주자는 식사도 같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방문한 서울 구로·관악·금천·동작구 일대의 고시텔 10곳 모두 비슷한 구조였다. 모두 월세 30만원을 넘지 않는다. 공통점은 사람이 많이 모이고, 환기가 잘 안 되는 밀폐 공간이라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고시텔도 폭 80㎝ 복도의 천장에 달린 환풍기 8개가 환기 시설의 전부였다. 방 30개 중 창문이 있는 방은 10개뿐이다. 창문 있는 방은 26만원으로, 창 없는 방보다 3만원 비싸다.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30년 넘게 고시텔에서 살아왔다는 안모(61)씨는 “방에 창문이 있긴 하지만 너무 작아 환기가 되지 않는다”며 “이 고시텔을 벗어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거주자들의 식사 방식도 집단감염 위험에 취약했다. 대다수 고시텔 입주자들은 공용 주방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밥, 김치로 끼니를 해결한다. 상도동 고시텔의 3.5평 남짓한 공용주방에는 수저 4벌, 밥그릇 6개, 프라이팬이 있었다. 입주민 22명이 이걸 함께 쓴다. 전기밥솥에서 흰 쌀밥을 뜨고, 냉장고에 든 공용 김치를 각자 젓가락으로 덜어 먹는다. 주방과 식기(食器), 밥과 반찬까지 여럿이 공유하는 감염에 취약한 구조다.
4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한 고시텔의 공용 주방에서도 마스크를 벗은 입주민 2명이 밥과 라면을 나눠 먹고 있었다. 다른 입주민 3명도 공용 밥과 김치를 퍼서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입주민 이모(55)씨는 “밖에서 누구 하나 코로나에 걸려오면 집단감염은 순식간”이라고 했다. 총무 최모(41)씨도 “입주민 대부분 같은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친해진 경우가 많아 보통 퇴근하면 저녁을 같이 먹는다”며 “가끔 말리기도 하는데, 어차피 마스크 없이 생활하기 때문에 큰 소용이 없다”고 했다. 용변을 해결하고, 샤워를 할 때도 타인과 빈번히 마주친다. 보통 6명 이상이 변기 한 칸, 샤워실 한 칸을 공유한다. 고시텔에서 5년째 생활한다는 박모(39)씨는 “누가 코로나에 걸렸는지 알 수도 없는데,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며 “앞서 누군가 화장실을 쓰고 나온 걸 보면 솔직히 들어가기 꺼려진다”고 했다.
복지부는 작년 6월 이용자 간 2m 이상 거리를 유지하고, 공용 시설을 주기적으로 소독하라는 내용의 고시원 방역 지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고시텔 사장은 “코로나가 퍼진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지자체나 보건소에서 와서 소독을 해준 적이 없다”며 “가뜩이나 손님도 줄었는데 (우리가) 소독 비용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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