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타이틀 달아야 잘 팔린다"..2년 새 변호사 30여명 줄줄이 로펌행

이다비 기자 2021. 2. 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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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선임변호사 A씨(39)는 최근 사표를 냈다. 8일 금융당국과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이달 중순 대형 법무법인(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그는 김앤장에서 앞으로 금융 관련 사건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A씨는 2019년부터 이어진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사건에서 금감원이 라임운용을 검찰에 고발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사모펀드 법률 자문 등을 맡은 다른 금감원 변호사 B씨도 지난 8월 김앤장으로 이직했다.

이들 사례처럼 금감원에서 대형 로펌으로 이직하는 실무자급 변호사가 많아지고 있다. 라임운용 사태에 이은 옵티머스 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건 등 금융권에서 사모펀드 관련 수임과 소송이 줄 잇자, ‘돈벌이’가 된다고 판단한 로펌들이 금감원 소속 변호사 모시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18년 5월 윤석헌 금감원장 취임 이후 지난해 9월 말까지 변호사 30여명이 금감원을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1년에 8명 이내 변호사가 퇴사한 것과 비교하면 퇴사자가 늘었다. 퇴사한 변호사 대부분은 경력 5~10년 차 사이의 실무자급이 많은데, 이들은 주로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선DB

특히 대형 로펌이 금감원 출신 변호사 선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라임운용 사태 당시 금감원 출신이 많은 법무법인 화우가 라임펀드 판매사인 KB증권을 비롯해 대신증권, 신한금융투자 3사 대표 법무법인을 맡는 등 두각을 보이자 다른 대형 로펌들도 금감원 출신 변호사 모시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화우에는 금감원 1호 법무팀장을 출신 변호사 등 금감원 제재심의실, 자본시장조사국, 법무실, 회계감독국 등을 거친 변호사가 다수 소속돼 있다. 화우는 이를 바탕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조작 사건이나 DLF 불완전판매 등을 법률 자문하는 등 금융 분야를 선점했다.

라임운용 사태 이후 ‘제2의 라임’이라고 불리는 옵티머스 사태 때도 대형 로펌들이 판매사 측에 주목했다. 김앤장은 옵티머스펀드 최대 판매사인 NH투자증권과 수탁사인 하나은행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김앤장이 라임 사태 때 판매사 대표 법무법인 자리를 맡지 못했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 옵티머스 사태에 더 집중했다고 보고 있다. 김앤장은 라임 사태 초기에 라임자산운용 측에 소속 변호사를 보내 법률 자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대형 로펌이 은행이나 증권사 쪽 수임을 맡게 되면서 로펌 사이에서는 금감원 출신 인력을 보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법무부가 집단소송제를 전 분야로 확대하는 내용의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로펌들은 사모펀드 사태 관련 소송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금감원 변호사들의 탈(脫) 금감원 현상을 두고 금융당국이 변호사 경력 관리용이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팀장이나 선임, 수석 등 실무진에 해당하는 금감원 소속 변호사들이 연이어 대형 로펌으로 이직하면서 금감원이 ‘로펌 변호사 경력용 징검다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판매사와 수탁사 등 기업들은 금융 사고가 발생하면 주로 대형 로펌에 사건을 맡기고 있다"라며 "이로 인해 정·관계에 이어 금융당국까지 로펌에 포획당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금감원에서 대형 로펌으로 소속을 옮기는 건 불법은 아니다. 다만 소속 변호사들의 로펌행과 관련해 금감원 내부에서도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사모펀드 사태가 끝나지 않은 만큼, 사모펀드 분야를 담당했던 변호사가 운용사와 판매사, 수탁사를 변호하는 로펌으로 이직하는 건 금감원의 신뢰성을 깎아 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진행 중인 수사 관련 내부 자료가 유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 금감원 직원은 "실무자가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는데 이직하면, 관련 금감원 자료가 유출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직원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대상에 포함되지만,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법무법인으로 이직할 경우에는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변호사는 취업제한 대상이 아니어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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