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남성 유튜버 뮤즈 "나와 같은 청소년들에게..그래도 돼"

오경민 기자 2021. 2. 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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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연예인 하리수씨를 떠올린다. 미디어가 재현하는 트랜스젠더는 ‘트랜스여성(출생 시 남성으로 지정됐으나 스스로 여성으로 인식하는 사람)’에 한정돼 있다. ‘트랜스남성(출생시 여성으로 지정됐으나 스스로 남성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논바이너리(남성·여성의 이분법적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지 않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를 통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트랜스남성이 있다. 이름은 뮤즈(29·활동명). 연인인 모니카(24·활동명)와 함께 커플 유튜브 채널 ‘발라TV’를 운영 중이다. 뮤즈와 모니카는 노래방 데이트, 발렌타인데이 이벤트 등 알콩달콩한 일상을 보여준다. 또 다른 주제는 이들의 성소수자 정체성이다. 뮤즈는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일어난 변화와 외과적 수술 후기 등 의료 트랜지션 과정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트랜지션이란 출생시 지정된 성별의 외모, 신체 특징, 성역할 등을 자신이 원하는 성별 표현을 위해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법적 성별정정, 호르몬 요법, 외과적 수술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인터뷰 내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커플을 지난 1일 기자가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튜브 채널 ‘발라TV’에 뮤즈(왼쪽)와 모니카(오른쪽)이 출연하고 있다. 발라TV 제공.


뮤즈는 의료 트랜지션 후 법적 성별 정정을 했다. 먼저 정신과에 가서 ‘성정체감장애’ 진단을 받았다.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외과수술 등 의료적 조치를 받거나 법적 성별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과에서 ‘성정체감장애’ 혹은 ‘성주체성장애’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성정체감장애이나 성주체성장애 등은 더이상 트랜스젠더의 신체적 경험을 장애로 여기지 않는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는 표현이지만 한국 의료기관들은 여전히 ‘F64.0’라는 질병분류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마저도 아무 정신과에 찾아간다고 받을 수 없다. 의료진들조차 성소수자, 트랜스젠더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뮤즈는 “(트랜지션을 할) 당시에는 서울에서 두 곳 정도가 가능했다”고 했다.

외과적 수술 관련 정보도 제약돼 있긴 마찬가지다. 뮤즈와 모니카는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트랜지션 관련 정보를 찾았다.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낀 두 사람은 자신들이 겪은 어려움을 다른 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술 정보와 과정을 모두 유튜브에 공개했다. 부작용과 통증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법적 성별정정을 위해 찾은 법원은 ‘최종 보스’였다. 처음 찾은 법원에서는 “우리는 못 해주니 다른 법원에 가봐라”라는 말을 들었다. 성별 정정과 관련한 규정은 대법원의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권고 차원에 불과하다. 뮤즈는 “결국엔 판사 마음”이라며 “같은 조건으로도 다른 법원에서는 몇 차례 질문 뒤에 성별 정정 허가를 내줬다”고 말했다.

모니카는 이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뮤즈가 처음으로 ‘나는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한 대상은 모니카였다. 커밍아웃 이후 “그래도 돼”라고 말한 모니카의 한마디에서 뮤즈는 용기를 얻었다. 뮤즈는 “주변에서 이제까지 ‘(지정성별이 여성인 사람이 남자여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모니카는 처음으로 ‘그래도 된다’고 해줬다”고 떠올렸다. 초등학생 때부터 성별불쾌감을 겪어온 뮤즈는 모니카와 함께 트랜스젠더, 트랜지션에 대해 공부하며 1년반 동안 ‘빠르게’ 법적 성별도 정정했다.

모니카 역시 뮤즈를 만나며 스스로의 성적지향을 다시 정체화했다. 모니카는 이제는 ‘팬섹슈얼’(범성애자. 상대의 남녀 자체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성애자와 다르다)로 본인을 소개한다. 모니카는 “뮤즈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그게 싫지 않고 오히려 감동이었다”며 “이후 상대방을 성별 구분없이 사랑하는 ‘팬섹슈얼’의 정의를 보고 ‘내 얘기’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은 두 사람은 커밍아웃한 두 사람을 지지하고 환대했다. 모니카는 “저희가 뉴스에 나온 적이 있는데, 친척 중 한 분이 보시고 친척들이 전부 알게 됐다”며 “이모부는 뮤즈에게 ‘언제 남자끼리 밥 한번 먹자’고 하시고 할머니는 ‘너희 참 재밌게 산다. 지금처럼 행복하게, 재밌게 잘 살면 된다’고 하셨다”고 했다. 각자의 부모님들 역시 뮤즈와 모니카를 응원한다.

