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영암군수 차, 왜 차고에서 잠 자나
조건 미달로 매각 못해..밀실교체 의혹도
군청 3단계 결제라인·의회 '수상한 침묵'
(시사저널=정성환·고비호 호남본부 기자)
'1호차'. 이른바 자치단체장들이 타는 관용차를 흔히 1호차라고 부른다. 군(郡) 단위 지자체에선 대개 1호차는 군수, 2호차는 부군수가 탄다. 하지만 전남 영암군은 1호차가 '2대'다. 연간 수백만원이 들어가는 운영비를 절감하기 위해 잉여 차량은 매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멀쩡한 군수 차 1대가 차고지에서 낮잠 자고 있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크게 3가지다. 규정을 어기고 조기 교체했다는 점과 퇴역 차량 매각 지연에 따른 혈세 낭비 그리고 밀실 교체·묵인 여부다.
'1호차'가 두 대인 속사정은
영암군은 민선 6기가 막 출범한 시기였던 2014년 7월에 4496만원에 3342CC급 제네시스를 군수 관용차량으로 구입했다. 당시 전동평 신임 군수 취임에 맞춰 전용차량부터 먼저 바꾼 셈이다. 군은 5년 뒤인 2019년 6월 다시 신형 카니발 리무진 9인승을 군수 1호차로 4300만원에 뽑았다.
하지만 영암군의 군수 전용차량 교체는 규정 위반이다. 규칙에서 정한 '최소 사용기간 7년'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영암군 공용차량 관리 규칙에는 '차량을 신규등록한 날로부터 7년이 경과되고, 주행거리가 12만km를 초과해야 차량을 교체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군수 차를 교체하기 위해선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제네시스를 구입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아 내구연한 기준에 미달됐다. 군수 관용차의 운행거리는 14만 8000km 정도였다.
영암군은 군수의 원활한 군정 업무를 위해 교체했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기존 고급 승용차가 권위적인데다 농촌 현장을 방문하거나 차량 이동 중에 업무를 수행하는데 비좁고 불편해 실내공간이 넓은 차량으로 교체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군민들은 규정까지 어겨가며 멀쩡한 관용차량을 바꾼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군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단체장이 지나치게 호사를 누리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영암군의 재정자립도는 13%다.
주민 김아무개(58)씨는 "군수나 영암군이 한국차 성능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더구나 군수 차는 운전기사가 때마다 청소하고 기름칠하며 정비한다"며 "모범을 보여야 할 군수가 재정자립도 10% 초반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내 돈 아니니 툭 하면 차를 바꿔 흥청망청 세금을 낭비하는 것은 반군민적 행위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뿐만 아니다. 교체된 관용차를 즉시 매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매각에 필요한 7년의 내구연한을 미처 채우지 못해서다. 교체 당시 2년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원치 않게 두 대의 군수 관용차가 생겼다.
업무용으로 대체 사용 또한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군 관계자는 "일선 공무원들이 한 때 군수 1호차였던 고급승용차를 타고 대민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다"며 "배차하고 싶어도 직원들이 먼저 손사례를 친다"고 말했다. 전동평 군수가 민선 6기 내내 관내 곳곳을 누비며 이용했던 차량은 지금도 당시의 번호판(XXX 1837)을 그대로 달고 있다.
한때 종횡무진 활약했던 '1호차'는 현재 대부분의 시간을 차고지에서 보내는 '잉여차량' 신세로 전락했다. 차량 관리부서 직원들이 간혹 밧데리 방전 방지 등을 위해 시운전해야 겨우 바깥구경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카니발에 1호차 지위를 넘겨준 뒤 1년 6개월 동안 제네시스의 운행거리는 1만7000여km에 불과하다. 전성기 때 한해 3만여km를 뛴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영암군은 올 7월쯤 내구연한 7년을 채워 공매 처분할 예정이다.
군 서울사무소, 따로 업무용차량 구입…'혈세 낭비'
하지만 '여건상 어쩔 수 없이 놀리고 있다'는 영암군의 해명에 허점이 드러났다. 물러난 1호차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때마침 영암군은 군수 전용차량 교체시기였던 2019년 3월 서울사무소 업무용 차량 구입에 4300만원의 예산을 추경에 반영했다. 당시 군의회 자치행정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군은 서울사무소 업무용 차량의 경우 내구연한 10년이 지났고, 주행거리 28만km 등 노후가 심해 교체가 필요한 실정이다며 예산 승인을 요청했다.
따라서 서울사무소 업무용 차량 구입 대신 문제의 1호차를 올려 보냈으면 수천만원의 예산도 절감하고, 감가상각에 따른 '저가 매각'이라는 불합리한 부분을 일거에 털어낼 수 있었다는 따가운 비판이 나온다.
교체 과정도 논란거리다. 영암군이 규정을 어기고 군수 전용차량을 교체한 사실은 본지가 최근 전동평 군수 부인의 교통사고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졌다. 영암군수 관용차를 교체하기 위해선 군 실무 담당자부터 팀장, 과장 그리고 군의회 심의 등 적어도 공식적으로 4단계의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다. 심지어 이를 견제해야 할 군의회도 침묵했다. 군의회 회의록이나 언론 기사 등을 샅샅이 뒤져도 영암군수 전용차 교체에 대한 지적을 찾을 수 없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부서로 전입해 오기 전 일이라 자세한 전후 사정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영암군의 군수 관용차량 교체 논란은 금액의 과다를 떠나 무소불위 민선 단체장의 민낯을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 행의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영암군의 군수 관용차량 조기 교체는 지방자치시대에 단체장이 가진 권력의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인사와 예산권을 무기로 지방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단체장. 군민이 아니라 단체장만 바라보는 공무원들 그리고 이들이 벌이는 충성 경쟁. 집행부를 제대로 견제 못하는 지방의회. 2년 동안 팔지도, 사용도 못한 군수 전용차는 이들이 합작해 빚어낸 웃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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