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민주당 비판 "징벌적 손배 언론검열인가"
새 집행부와 연대 성명 "참담하다…알곡까지 죽일 제초제, 민주당의언론개혁 무엇인가"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월 임시국회 중점 법안인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언론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언론검열이냐는 거친 표현을 쏟아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언론노조는 9일 저녁 내놓은 성명 '언론개혁인가? 언론검열인가? 민주당은 답하라!'에서 “민주당에게 분명히 묻는다”며 “이번 달 안으로 처리하겠다는 여섯 개의 법률 개정안이 정말 '민생'을 위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언론노조는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언론이 포함되지 않다가 오늘 또 포함되었다는 '해석'이 나온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라며 “며칠 사이 언론보도로 누군가 '심리적으로 중대한 피해'를 입기라도 했기 때문인가? 언론개혁을 주문했더니 언론검열로 답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언론노조는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려 정권을 교체한 시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고, 언론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썼다. 이어 언론노조는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는 공영방송, 사주의 눈먼 이익에 휘둘리지 않는 신문과 방송,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아니라 시민에게 책임을 지는 언론이 되기 위한 핵심 법안을 요구했다”며 “2월 중 통과시키겠다는 여섯 개 법안은 갈아 엎어야 하는 밭은 놔두고 잡초를 뽑겠다며 알곡까지 죽일 제초제와 다를 바 없다”고 맹비난했다.
언론노조는 민주당에게 “지금 당장 여섯 개의 법률개정안 심의를 중지하고 언론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하는 공청회를 개최하라”며 “민주당의 언론개혁이 무엇인지, 시민이 원하는 언론개혁이 무엇인지 귀를 열고 듣겠다”고 밝혔다.
특히 언론노조는 성명 앞부분에 법안이 통과된 이후의 언론계 풍경을 가상의 사례로 제시하기도 했다. 언론노조는 △불법 비자금 연루의혹이 제기된 한 국회의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해 언론위원회 결정으로 포털뉴스에서 관련 보도가 사라진 설정 △예방접종 부작용이 심각한 사안을 보도하면서 감수한 소송과 뉴스 차단이 빗발쳤다는 설정 △공영방송에서 낙하산 사장 임명 내부 논쟁으로 국회의원 불법 비자금 연루 의혹과 예방주사 부작용에 대한 말들이 사라진 설정을 보여줬다. 모두 가상의 주장이지만 언론노조는 “소설이 아니다”라며 “며칠 전 민주당이 2월 안에 통과시키겠다고 한 여섯 개 법률 개정안이 발효될 여섯 달 후의 풍경”이라고 주장했다.
오는 3월2일 출범할 차기 언론노조 집행부에 윤창현 SBS 기자가 새 언론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다음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9일 내놓은 성명 전문이다.
언론개혁인가? 언론검열인가? 민주당은 답하라!
2021년 8월. 시계를 앞당겨 보자. 한 국회의원 비서관이 의원의 불법 비자금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의원은 이를 보도한 모든 언론사에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 또는 불법정보 생산, 유통으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여기에 언론위원회의 결정으로 관련 보도는 포털 뉴스에서 하루 아침에 모두 사라졌다. 해당 의원의 다른 활동을 다룬 뉴스에 의혹을 제기한 무수한 댓글들에는 '볼 수 없음'으로 표시됐다. 의원은 이 댓글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중대한 침해”를 입었다며 포털에 이의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 의혹을 수 개월 간 심층취재해 온 한 방송사 기자에게 담당 부장이 전화를 했다. “그만둬라. 너 형사 소송 들어왔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란다.”
몇몇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접종이 시작된 예방주사의 부작용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수 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당일 저녁 방송사 뉴스와 아침 신문, 그리고 포털에 짧은 리포트로 보도됐다. 보도 직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허위정보'라는 이유로 방송사의 인터넷 다시 보기 영상 삭제 요구가 접수됐다. 포털로 기사를 송고한 언론사에는 바로 해당 주사약 제약사들이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주사약의 반품이 밀려들었다”며 손실액의 3배에 달하는 배상액을 요구했다. 몇몇 언론사들은 그럼에도 더 많은 제보를 통해 연속취재 기사를 올렸고 법정 소송을 감수했다. 그러나 판결이 날 때까지 뉴스와 기사는 속속 차단됐고 항소가 이어졌다.
몇 달이 흘렀다. 공영방송에 새로운 이사들이 임명됐다.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정당이 추천한 이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임기가 다 되어 가는 사장의 추천을 두고 설전이 오갔다. “대선을 앞둔 낙하산 사장이다”라는 목소리에 “이사 다수가 추천했다. 법대로 한 것이다”는 반박이 오갔다. 보도국에서는 불과 몇 달 전 국회의원 불법 비자금 연루 의혹과 예방주사 부작용에 대한 말들이 사라졌다. 그저 누가 사장이 될지, 조직개편은 또 어떻게 될 지에만 모든 관심이 쏠렸다.
소설이 아니다. 며칠 전 민주당이 2월 안에 통과시키겠다고 한 여섯 개 법률 개정안이 발효될 여섯 달 후의 풍경이다. 오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은 이 개정안들이 “미디어 관련 피해구제 민생법”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2018년 초, 이낙연 총리가 “가짜뉴스 대책”을 주문한 이래 민주당 언론개혁의 돋보기는 모두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이후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언론개혁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개적인 토론회 조차 열기 힘들었던 때, 한 국회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과는 다른 대안이 나온 토론회에서 “결론을 짜맞춘 듯한 토론회”라며 “이 토론회는 무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을 위한 '가짜뉴스 규제'와 '피해자 구제' 관련 법안 토론회에는 단 한 명의 시민도 초청받지 못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민주당에게 분명히 묻는다. 이번 달 안으로 처리하겠다는 여섯 개의 법률 개정안이 정말 '민생'을 위한 것인가?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언론이 포함되지 않다가 오늘 또 포함되었다는 '해석'이 나온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며칠 사이 언론보도로 누군가 “심리적으로 중대한 피해”를 입기라도 했기 때문인가? 언론개혁을 주문했더니 언론검열로 답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려 정권을 교체한 시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언론의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국언론노동조합의 1만 5천 조합원들은 우리의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이 시민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는 공영방송, 사주의 눈먼 이익에 휘둘리지 않는 신문과 방송,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아니라 시민에게 책임을 지는 언론이 되기 위한 핵심 법안을 요구했다. 2월 중 통과시키겠다는 여섯 개 법안은 갈아 엎어야 하는 밭은 놔두고 잡초를 뽑겠다며 알곡까지 죽일 제초제와 다를 바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민주당에게 요구한다. 지금 당장 여섯 개의 법률개정안 심의를 중지하고 언론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하는 공청회를 개최하라. 민주당의 언론개혁이 무엇인지, 시민이 원하는 언론개혁이 무엇인지 귀를 열고 듣겠다.
2021년 2월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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