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 비판하던 야 서울시장 후보들, 앞다퉈 현금복지 공약 경쟁
이미 보편복지 경험한 유권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야권에서 현금성 지원 공약 경쟁이 불붙고 있다. 그동안 ‘선거용 예산 뿌리기’라며 현금 지원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온 기존 야당 입장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등 보편복지를 이미 ‘맛보기’로 체험한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시도이다. 코로나19의 광범위한 피해 극복을 위해선 야당도 대안을 찾지 않고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최근 ‘나경영(나경원+허경영) 논란’을 부른 건 국민의힘 예비경선 1위를 한 나경원 예비후보의 ‘1억원대 결혼·출산 지원 공약’이었다. ‘토지임대부 주택’에 입주한 청년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는다면 대출이자 대납으로 최대 1억1700만원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나 후보는 또 만 0~5살 대상 월 20만원 양육수당, 최저생계비가 보장되지 않는 20만가구에 현금 지원을 하는 ‘서울형 기본소득제도’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8일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돈을 준다고 출산하는 게 아니다”라며 “국민들은 아무 근거 없이 마구 국가가 돈을 퍼주는 것을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비판했다. 여야가 바뀐 듯한 모양새다. 나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박영선 후보님, 달나라 시장이 되시려고 합니까?’라는 제목의 반박 글을 올려 “문재인 정부가 2018~2020년 3년간 쏟아부은 저출산 예산만 96조원이 넘는다. 그 돈 잘 썼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다”고 반박했다.
야권 내부에서도 ‘나경영 논란’은 진행형이다. 국민의힘 예비후보인 오신환 전 의원은 이날 “얼핏 들으면 황당하고, 자세히 보면 이상한 공약”이라며 “반값 아파트 입주 자체가 이미 하나의 혜택을 받은 건데 왜 이분들한테 또다시 이자를 지원하게 되는 건지 납득 가지 않는다. 해명도 오락가락한다”고 비판을 이어갔다. 급기야 허경영 국가혁명당 총재가 “이제야 다른 정치인들이 (나를) 따라 하려고 용쓴다. 정치인들이 허경영의 가장 큰 홍보요원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나 후보는 2019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당시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을 ‘악성 포퓰리즘’이라며 앞장서 저지해온 인물이다. 2019년 8월 “선심성 포퓰리즘과 전면전을 펼치겠다”고 밝힌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는 추경 예산에서 구직급여 4500억원, 고용창출장려금 예산 721억원, 기초생활보장제도 55억원, 저소득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 예산 129억원, 저소득층 의료급여 경상보조 예산 762억원 등을 대거 삭감한 뒤 “역사상 유례없는 쾌거”라고 자평했다. 최근 나 후보의 파격적인 현금 지원성 공약이 낯설어 보이는 데는 이런 과거가 겹쳐 있다.
나 후보뿐 아니라 다른 야권 후보들도 현금 지원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예비후보는 손주 1인당 최대 20만원, 쌍둥이나 두 아이 돌봄은 40만원까지 지급하는 ‘손주돌봄수당’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나 후보의 현금 지원 공약을 비판하는 오신환 예비후보도 월 소득이 1인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서울시 거주 청년들에게 매월 최대 54만5000원을 기초생계비로 지급하는 ‘청년소득 플러스’ 정책을 내놓았다. 또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해선 영업손실 기간 중 최대 500만원까지 지급을 약속했다. 조은희 예비후보는 분기별 영업손실 100만원 보상 공약을 내걸었다. 오세훈 후보는 모든 시민에게 건강관리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워치 지급을 약속했다.
야당의 이런 현금·현물 공세는 21대 총선 학습효과가 깔려 있다. 당시 여당이 전국민 재난지원금 카드로 표심을 파고드는 사이에 야당은 ‘선거용 퍼주기’라며 비판만 하다가 결국 중도표를 놓쳤다는 생각이 야당 안에서는 꽤 강하다. 하지만 지도부에서는 당내 공감대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들마다 앞다퉈 현금 복지 공약을 내놓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공약에 대해선 후보 확정 뒤에 당과 세부 조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나경원 후보의 경우, 여론조사 100%인 본경선에서 중도층 공략을 위해 파격적인 복지 제안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야권의 복지 공약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당의 일관된 행태로 이어져야 한다.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짚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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