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권력' 개미, 주총 표대결·줄소송 나섰다
주총 소집해 경영권 확보 나서
지스마트글로벌은 탄원서 제출
"방만한 경영진 책임 묻겠다"
소액 지분으로 뭉친 개미(개인투자자)들의 힘이 점점 세지고 있다. 막강해진 소액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을 예고하거나 경영진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리찾기라는 면에서는 정당한 활동이지만 과도하게 이익에 집착하느라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돈은 못 찾아도 정의는 찾겠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코스닥시장 상장사 포티스의 소액주주들이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지분을 모으고 있다. 주주들은 회사 측이 시간을 끌면서 상장폐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고 행동에 나섰다. 포티스는 횡령·배임 등으로 작년 3월부터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디지털 셋톱박스 업체인 포티스는 배우 김희애 씨의 남편이자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인 이찬진 씨가 대표를 맡았던 곳이다. ‘포티스 정상화 소액주주연대’는 “내 돈은 못 찾더라도 정의는 찾겠다”며 주주활동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지분을 확보해 임시주총을 소집하고 경영진을 교체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소액주주 비율은 99.99%에 달한다.
씨젠의 개인투자자 모임인 ‘씨젠 주주연합회’도 임시주총 소집을 위해 위임장을 받고 있다. 지지부진한 주가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주주연합회는 코스닥에 상장돼 있는 씨젠을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고, 무상증자와 액면분할 등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스마트글로벌 소액주주들 역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 지분을 모으고 있다. 회계장부열람 소송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들은 경영진 처벌을 위해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지식재산 부동산범죄전담부에 탄원서를 연이어 제출하고 있는 상태다.
경영권 교체 이뤄낸 개미들
개인투자자가 늘면서 소액주주 운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인쇄기 부품 제조업체 한프는 작년 소액주주들의 힘으로 경영진을 교체했다. 메이슨캐피탈의 경우 경영권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소액주주 지분 38%를 확보해 회사를 견제할 수 있는 감사 선임에 성공했다.
의결권 확보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로코모티브의 이태성 대표는 “작년 3월 이후 개인투자자가 많아지면서 투자자 수가 최대 4배까지 늘어난 기업이 있을 정도”라며 “임시주총이나 정기주총 공시가 뜨면 종목토론방이나 메신저를 통해 소액주주연대가 형성되고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밝혔다.
소액주주운동 사례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작년 9월 7일 슈펙스비앤피 대표를 포함한 세 명이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되고 거래가 정지되자 다음날 소액주주들은 종목토론방에서 곧바로 연대했다. 정우영 슈펙스비앤피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지분 20%를 모으면 소액주주연대의 의사를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5.7%의 적은 지분으로 소액주주를 무시하는 방만한 경영진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을 위해 전문적으로 법률 자문에 나선 곳도 생겨났다.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의 정병원 변호사는 소액주주운동 지원센터를 최근 개설했다. 그는 “단순히 경영권을 가져오겠다는 소액주주운동이 아니라 경영진의 무능함과 위법성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정의 실현 vs 주가 부양
삼성전자 역시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2019년 12월 말 56만8313명이던 소액주주는 작년 말 215만3969명으로 늘었다. 명실상부한 ‘국민주’가 된 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정규배당을 늘리겠다고 발표하며 적극적인 주주친화 방침을 예고했다.
상장사들은 전자투표제 도입을 통해 주주친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SK바이오팜, 롯데제과, 한국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LG유플러스 등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처음으로 전자투표제를 도입한다고 공시했다.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 특성상 개인들이 지분을 많이 보유해도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라며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주주 권리보다는 단순한 주가 부양을 위한 이합집산 사례가 상당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태성 대표는 “일부 소액주주연대는 ‘물거품’과 같은 존재”라며 “주가 부양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해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소송·분쟁을 통해 주가가 올라가길 원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경제/박재원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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