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논란 핵심은 '사법부 독립성 훼손'.. "직접 수습해야"
이희경 2021. 2. 8. 18:44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 과정과 관련해 거짓말을 한 것이 사실로 확인된 가운데 문제의 핵심은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이라는 지적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대법원장 자질이라는 측면에서 거짓말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김 대법원장이 적극적으로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훼손한 정황을 더욱 엄중하게 봐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장이 법관 인사권을 쥔 상황에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건을 맡은 일선 판사들의 공정한 재판권 확립을 위해서라도 김 대법원장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비판의 핵심은 ‘사법부 수장이 정치권(여권)의 눈치를 봤다’는 점이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사표를 제출한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며 반려한 사실이 지난 4일 녹음 파일을 통해 드러났다. 전날 해당 의혹에 대해 김 대법원장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녹음 파일이 공개되자 그는 결국 사과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 먼저 임 부장판사의 사법연수원 17기 동기생 140명은 지난 5일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여야 함에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협 회장을 역임한 김두현·박승서·이세중·함정호·정재헌·신영무·하창우·김현 변호사는 8일 “대법원장은 사실을 감추려고 허위 진술서까지 작성하여 국회에 보냈다. 사법부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집권 정치세력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할 의지는커녕 권력 앞에 스스로 누워버리고 국민 앞에서 거짓말 하는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치욕”이라고 비판했다.
보수성향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역시 성명문을 통해 “대한민국의 삼권분립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김 대법원장의 즉각적인 퇴진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특히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눈치를 봤다는 사실 자체가 일선 판사들이 공정한 재판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7월 제헌절을 기념해 열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새로운 도전 정책토론회’에서 김동현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치적 영향력에 의한 사법의 오염은 대법원장 임명 과정과 인사권을 통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대법원장이 모든 법관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에서, 법관들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건에 관하여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의식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대법원장이 아무런 의사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담당 법관들이 대법원장과 대법원장의 임명과정을 추동하였던 정치세력의 의중을 의식하게 될 유인이 존재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탄핵 움직임과 관련해 국회 눈치를 본 김 대법원장의 행위 역시 향후 일선 판사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런 법조계의 비판에도 추가적인 사과나 거취 표명 등과 관련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녹음 파일이 공개된 이후 김 대법원장은 “9개월 전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한 데 대해 송구하다”고 말했고, 퇴근길 기자들에게 “사과와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힘 ‘탄핵 거래 진상조사단’ 의원들이 대법원 청사에서 김 대법원장과 만나 자진 사퇴를 요구했지만, 김 대법원장은 “더 나은 법원을 위해 한번 잘해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일선 법관들이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재판에 임할 수 있도록 김 대법원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의 추가적인 해명이 없다면 일선 법관들의 동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며 “판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김 대법원장이 사태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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