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사 소송 가능한데 또 다른 처벌.. "과잉입법" 비판 고조

장혜진 2021. 2. 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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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언론·포털도 뒤늦게 제재 포함
與 "당초에 대상서 뺀다는 말 없어
피해구제지 언론탄압법 아냐" 해명
가짜뉴스 정의 시간 두고 논의키로
광우병 사태땐 "언론 자유" 옹호 논란
법조계 "표현의 자유 신장 노력 무색
언론의 권력 눈치보기 부작용 우려"
더불어민주당 미디어·언론상생태스크포스(TF) 단장인 노웅래 의원(가운데)이 9일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기존 언론·포털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이 9일 개인의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뿐 아니라 언론과 포털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대상에 포함키로 하면서 언론·법조계 등을 중심으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언론 개혁 입법을 통해 ‘가짜뉴스’를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기준을 세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현행법상으로도 잘못된 보도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과 처벌이 가능한데도 이에 더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잉입법이란 비판이 많다. 과거 광우병 사태와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당시 확인되지 않은 의혹 제기를 ‘언론 자유’로 옹호했던 민주당이 집권을 하자 오히려 정권비판 보도를 억압하려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언론탄압법 아닌 민생법안”

민주당 미디어·언론상생태스크포스(TF) 단장인 노웅래 의원은 이날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가짜뉴스 처벌 대상 중 언론을 뒤늦게 포함시켰다는 지적에 대해 “안 넣는다고 하지는 않았다”며 “1차적으로 가짜뉴스가 넘치고 범람한 것이 유튜브와 SNS, 1인 미디어라고 봐서 이를 타깃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자는 것이었지 언론을 빼자는 것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언론의 자유 침해 관련 논란에 대해서는 “피해구제 민생법안이지 언론탄압법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회의에서는 이와 관련한 참가자 간 격론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쟁점 중 하나인 ‘가짜뉴스’의 정의와 기준 규정 및 관련 처벌 규정의 명문화는 2월 임시국회 내 처리 대신 시간을 두고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노 의원은 “가짜뉴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짧은 시간 내 처리할 수 있는 법이 아니다”라며 “상당히 숙려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짜뉴스’를 처벌하는 법은 없다는 게 언론학계 주장이다. 독일에서 SNS상에서의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은 있지만 ‘가짜뉴스’를 누가,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모호하기 때문에 이를 제도화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가짜뉴스’ 기준을 정할 경우 그 기준 자체가 형평성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법조계 “표현의 자유 침해… ‘칠링 이펙트’ 우려”

법조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언론전담재판부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언론에 대한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s·과도한 규제나 압력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현상)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그간 들여온 노력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2000년대 이후로 정정보도 청구와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하는 주된 부류가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라며 “언론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길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정향 강호석 변호사도 “가짜뉴스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언론의 정당한 권력 비판·감시 기능 위축이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잉입법과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법무법인 씨케이 최진녕 변호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허위사실은 물론 사실적시도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민사 책임을 더 묻겠다는 것”이라며 “언론 자유를 떠나 다른 법률과의 형평성과 정합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란 지적까지 나올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인협회·한국기자협회 공동으로 열린 관련 토론회에서도 과잉입법과 위헌 논란이 제기됐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법제에 모욕죄 및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등을 두고 있어 권력자 및 정부에 대한 표현의 자유 보장 수준이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면서 추가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허용한다면 표현의 자유 제한을 가중해 민주주의 기본원리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9년 4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방송4사구성작가협의회, 방송인총연합회 등이 언론탄압 중단과 광우병 위험성 보도 관련 MBC PD수첩 제작진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우병 보도 논란 당시 민주당 “표현의 자유, 언론자유 억압”

그간 언론의 허위보도가 쟁점이 됐던 대표적 사건은 이명박정부 당시이던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사건이다. 2011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부가 MBC 제작진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보도 내용이 일부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하면서도 “허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특히 진보 성향의 박시환·김지형·전수안 전 대법관은 소수 의견을 통해 “자유로운 견해의 개진이나 공개된 토론과정에서 다소 잘못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고 무릇 표현의 자유에는 그것의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했다.

특히 “진위가 거의 확실하게 확인된 정도에 이르지 아니한 대부분의 언론보도가 단정성 측면에서 허위인 보도”로 인정되는 데 대해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방송의 표현의 자유, 언론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법적 분쟁으로 끌고간 명백한 정치적 사건”이라고 질타한 바 있다.

장혜진·이창수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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