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 기다리다 죽을판.. 대출 받게 해달라"

최종석 기자 2021. 2.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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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2人, 벼랑끝에서 맞는 설

지난 5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깡마른 40대 여성이 머리를 빡빡 밀었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대책위원회가 연 결의식 자리에서충남 천안에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 허희영(44)씨가 삭발을 한 것이다.

5분간 바리캉 소리만 들렸다. 허씨는 눈을 감고 반쯤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면서 울었다. 그는 “10년 뒤 우리 아이가 살 나라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고 했다. 허씨는 홀로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엄마다. 2017년 120석 규모의 커피 전문점을 열었다. 10년 동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처음 연 가게였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 천안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허희영씨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코로나 사태에 따른 영업금지·제한 조치를 철폐해달라”며 삭발식을 한 뒤 눈물을 닦고 있다.(왼쪽) 서울 성동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이모씨가 9일 텅 빈 가게를 청소하고 있다. /고운호·이태경 기자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손님이 끊기면서 월 매출이 55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줄었다. 순식간에 6분의 1이 된 것이다. 임차료⋅재료비 등으로 들어가는 고정비만 2300만원이라 오로지 빚으로 산다. 은행 빚이 2억원에서 3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살던 집을 팔아 빚을 일부 갚고 월세를 들어갔다. 하지만 집을 팔고 나니 대출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신용 등급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사채를 2000만원 끌어다 썼다. 그래도 월세 두 달치, 전기세 두 달치가 밀린 상태다. “내 인생도 벼랑 끝으로 밀렸다”고 했다.

◇두 달 밀린 월세...내 인생도 벼랑 내몰려

허씨는 “당장 2월 월세, 전기세를 낼 돈이 없는데 은행에선 신용 등급이 6등급으로 떨어져 더 이상 대출을 못 해준다고 한다”며 “매일매일 속이 탄다”고 했다. 작년 9월 그는 딸과 어머니 앞으로 유서를 썼다. 하지만 혼자 남게 될 딸 얼굴이 어른거려 죽기는 포기했다. 대신 그는 “죽을 각오로 싸우기로 했다”고 했다. “K방역을 믿어달라는 정부 말을 믿고 빚을 내 버텼어요. 그런데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죽고 싶었죠. 그렇게 버텼는데 이게 뭡니까? K방역을 믿은 결과가 이런 건가요? 안 그랬음 벌써 폐업했을 겁니다. 이젠 폐업할 돈 3000만원이 없어서 폐업도 못 해요.” 설 연휴가 끝나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도 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허씨는 “매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4차 재난지원금, 손실 보상 얘기는 지겹다”며 “1년을 대출로 버틴 자영업자 대부분이 당장 연체 폭탄을 맞게 생겼는데 정부와 정치인들은 선거 생각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 달치 임차료도 안 되는 재난지원금 뿌리는 대신 자영업자들이 신용 등급 관계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며 “빌린 돈은 코로나가 풀리면 꼭 갚아나가겠다”고 말했다.

◇부업 뛰는 PC방 사장 “자영업자는 앉아서 죽을 수 없어서 고향 못 간다”

서울 성동구에서 100석 규모 PC방을 운영하는 이모(48)씨는 작년말부터 폐업한 PC방에서 쓰던 키보드와 마우스 등을 가져와 닦는 일을 한다. 중고 시장에 내다파는 부업이다. 오후 9시까지 텅 빈 PC방을 지키다 밤엔 키보드를 닦는다. 망하는 PC방이 많다 보니 처음엔 일주일에 20만원은 벌었다. 요즘엔 이마저도 어렵다고 했다. 이씨는 “소문이 다 나서 다른 PC방 사장들이 몰리는데, 중고 컴퓨터 찾는 사람은 줄어들어서 대리 운전이나 뭐나 다른 부업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자리에서 23년 PC방을 하며 중학생 자녀 둘을 키웠다. 그런데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한 달 매출이 3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임차료, 관리비 등 한 달에 나가는 유지비만 1000만원이 넘다 보니 빚을 내 하루하루를 살았다. 정부와 성동구에서 지원금 500만원을 받았지만 1년 새 빚이 1억원을 넘었다. 그는 “얼마 전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PC방 가지 말라고 해서 속상했다’고 해서 함께 울었다”면서 “그저 하루라도 빨리 백신 접종이 시작돼서 가게가 손님들로 가득 차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설에 그는 고향에 가지 못한다. 설 명절이 마지막 대목이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뽑은 아르바이트생 한 명과 교대로 설 명절을 지켜야 한다. 그는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고향에 못 가지만 우린 그냥 앉아서 죽을 수 없어서 못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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