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ESG 경영' 의무화 추진에 한국 중소기업들 '발등에 불'
대응 늦으면 수출길 막힐 우려..가이드라인·평가체계 시급
[경향신문]
유럽연합(EU)에서 기업의 전 공급망에 걸쳐 환경과 인권 관련 침해 행위에 대한 자체 실사를 의무화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권고하는 수준을 넘어 법률로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현지 진출 한국 기업들은 “납품업체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ESG가 이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 양상이다. 발빠르게 나서는 국내 대기업에 비해 대응이 뒤처지는 중소·중견기업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에 진출한 300여개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유럽한국기업연합회’는 8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에 “글로벌 가치사슬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원청기업이 모든 납품업체의 규정 준수 여부를 일일이 체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에 따르면 연합회는 의견서에서 “EU가 추진하는 강제 의무는 기업의 행정적 리스크를 과도하게 증가시키고 하청업체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제기구의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ESG 경영에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앞서 유럽의회는 지난달 27일 기업이 공급망 전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인권·환경 등을 침해하는 활동 여부를 확인해 보고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입법 권고안을 공개했다. 원청이 하청업체의 환경오염 물질 배출 여부, 노동자 근무환경 등의 사항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는 해외 기업도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올 2분기 내에 법률 초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도 향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개정 시 환경과 인권 등의 규범을 최우선에 놓을 방침이다. 앞으로는 아무리 저렴하고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내놓아도 제조 과정에서 환경 파괴나 비윤리적 행위가 발생할 경우 수출길이 막히는 셈이다.
국내 산업계로서는 이 같은 ESG 강화 조류에 맞춘 가이드라인과 평가체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소·중견기업도 통상 환경 급변에 대비할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이 함께 필요한 것이다.
조빛나 무역협회 브뤼셀지부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는 EU 기조를 고려할 때 입법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한국 기업에) 비용이자 규제가 될 수 있어 법률 초안을 주시하며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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