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선 흔한 기업인 재산환원..한국도 '기부 약속 운동' 번질까
"우리 사회에 선진적 기업 경영과 기부 문화를 여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9일 카카오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전날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김 의장의 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 불러올 변화가 적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을 내비친 셈이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그간 우리나라에선 선대 창업가가 기업을 일궈 이룬 부를 후대에 물려주고, 후대는 이를 잘 계승하는 게 '기업가 정신'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의장은 이런 틀을 깼다. 미국만 해도 김 의장 방식이 더 일반적이다.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대신 생전에 기부 약속을 하고 은퇴 후 자선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김 의장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이런 기업 문화가 확산할 수 있을까.
미국 유명 기업인들 "나도 재산 절반 이상 기부하겠다"
김 의장은 전날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며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기부서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부 금액(5조원 추산) 자체가 워낙 거액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속에만 골몰하는 한국 부자들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동종 업계에서도 "어렵지만 숭고한 결정을 내렸다"는 찬사가 잇따랐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김 의장의 파격적인 기부 선언은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런 장면이 흔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억만 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 석유왕 존 록펠러. 이들은 미국의 대표적 억만장자이면서 동시에 기부왕으로도 유명하다.
빌 게이츠는 은퇴 전 세 자녀에게 각각 1,000만달러(약 108억원)씩만 물려주고 재산의 나머지 95%는 기부하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40조원 넘는 돈을 기부하며 약속을 지키고 있다. 저커버그는 2015년 12월 딸이 태어난 뒤 페이스북의 자신 지분 99%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지분가치로만 50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최소 50%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더 기빙 플레지' 명단(순자산 1조원 이상만 가능)엔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 CEO,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테드 터너 CNN 창립자, 연예 재벌 배리 딜러 등 올 2월 기준 218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 명단에 한국인은 없다.
한국서도 '기부 약속 운동' 번질까
물론 미국에서도 처음부터 이런 파격적인 기부 문화가 일반적이었던 건 아니다. 록펠러, 조지 소로스 등 1세대 억만장자들의 잇따른 거액 기부가 다른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귀감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지금의 경쟁적 기부문화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 역시 자신이 자선가로 변신하는 데 영향을 끼친 인물로 3명을 꼽았는데, 아버지와 아내, 나머지 한 명이 록펠러였다. 기부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가진 재산이 많을수록 사회 책임도 더 크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부분도 닮았다.
반면 우리처럼 막대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은 흔치 않다. 막대한 부가 자식들이 새로운 걸 성취하려는 동기를 없애 오히려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액을 기부하지만 기업 가치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많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이 되면 그만큼 소비자 신뢰를 쌓는 게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이날 여 대표가 "카카오의 기업 가치가 높아지는 일이 더 나은 사회와 환경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업계에선 김 의장의 기부 선언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기부 약속 운동'이 확산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나아가 '승계'에 초점이 맞춰진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관행에도 변화가 뒤따를지도 관전 포인트다.
카카오는 실적 역시 순풍을 탔다. 카카오는 지난해 매출 4조1,567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매출 4조 시대'를 열었다. 영업이익은 4,560억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121%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카톡으로 선물하기 등을 이용하는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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