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일괄사표 강요, 폐해 심각".. 조현옥·조국 개입 규명해야

최경운 기자 2021. 2.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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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유죄] '환경부 블랙리스트' 실형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교체와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 대해 1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면서 사실상 현 정권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실체를 인정했다. 현 정부 청와대 특감반에서 근무했던 김태우씨가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 여권 핵심 인사들은 “합법적인 체크리스트”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 법원은 “김 전 장관이 원하는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사표를 일괄 징수했고 거부하는 임원은 표적 감사로 사표를 받았다”고 밝혔다. 현 정권이 전 정부의 ‘적폐’로 규정했던 블랙리스트가 현 정부에서도 작성·행사됐음이 사실상 확인된 것이다. 특히 김태우씨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면서 청와대에서도 전국 공공기관 임원 관련 파일을 정리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김 전 장관이나 신 전 비서관을 넘어선 윗선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폭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지난 1월 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김태우씨가 지난 2018년 12월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사표 제출 현황 문건’을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여권 핵심 인사들은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2019년 2월 홍영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합법적 체크리스트”라고 했다. 그는 “신임 장관의 인사와 관련한 적법한 감독권 행사”라면서 “이 과정에서 해당 부처와 청와대가 협의를 진행하는 것도 정상적 업무”라고 했다.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도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해온 체크리스트”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사찰 DNA가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법원의 이날 판결로 ‘합법적 체크리스트’란 여권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특히 김태우씨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면서 청와대 차원의 별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도 제기했다. “2017년 중순쯤 이인걸 청와대 특감반장 지시로 경찰 출신 특감반원 A씨가 전국 330개 공공기관장과 감사 재직 유무와 임기 등을 엑셀 파일로 정리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당시 “공공기관 경영 정보 사이트에 나와 있는 정보를 일일이 받아 적느라 A씨가 밤을 새웠고, 전 정권과의 관계 여부 등 세평(世評)을 조사해 함께 정리했다”는 등 구체적인 작성 정황도 제시했다.

유죄 인정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주요 혐의

그러나 청와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심 법원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실체를 사실상 인정한 만큼 청와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중단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김씨가 제기한 다른 의혹들도 검찰 수사에서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현 정부 들어 국가보훈처 등 다른 부처와 과학계에서도 전 정부 임명 인사에 대한 사퇴 압박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김 전 장관이 신 전 비서관과의 교감만으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겠느냐고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당시 신 전 비서관의 직속상관은 조현옥 인사수석(현 독일대사)이었고, 김씨가 청와대 블랙리스트 작성 주체로 지목한 특감반을 지휘한 민정수석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인사 추천을, 민정수석실은 인사 검증을 담당한다. 야당과 법조계에선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조윤선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루돼 기소된 점을 감안하면, 추가 연루자 존재 여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청와대는 원칙적으로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판결 내용을 확인한 후에 필요하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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