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과 협의 前정권 인사 '적폐' 몰아..김은경, 文정부 장관으론 첫 법정구속

이희진 2021. 2. 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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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1심 선고 배경
재판부 "원하는 사람 임용 목적
사표 징구.. 거부자는 표적감사"
내정자가 서류심사서 탈락하자
'적격자 없음' 처리도 강력 비판
정권 교체기 '관행' 주장 놓고선
"이렇게 대대적인 사표 징구 없어"
김 前 장관측 "즉각 항소할 것"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에 대한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고인 김은경을 징역 2년6월에 처한다.”

“하….”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 김선희 재판장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실형을 선고하자 방청객 1명이 탄식을 내뱉었다. 김 전 장관이 법정에 입정할 때 어깨를 토닥이며 응원해줬던 김 전 장관 지인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박근혜정부 시절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하고, 본인들이 점찍어 놓은 인물을 공공기관 임원에 앉히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1심에서 결국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 전 장관에겐 징역 2년6개월 실형이, 신 전 비서관에겐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공공기관 임원 사표 제출 강요,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 관여 등 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봤다. 공정성을 강조해온 문재인정부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이들을 ‘적폐’로 몰며 자의적으로 인사조치를 했음이 이번 판결에서 인정됨에 따라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그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법원에서 유죄 판단을 받은 바 있지만 전직 장관이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됐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은 더욱 크다.

◆“공공기관 임원 채용 과정에 대한 깊은 불신 야기”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범행 전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봤다. 김 재판장은 “피고인은 청와대와 협의해 원하는 사람을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용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사표를 징구했다”며 “그 과정에서 사표 제출을 거부하는 임원에 대해서는 표적감사를 실시해 사표를 제출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피고인은 공동피고인 신 전 비서관과 공모해 공석이 되거나 공석이 될 산하 공공기관 임원 직위에 청와대와 환경부 몫을 정한 다음, 내정자를 정하고 내정자를 임원추천위원회 심사에서 최종 후보자에 포함되도록 지원하라고 지시해 환경부 공무원들이 내정자들에게만 기관 업무보고나 면접 예상 질문을 제공하게 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의 이 같은 행위가 “공공기관운영법의 입법취지를 몰각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12명의 공공기관 임원이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직했거나 지위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었고, 정상적으로 심사됐을 경우 최종 후보자로 선정될 수 없었던 일부 내정자들이 공공기관 임원에 임명될 수 있었다”며 “각 임원 공모에 지원한 130여명에게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심한 박탈감을 안겨줬으며 지원자 및 국민들에게 공공기관 임원 채용 과정에 깊은 불신을 야기했다”고 꾸짖었다.

◆법원 “이렇게 대대적인 사표 징구 관행 없어”

재판부는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인사들을 교체하는 게 ‘관행’이었다며 억울함을 주장한 피고인들의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사표 징구 관련, 이전 정부에서 정권이 바뀌었을 때 일부 기관장이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구 정부 산하기관 관리기본법 제정 및 시행 이후 이 사건과 같이 계획적이고 대대적인 사표 징구 관행은 찾아볼 수 없다”며 “설령 이전 정부에서도 변호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지원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명백히 법령에 위반되고, 폐해도 매우 심해 타파돼야 할 불법적인 관행이지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청와대가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내정자로 점찍어 놓은 자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자 김 전 장관이 서류전형을 통과한 7명에 대해 ‘적격자 없음’ 처리를 한 행위도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청와대가 추천한 내정자가 서류심사에 탈락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임원추천위원회 면접심사에서 서류심사 합격자를 모두 적격자 없음 처리하도록 하는 등 공공기관 임원 채용이라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해당 임원 공모에 지원한 지원자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환경공단 서류심사에서 탈락한 내정자는 결국 공공기관이 주주로 있는 유관기관의 대표로 취임했다. 이 과정에도 김 전 장관의 입김이 닿았다.

실형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된 김 전 장관 측은 즉각 항소할 예정이다. 김 전 장관 변호인은 “저희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판결“이라며 “항소심에서 잘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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