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가라앉지 않는 법원 정기 인사..어땠길래?

조윤영 2021. 2. 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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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직 문제를 둘러싼 진실공방 과정에서 불거진 거짓말로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한 법원 안팎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대법원이 단행한 법원 정기인사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사법농단’ 진상조사에 참여한 판사들을 전면 배치한 ‘코드 인사’란 평가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을 다룬 판사들을 다시 법원행정처로 불러들인 ‘사법농단 의혹 사태를 잊은 인사’라는 상반된 평가가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요 사건을 맡던 재판장들 가운데 일부는 내보내고 일부는 유임시켜 뒷말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28일 법원장과 고법 부장판사 인사에 이어 지난 3일 지법 부장판사 이하 인사를 단행했다.

‘코드 인사’ VS ‘사법농단 잊은 인사’

‘코드 인사’ 논란은 서울중앙지법 핵심 요직에 사법농단 의혹 등에 대한 진상조사에 참여하거나 검찰 수사를 주장한 판사들을 앉히며 불거졌다. 9일 부임한 성지용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김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2017년 1·2차 ‘사법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에 참여했다. 성 원장을 도와 사건 배당 등 형사재판 사법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된 고연금 부장판사도 1차 진상조사위원이었다. 송경근 신임 서울중앙지법 민사1수석부장판사 역시, 2018년 6월 법원 내부 게시판에 “검찰이 (법원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다면 이에 적극 협조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인물이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이번 인사를 두고, 사법농단 사태를 촉발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요직에 있던 판사들을 배치했다는 정반대의 평가도 나온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재직할 때 기획조정실 기획총괄심의관이던 박영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한 판사는 “‘탕평 인사’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종전처럼 관료화나 효율성으로 대표되던 과거의 사법행정과 지금의 사법행정이 지향하는 가치도 서로 맞지 않는다”며 “사법농단 의혹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 판사들을 중용해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나 철학이 의심받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사실과 다른 해명 논란 등으로 오히려 묻히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례적 연임에 “원칙 사라진 인사”

지역을 이동하며 일하는 법관 업무 특성상 한 법원에서 근무 기간은 통상 3년으로 제한된다. 특히 서울중앙지법은 전입을 희망하는 판사가 몰리기 때문에 형평성과 인사 예측 가능성 등을 고려해 3년 근무를 원칙적으로 보장한다. 그러나 이번 인사를 두고 서울중앙지법 내부에선 “원칙이 사라진 인사”라는 평이 나온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을 심리한 형사21부의 김미리 부장판사와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형사25부의 임정엽 부장판사, 김선희 부장판사는 모두 올해로 3년을 채웠으나 모두 잔류를 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형사25부의 두 부장판사만 서울서부지법으로 옮겨가고 김 부장판사만 유임이 확정돼 형사재판을 1년 더 맡을 가능성이 커졌다. 여권에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들을 내보내고 김 부장판사만 유임이 확정되면서 ‘코드 인사’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부패·선거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21부는 조 전 장관 사건 외에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등 여권과 가까운 의원들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배당됐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신속한 처리를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추가 사건 배당도 중지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안팎에선 형사21부가 집중 심리가 가능한 상황이 됐는데도 사건 처리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실제로 지난해 1월 배당된 조 전 장관 사건은 유재수 전 경제부시장의 직권남용 사안만 심리를 끝냈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도 1년여간 공판준비 절차만 5차례 열린 것이 전부였다. 서울중앙지법 한 부장판사는 “일주일에 2차례씩 재판을 하던 정 교수 사건과 비교해도 조 전 장관 재판 진행에 차이가 크게 나 그 이유를 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며 “이런 점 때문에 재판장에 따라 사건 결과가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법원 내부에서는 커졌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관련 사건의 재판부 인사도 마찬가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을 맡은 형사35부 판사들은 모두 전보됐다. 반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을 6년째 심리하는 형사36부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 남게 됐다. 판사가 한 법원에만 6년씩 머무는 것은 이례적이다. 두 사건 모두 사건 내용과 기록이 방대해 심리 초기부터 다른 사건 배당도 중지하고 집중 심리에 들어갔지만 재판부 교체로 양 전 원장 사건은 심리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중앙지법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재판뿐 아니라 법관 인사도 밖에서 바라보는 외관의 공정성도 중요하다”며 “원칙에 따른 인사라는 인상을 줘야 하는데 이번 인사에선 이 점을 두고 말이 많다”고 덧붙였다.

갈지자 인사…양쪽 비판 피하려다 논란 키웠나?

이번 정기인사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는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김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후속 조처에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어느 한쪽에서도 비판받지 않으려는 모양새를 갖추려다 원칙 없는 인사를 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한 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중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력이 아니라 겉모습을 더 중시한 인사”라고 꼬집었다. 한 부장판사는 “좁은 인사 풀에서 인사를 하다 보니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라며 “사법농단 의혹 사태 이후 법원행정처 권한과 기능이 약화된 만큼 실무적이고 효율적인 측면에서 사법행정 업무능력을 인정받는 판사들을 앉혔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 내부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줄 세우기’식 인사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과 함께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성향을 단정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면서도 “김 대법원장의 사실과 다른 해명 이후 법원 내부에 쌓인 불만이 분출되는 듯하다”고 했다.

조윤영 장예지 신민정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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