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재산은 공개 못해... 英여왕, 정부 로비해 법 개정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1. 2. 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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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1973년 재산 공개 법률 정부가 준비하자 로비로 저지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현충일을 기념해 런던에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AP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48년 전 자신의 개인 재산이 공개되는 것을 막으려고 정부에 로비를 벌여 성공했다고 일간 가디언이 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여왕의 개인 재산은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으며, 원화로 수천억 원대로 추정된다.

1973년 작성된 정부 문건을 국립기록물연구소에서 입수한 가디언은 당시 왕실이 통상산업부가 준비하던 ‘투명성 법안’의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 고위 관리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이 법안의 원안에는 여왕이 보유한 주식과 투자처 등 개인 재산 현황을 공개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지만, 왕실의 로비가 통해 ‘국가 지도층 등에 대해서는 재산 공개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추가됐다고 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당시 여왕의 개인 변호사이던 매슈 파러는 통상산업부 관리들을 만나 여왕이 국민에게 자신의 재산이 공개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당시 통상산업부의 한 관리는 “파러 변호사는 여왕의 재산 공개 자체가 당혹스러운 일이라는 이유를 대며 공개 반대를 정당화했다”고 말했다고 기록에 적혀있다.

여왕의 로비가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왕이 왕실의 ‘동의권(Royal assent)’을 행사해 미리 입법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전통 때문이라고 가디언은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특정 법안의 내용이 왕실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을 경우 의회 심의가 이뤄지기 전에 정부 부처가 사전에 국왕에게 보고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투명성 법안’의 내용을 여왕이 미리 보고받고 자신의 개인 재산 공개를 막은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논란이 되자 버킹엄궁은 “동의권은 형식적인 절차라 여왕은 정부의 요청에 늘 동의한다고 응답한다”며 “여왕이 입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국에서 국왕이 동의권을 행사해 법안 제정을 거부한 건 1708년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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