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때 책걸상·손때 묻은 만화책에서 흑백 결혼사진까지..'동네기록관'에 삶의 추억 다 담았어요
[경향신문]
마을 역사 간직한 공간으로
주민이 쓰던 옛 물건 등 전시
작은 도서관 등 10곳에 조성
소시민 일상, 문화로 재탄생
지난 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의 한 빌라촌. 5층 높이 건물들 사이로 한옥 카페 ‘터무니’가 눈에 들어왔다. 1970년대 지어진 한옥 두 채를 개조해 만든 널직한 카페(455㎡)를 두고 주민들은 ‘동네기록관’이라고도 했다. 나무로 된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가니 1970~80년대 풍경이 펼쳐졌다. 녹슨 ‘505’ 세발자전거와 낡은 풍금,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 쓰던 책상과 의자, 손때 묻은 만화책 등 옛 추억을 떠올릴 만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대부분 이 마을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것들이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이수경 대표는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도 이곳을 찾아 동네의 역사를 배우고 추억을 회상한다”고 했다.
청주시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동네기록관’이 마을 역사와 주민들의 삶의 추억을 간직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두 기관은 지난해 8월 청주지역 카페와 작은 도서관 등 10곳을 동네기록관으로 지정했다. 동네기록관 운영자들은 각 마을 특징을 살려 기록을 채우고 있다. 사람들을 인터뷰하거나 오래된 건물을 그림으로 그려 기록으로 남기는 식이다. 옛 결혼 사진을 책으로 엮은 동네기록관도 있다.
‘터무니’도 그중 한 곳이다. 이 대표는 “영운동 지역은 노인 인구가 70% 정도를 차지하고 마을 역사도 오래됐다”며 “기억에 남지 않고 없어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에 ‘노인들의 기억을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나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그들의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카페 안에는 20㎡ 크기 ‘영우리 기록관’이 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이후 영운동에 마련된 피란민 수용소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비롯해 100년 전 개교한 청남초등학교, 영운천과 그 주변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 등을 담은 다양한 사진자료가 전시돼 있다. 태권도대회, 합창대회 등 영운동 마을 주민들의 상장도 기록관 벽면을 채운 소중한 자료다. 이 기록관 한쪽에서는 70~90대 노인 5명이 말하는 영운동의 옛 모습이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터무니’가 동네기록관이라고 알려지자 추억이 담긴 물건을 가져다 놓는 주민들도 생겼다. 카페 마당 바닥에 사슴 세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수놓은 자수가 눈길을 끌었다. 한 주민이 투병생활 중 고통을 잊기 위해 만든 것인데 이곳에 기증했다고 한다. 어릴 때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장을 집에 진열해 놓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등쌀에 이 카페에 내놓은 주민도 있다.
이 대표는 “누군가에게는 쓰레기 같은 물건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소시민들에게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 사람들의 일상도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중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청주시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은 동네기록관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글·사진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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