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 땐 들끓던 법관회의, 김명수 거짓말엔 침묵
김명수 대법원장은 거짓말을 한 사실이 탄로 나고 여당과 ‘탄핵 거래’를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야당은 물론이고 법조계 내부에서도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는 9일 출근길에서 “여당과의 탄핵 거래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대법원 청사로 들어갔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김 대법원장은 법관 면담 등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하고 있고, 오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때도 재판장으로 참여해 판결문 주문을 낭독할 것”이라고 했다. 버티겠다는 것이다.
◇법관대표회의 운영진 12명 중 7명 인권법
법원 관계자들은 “김 대법원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믿고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김 대법원장이 2011년 만들어 1·2대 회장을 지낸 곳이다. 회원이 460여 명에 이르는 법원 내 최대 모임으로, 김 대법원장의 지지 그룹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연구회 핵심 회원들은 2017년 초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졌을 땐 법원 내부 온라인망인 코트넷 등에 ‘재판 독립이 무너졌다’는 글들을 올리며 양 전 대법원장을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그런데 지난 4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국회 탄핵 소추안 통과를 놓고 김 대법원장이 여권과 교감했다는 ‘탄핵 거래’ 의혹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사법부의 대형 현안에는 직급별 판사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현재의 법관대표회의는 인권법연구회가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법관대표회의 운영진 12명 중 오재성 의장을 포함한 7명(58%)이 인권법연구회 회원이다. 이 중 류영재 판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5월 대선 다음 날 자기 소셜미디어에 ‘오늘까지의 지난 6~7개월은 역사에 기록될 자랑스러운 시간’이란 글을 올린 판사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터진 2017년 6월 회의를 갖고 이 의혹에 대한 2차 조사를 요구했고, 이듬해 11월엔 이 의혹에 연루된 ‘양승태 대법원’ 판사들에 대한 국회 탄핵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한 변호사는 “법관대표회의는 양승태 대법원을 적폐·범죄 집단으로 지속적으로 공격해 김명수 대법원이 들어설 수 있는 길을 열어줬고, 김 대법원장 취임 후엔 ‘사법 적폐’ 몰이 여론 조성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9일 본지에 “김 대법원장과 관련해 회의를 소집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이번 김명수 사태는 사법부 독립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라며 “법관대표회의가 이 사안도 논의하지 않을 만큼 사법부가 편향돼 있다는 건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오는 18일 이민걸·이규진 판결 기다려”
법원 내에선 “김 대법원장이 오는 18일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날은 옛 통진당 재판 등에 개입했다는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의 선고가 있는 날이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가 맡고 있다. 이 재판부 재판장인 윤종섭 부장판사는 6년째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하고 있는데도 지난 3일 판사 인사에서 중앙지법에 그대로 남았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법원 관계자들은 “김 대법원장이 그동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왔던 윤 부장판사가 두 사람에게 중형을 선고할 것을 기대하고 6년 유임 인사를 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이른바 ‘사법 적폐’에 대한 단죄로 비치고, 김 대법원장의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거래’ 의혹도 희석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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