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맞춤형 재판부? 김명수 대법원장 인사, 무엇이 문제일까 [좌영길의 법조 레프트훅]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법원에 사건이 접수되면, 무작위로 배당이 됩니다. 예를 들어 기업범죄를 무겁게 처벌하는 판사와 상대적으로 선처하는 판사가 있다고 칩시다. 누군가가 판사를 고를 수 있다면, 사실상 피고인을 어떻게 처벌할지 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무작위 배당’은 사법 신뢰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법원은 사건이 접수되면 사건번호를 부여하고, 전산으로 무작위 배당해 재판부를 선정합니다. 이 원칙을 위배해 누군가가 마음에 드는 재판부를 고른다면, 사법 신뢰에 금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특정 재판부에 원하는 사건이 가도록 배당과정을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 법원장급 인사가 기소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서울 시내 법원은 판사 순환 근무지 중에서 지원자가 많습니다. 거주지, 교육 문제를 고민한 것은 판사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형평성 차원에서 순환근무가 생깁니다. 비단 법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 부임 이후 독특한 인사 패턴이 생겼습니다. 서울중앙지법에는 3년을 채우면 예외없이 인사가 납니다. 2017년, 2018년 정기인사에서 서울중앙지법에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없던 ‘4년차’ 중앙지법 재판장이 2019년부터 생기기 시작합니다. 바로 ‘사법농단 사건’ 때문입니다. 2016년 서울중앙지법 근무를 시작한 윤종섭 부장판사는 2020년까지 5년이나 머물렀습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직권남용 혐의 재판을 맡은 재판장입니다. 윤 부장판사는 올해에도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합니다. 아마도 이 법원이 생긴 이래 내리 6년을 근무한 유일한 판사일 겁니다.
최근 발표된 인사에서 서울중앙지법에 3년 이상 근무연한을 채우고도 유임된 인사는 윤 부장판사와 김미리 부장판사, 이렇게 둘 뿐이었습니다. 김미리 부장판사는 잘 알려졌듯, 조국 전 장관 사건과 청와대 울산선거개입 사건 등 여권에 불리한 사건을 다수 배당받은 인사입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김명수 대법원장의 ‘맞춤형 인사’는 ‘특정 재판부에게 계속 사건을 맡긴다’는 것으로, 사실상 ‘배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 법원장급 인사의 말입니다. “임종헌 차장 사건을 대법원장이 신경쓰는데, 어느 판사가 맡건 사실관계를 따져 죄가 되면 유죄를 선고하고, 아니면 무죄를 쓸 일이다. 판사가 달라진다고 결론이 달라질 것이 아닌데, 대법원장이 괜한 일을 만들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윤종섭, 김미리 두 부장판사 외에는 아무도 3년을 넘겨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하지 못했습니다. 윤종섭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유죄 예단을 가지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김미리 부장판사는 조국 전 장관 친동생 사건에서 웅동학원 배임 혐의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억대 금품을 수수한 채용비리 혐의도 주범을 공범들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해 ‘선처’ 논란을 빚었습니다.
판사에 대한 인사권은 대법원장이 행사합니다. 인사결과에는 곧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럼 이 두 판사만 집어 3년 이상 중앙지법에 남긴 인사에서 읽을 수 있는 대법원장의 속마음은 어떨까요. 당연히 지금 재판부가 마음에 들고, 혹시 다른 판단이 나오지 않도록 현 상태를 유지하라는 뜻일 겁니다.
‘사법부 독립’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법원 밖, ‘외풍’에서 판사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치권이나 청와대 외압은 물론, 여론도 법관 양심을 저해해서는 안 됩니다. 대법원장에게 판사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준 명분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다른 측면은 ‘대법원장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아무리 대법원장이라도, 사건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됩니다. 대법관 출신이 아닌 ‘판사 김명수’가 대법원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이 두가지 독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콕 집어 ‘임종헌 사건’과 ‘조국 사건’ 재판장을 유임하고, ‘이 재판은 잘 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특정 사건에 ‘맞춤형 재판부’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법원에서는 어떤 판사가 법원 내 보직을 뭘 맡을지 자율적으로 정하는 ‘사무분담위원회’까지 만들었습니다. 판사의 보직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대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대법원장이 특정 사건 형사합의부장을 유임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건들은 아무리 양이 방대하고 중대한 사건이라도 예외없이 재판장을 바꿨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을 심리하던 재판부도 이번 인사로 구성이 바뀝니다. 심지어 김미리 부장판사 역시 인사를 염두에 둔 듯, 청와대 울산선거개입 사건을 미루고 미뤄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공판기일을 열지 않고 있었습니다.
실제 윤종섭 부장판사나, 김미리 부장판사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재판 진행 과정과 선고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판사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나서 직접 인사를 챙긴 사건이라면, 판사가 양심에 따라서 판결하더라도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대법원장이 특정 재판부를 고집하는 것은 ‘판사가 달라지면 결과가 바뀐다’는 방증을 법원 스스로 해주는 셈이 됩니다.
2019년, 대법원은 재판 당사자가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판사를 교체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기피’ 요건을 완화한 결정을 내놓았습니다. 종전에는 명백히 판사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재판부를 교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결정을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의심을 할 만한 사정’이 있다면 재판부를 교체해야 한다고 기준을 다시 설정했습니다. 재판부를 교체할 사유인 ‘불공정’이란, ‘불공정할 수 있다는 외형’을 만든 것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김명수 대법원장의 ‘특정 사건 맞춤형 인사’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는 외형일까요.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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