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거리두기에 '방콕 독서' 즐기도록 책배달 봉사 나섰어요"

김경애 2021. 2. 8.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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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김제 ‘희망남포 작은도서관’ 오윤택·이은영 부부

38년째 도서관지기를 하고 있는 김제 ‘희망남포 작은도서관’ 오윤택(오른쪽) 관장은 부인 이은영(왼쪽)씨와 함께 “끝까지 독자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희망남포 작은도서관 제공

“요즘은 비대면이 강화돼 도서 대출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자원봉사로 책을 무료로 배달해 드립니다. 많은 이용을 바랍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여건 속에서도 농민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온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은 전북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 ‘희망남포 작은도서관’을 책임지는 시각장애인 오윤택(60) 관장과 그의 동반자인 아내 이은영(62)씨다.

희망남포 작은도서관은 지난해 전북도가 주관하는 작은도서관 운영평가에서 우수 도서관으로 선정됐다. 이 평가는 전북지역 공·사립 작은도서관 340곳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비대면 서비스로 코로나로 인한 도서관 휴관 위기를 벗어난 이들의 비결을 8일 전화로 들어봤다.

지난해 8월 2차 유행 때부터 시작
비대면 서비스 ‘찾아가는 도서관’
시각장애인 남편 오 관장 ‘접수’
부인 이씨 운전맡아 ‘배달·회수’
김제시 전역 넓혀 150여명 이용

“시설 보수로 거주할 곳 찾는중”

시각장애인인 남편 오윤택 관장을 대신해 부인 이은영(오른쪽)씨가 차를 운전해 독자에게 직접 책을 전달하고 있다. 희망남포 작은도서관 제공

이들 부부는 코로나 2차 유행 때인 지난해 8월부터 ‘도서배달 원스톱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기다리는 도서관’에서 ‘찾아가는 도서관’으로의 기능을 강화한 능동적 독서운동이다. ‘드라이브스루 도서대출’ 등 비대면 문화가 곳곳에서 등장했지만, 시골의 작은 도서관이 책배달 서비스에 직접 나선 것은 드문 사례다. 스마트폰 등으로 빠져나가는 지역 독서인구를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자구책이다. 특히 거리두기 상황에서 ‘방콕 독서’라도 즐기고 싶지만 도서관 이용이 어려운 고령층과 장애인 등을 위해 시작했다.

오 관장 부부는 주민들이 보고 싶은 책의 제목만 알려주면 집까지 무료로 배달과 반납을 처리해준다. 김제지역 10개 도서관과 연계한 ‘책이음 참여도서관’인 까닭에 장서도 많다. 처음에는 작은도서관이 위치한 성덕면과 인근 지역만을 맡았으나, 지금은 김제시 전역 19개 읍면동을 담당한다. 지금까지 150명가량에게 책 배달을 했고 입소문을 타고 이용자도 늘고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 한아무개(90)씨는 “이 서비스 덕분에 역사서 등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런 일을 가능했던 것은 아내 이은영씨의 헌신이 컸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 오 관장은 운전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내가 20년 넘은 중고 승용차로 책배달에 나선다. 남편이 전화 접수 등을 해주면, 아내가 배달하는 ‘부창부수 협업’인 셈이다. 배달할 때 물론 남편도 동행한다. 코로나 탓에 대면을 못 하지만 많은 주민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과일 등을 간식을 책과 함께 챙겨주기도 해 보람을 느낀다.

“우리 부부가 책배달 봉사를 하면서 고생한 번거로움보다 독자들이 책을 받고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표시하면 돌아오는 길에 뿌듯하고 행복해집니다. 우리는 독서 봉사활동을 숙명으로 여기며 독자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봉사하는 게 소박한 바람입니다.”

도서배달 원스톱 서비스는 김제시 전역을 대상으로 전화(063-542-0211) 신청을 받고 있다. 희망남포 작은도서관 제공

하지만 오 관장에게는 요즘 고민이 두 가지 생겼다. 하나는 건강 문제다. 지난해 두 차례 무릎 수술을 해 거동이 불편하다. 2019년에는 한 차례 오른쪽 각막 이식 수술도 했다. 사물이 흐리게 겹쳐서 보이는 지금 상황이 더 나빠져 실명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조만간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 눈을 뜨면 고통이다. 안약을 넣고 주사를 맞는데, 때론 두통까지 찾아온다. 기초수급대상자로 받는 의료 혜택이 있지만 경제적인 부담은 여전히 남는다.

다른 하나는 집 문제다. 다음달 도서관 보수공사(리모델링)를 시작한다. 집에서 거리가 멀어 부부는 도서관 일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관장실에서 기거해왔다. 오 관장은 도서관 일을 해온 38년 동안 25년가량을 도서관에서 숙식을 해결했단다. 하지만 리모델링을 하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마땅한 거주 공간이 없다. 오 관장은 “도서관은 저의 혼이 담긴 곳이므로 도서관 일만은 손을 못 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오 관장은 도서관을 돕는 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운영관리자 김일주씨와 후원을 하는 운영위원들, 그리고 컨설팅 회사 참좋은마을 이원석 대표 등이다. 이 대표는 농촌마을사업을 진행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지금도 도서관 공모사업에 제출할 서류 작성과 자문 등으로 꾸준히 돕고 있다.

오 관장은 1984년 시골 학생들을 위해 ‘남포문고’를 열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도움을 받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2007년에는 문화관광부의 작은도서관 리모델링 대상으로 선정됐고, 이름도 남포문고에서 희망남포 작은도서관으로 새롭게 바꿨다. 1995년 신한국인으로 선정된 그는 자신의 삶을 다룬 평전 <김제 남포리의 상록수 오윤택-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한다>(2008년)를 발간하기도 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오 관장은 방역에 비협조적인 일부 교회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세속적으로 흘러 신앙의 본질이 변질되고 사회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일부 기독교인과 교회들이 낮은 데로 임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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