뮤즈는 여중, 여고를 다녔다. 중학교 때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성별불쾌감이 심해졌다. 화장실의 경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오히려 편했다. 그러나 ‘성별이분법’은 여학교라고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머리가 짧고 바지를 입는 뮤즈를 ‘문제아’ 취급했다. 뮤즈는 “전교에서 바지 입은 학생이 저 밖에 없어서 ‘왜 여자가 바지를 입냐’며 볼 때마다 (선생님들이) 때렸다”며 “머리가 좀만 짧아도 ‘여성스럽지 못하게 왜 이러느냐’고 하고, 가족에게 연락해 ‘아우팅’(당사자가 원치않는 성정체성 폭로)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강압적으로 (성별이분법에) 저를 맞추려고 하니까 그런 게 싫어서 더 학교를 안 가게 됐다”고 말했다.

일자리 역시 문제였다. 뮤즈는 트랜지션을 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관뒀다. 호르몬을 맞으며 외모가 바뀌기 시작한 후로는 남자화장실도 여자화장실도 가기 어려웠다. 뮤즈는 “같은 건물 사람들이 다 여자로 알고 있으니까 화장실을 가는 데 문제가 생겼고 그런 점이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일을 그만 두게 됐다”고 했다. 이후 구직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력서를 본 후 걸려온 전화에서 “본인 맞냐”고 물어보는 일이 잦았다. 뮤즈는 “상대방을 이해시키려고 커밍아웃을 해야 되는 상황이 반복됐다”며 “커밍아웃을 하면 ‘다시 서류 검토하고 연락하겠다’고 한 뒤 연락이 없기도 했다”고 했다. 결국 뮤즈가 다시 자리잡은 곳은 성소수자 지인이 있는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두 사람이 트랜스젠더 가시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를 만난 적 있는 사장님이 뮤즈를 이해했듯, 발라TV를 본 누군가가 트랜스젠더를 만났을 때 그이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두 사람은 트랜스젠더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뮤즈는 외과적 수술을 받으면서 그동안 모은 돈을 한번에 썼다. 2014년 성소수자단체 ‘친구사이’에서 발간한 ‘한국 LGBTI커뮤니티 사회적욕구조사’에 따르면 성기수술에 드는 비용은 트랜스젠더 남성의 경우 평균 1926만원이다. 모니카는 “성별불쾌감에 따라 오는 질병, 우울증 같은 것들이 있고 (의료 트랜지션 등을 통해) 그걸 해소하지 못하면 학업이나 직업 선택의 기회를 제약받을 수 밖에 없다”며 “(트랜지션은) 취향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휠체어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경사로를 만드는 것처럼, 의료보험 등 트랜스젠더를 위한 지원도 당연하게 국가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지향점은 당사자성을 넘어 타자를 향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최근 모니카와 뮤즈는 비거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모니카는 “소비 습관도 많이 달라졌고, 이제 10끼를 먹으면 9끼는 비건으로 먹는다”며 “뮤즈와 함께 고민하다 보니 더 으쌰으쌰해서 잘 가게 된다”고 했다. 뮤즈의 새해 목표는 ‘비건 베이킹 배우기’다. 언젠가 비건 카페를 열 계획이다.

어릴 적 뮤즈와 같은 고민을 하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뮤즈는 모니카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돌려줬다. “‘그래도 된다’는 그 말을 해주고 싶다. 제가 청소년 때 그런 말을 들었더라면 많은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좋지만…그래도 덜 힘들고, 덜 어려운 길을 가지 않았을까.”

모니카도 덧붙였다. “제 인생의 목표이기도 한데 ‘내멋대로 살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당하고, 계속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들을 마주하더라도, 중심을 잃지말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알면서 그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갔으면 한다.”

뮤즈와 모니카. 모니카 제공.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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