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靑과 낙하산 공모' 인정.. "이런 대대적 불법 사표 요구 처음"
법원, 김은경의 관행 주장 일축 "金, 靑과 협의 원하는 사람 내정후
자료제공 등 사전지원 하게 해.. 형식적 공모로 지원자에 박탈감
前정권 공기관 임원엔 사표 요구.. 표적감사하고 형사고발 협박도"
법원은 9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선고 공판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하고 공석이 된 17개 직위 공모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대통령균형인사비서관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이같이 밝혔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년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낙하산 방지법(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을 거론하며 이 법 제정 이후 최대 규모의 물갈이 인사가 있었다고 꼬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의 불법 행위로 인해 13명의 공공기관 임원이 부당하게 옷을 벗었고, 이미 내정자를 정해 둔 채 진행된 임원 공모에 130여 명이 지원해 억울하게 탈락했다며 조목조목 폐해를 지적했다.
○ “이처럼 계획적인 사표 요구는 처음”
재판부는 우선 김 전 장관이 2017년 12월∼2018년 1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3명에게 부당하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임기가 남아 있었는데 법에서 정한 해임 사유도 없이 단지 전 정권에서 선임된 임원들을 소위 ‘물갈이’하기 위해 사표 제출을 요구한 것은 인사권 남용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청와대와 협의해 원하는 사람을 임원으로 임명하려고 일괄 사표를 징구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김 전 장관이 김현민 전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에게서 사표를 제출받기 위해 표적 감사를 지시하고, 김 전 감사를 상대로 사표를 내지 않으면 형사 고발 등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해 강요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다만 신 전 비서관이 전 정부 임원들 사표 제출과 관련해 김 전 장관과 공모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 “정권 코드인사에 경종 울린 판결”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전 정부 출신 공공기관 임원들을 몰아낸 뒤 공석이 된 17개 직위 중 15곳에 ‘자기 사람’을 심은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인정됐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직위 공모 과정에 불법 개입한 수법을 설명하면서 ‘사전 지원’과 ‘현장 지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청와대와 환경부가 정한 15명의 인사를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으로 내정한 뒤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이 내정자들이 임명될 수 있도록 내부 자료 등을 제공하는 등 ‘사전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당락을 결정하는 임원추천위원회에 참여하는 일부 위원들에게는 내정자들이 합격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라며 ‘현장 지원’을 지시했다. 위원으로 참여한 환경부 실·국장들은 이 지시에 따라 내정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환경부와 청와대의 ‘내 사람 앉히기’가 은밀히 진행되는 것도 모른 채 해당 임원 공모에는 130여 명이 지원했다가 탈락했다. 재판부는 “공모 절차가 진행된 총 17개의 추천위원회 가운데 내정자가 이미 있다는 것을 모르고 참여한 위원들이 80여 명에 이른다”며 “공정한 절차를 거치는 것 같은 외관을 위해 형식적으로 추천위원을 동원해 산하 기관의 인적, 물적 재원을 낭비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청와대가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직에 내정한 한겨레신문 출신 박모 씨가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자 신 전 비서관과 김 전 장관이 서류심사 합격자 7명을 모두 ‘적격자 없음’으로 탈락 처리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유죄로 인정했다. 김 전 장관이 박 씨가 탈락한 것의 책임을 물어 담당 업무를 했던 환경부 공무원을 좌천시킨 것에 대해선 직권남용이라고 판단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정권의 ‘코드 인사’에도 경종을 울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정부가 새로 출범할 때마다 전 정권 인사를 무리하게 ‘물갈이’하는 불법 관행이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 speakup@donga.com·신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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