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맞은' 전남道의 낯뜨거운 의전에 담긴 '政治'는
도백의 '깍듯한 인사' 속에 숨겨진 '을(乙)'의 불편한 진실
"예산=중앙실력자 하사품 인식..지방행정가의 저자세 탓"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요즘 전남지역 관가 주변의 화제는 단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전남도의 낯 뜨거운 의전 이야기다. 전남도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우주 미남' 등이 써진 플래카드를 제작해 과잉 의전 논란을 일으키면서다. 팬덤을 방불케 하는 도청 공무원들의 극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또 누가 어떤 의도를 갖고 시켰는지, 아니면 윗선의 분위기를 간파해 눈치껏 했는지 여부도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전남도청에선 가끔식 지나친 굽신거림 즉, '사은숙배'(謝恩肅拜·권력자에게 은혜에 감사하며 공손하고 경건하게 절을 올린다는 뜻)의 논란이 터져 나왔다. 그때마다 지역발전을 위한 '선의'로 봉합되곤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뜬금없는 과잉 의전 파장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영록 지사의 SNS에 올라와 있던 도청 여직원들의 문 대통령 환영 퍼포먼스 사진이 하루 만에 슬그머니 사라진 것만 봐도, 이번 일이 몰고 온 파장의 강도를 가늠케 한다. 원자력발전소 6기에 맞먹는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조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대통령에 대해 감사 표시를 하려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 셈이다.
신안 해풍맞은 '과잉 의전 퍼포먼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협약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남 신안 임자2대교를 방문했다. 이날 행사의 주제는 '바람이 분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신안에서 불어온 상생과 혁신의 바람을 다함께 축하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행사가 끝난 뒤 문 대통령이 근처 전통시장인 신안젓갈타운으로 이동하려 하자, 전남도청 공무원 10여명이 꽃다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몰려들어 환호를 했다. 문 대통령은 도청 공무원으로부터 꽃다발을 전달받고 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이들 공무원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 문구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님은 우리의 행복', '왜 이제 오셨어요ㅠㅠ',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대통령님,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등이 써진 플래카드를 들고 문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기까진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다.
일부 도청 공무원들은 직접 종이를 오려 만든 것처럼 보이는 손팻말도 들고 있었는데, '우주미남', '문재인 별로, 내 마음에 별로' '문재인 내 마음을 녹용' '그거 알아요? 저 굴 좋아 하는거'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문재인 보유국'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사달은 일부 언론이 이를 부각시켜 보도하면서 낯뜨거운 과잉의전 논란이 불거졌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6일 자신의 블로그에 "북한과 같은 1인 체제의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낯이 뜨거워지는 찬양"이라고 전남도청을 비판했다.
이와 관련 전남도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공식 행사가 끝나고 퇴장할 때 불과 1~2분 사이에 벌어진 일인데, 이게 어떻게 계획적이었겠냐"며 "도청에서 직원들에게 플래카드를 만들라고 시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외빈이 오면 행사를 지원하는 도 자치행정국 여직원들이 있는데, 그 중 몇몇 젊은 직원들이 대통령 방문을 환영한다는 뜻에서 개인적으로 손팻말 등을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날 열린 48조원 규모의 신안 해상풍력 투자협약식은 전남의 미래가 걸려 있는 굉장히 중요한 행사인데, 자칫 불필요한 논란으로 본말이 전도돼 행여 이 사업의 가치가 덮여지지 않을까 부담스럽다"고 걱정했다.
시중 여론 또한 문 대통령에 대한 젊은 도청 공무원들의 톡톡 튀는 환송 퍼포먼스를 두고 굳이 '독재국가의 찬양' 운운하는 것은 침소붕대라는 게 지배적이다. 하지만 전남도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일부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 또한 팽배하다. 지방관가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과잉 의전'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측면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간 지방 행정가들의 중앙 실력자들을 향한 지나친 굽신거림이 민심을 자극해 논란이 된 사례가 여럿 있어서다.
뜬금없는 '편지 정치'···"지금이 조선왕조 시대냐" 눈살
지난 2018년 12월21일 오후, 전남도청 서재필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청책(聽策)투어' 현장간담회. 이 자리에서 김영록 전남지사는 같은 당 소속 홍영표 당시 원내대표에게 "예산 많이 줬다"며 '90도' 각도로 깍듯하게 절해 과공비례 논란을 자초했다. 180만 도민의 수장으로서 적절한 태도였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과공비례'는 지나친 공손 즉 '과공(過恭)'은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는 말로 권력자에게 굽신거리는 것을 비판할 때도 종종 일컬어진다.
이날 김 지사는 앉아서 인사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일어나 "홍 전 원내대표께서 국정에 바쁘실 텐데도… 예산도 많이 챙겨주시고 직접 현장까지 찾아주셔서 격려해주시니 대단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홍 전 대표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현안문제 해결과 예산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을(乙)'인 도백보다 '집권여당 실력자' 홍 전 대표에게 힘이 쏠려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전남의 이웃 지역 수장인 이용섭 광주시장도 비슷한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이 시장은 2019년 5월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취임 2년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으로 A4 용지 1장 분량의 서신 형식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이날은 문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시장은 서신에서 "지난 5월7일 아침, 대통령님의 특별한 글을 접했다. 취임 2주년을 맞아 독일 언론에 기고하신 '평범함의 위대함'이라는 이 글의 첫 단어는 '광주'였다"면서 "대통령님의 글은 저와 우리 시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광주시민으로 살고 있음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를 두고 관청 주변 호사가들은 하계(광주)에서 신음하는 백성의 삶은 내팽개치고, 오직 광한전(청와대)에 거처하는 임금만을 그리워하는 송강 정철의 가사 '사미인곡(思美人曲)'의 기시감마저 느껴진다고 뼈있는 촌평을 남기기도 했다.
'90도' 허리숙인 지자체장···"지역발전 선의" vs "중앙의존 굴욕"
비록 같은 당 소속이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통령에게 이 같은 깜짝 서신을 통해 '정치적 행위'를 한 것은 이례적이다. 물론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선 5기 당시인 2009년 11월22일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도 4대강 사업 영산강 구간 기공식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화끈하게 칭송해 'MB어천가 논란'을 빚었다.
단연 압권은 김완주 전 전북지사가 2009년 7월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란 제목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A4용지 3장반 분량의 '감사편지'다. 주 내용은 정부가 새만금종합실천계획안을 발표한 데 대한 고마움 표시였다. 그런데 그 표현이 너무 낯뜨거웠다. 당시 지방정가에선 "1인 독재 천하에서 신하가 군주에게 올리는 글 뺨친다. 뭔가 비위를 저질러 선처를 바라는 사람이 애걸복걸 심정으로 쓴 글로 보인다"고 혀를 찼다.
그는 편지에서 "새만금종합실천계획안은 우리 전북도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고 썼다. 여기까진 이해할 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김 전 지사는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절을 올린다" "정부의 발표로 도민들의 묵은 체증이 일시에 쑥 내려간 듯 하며 기쁘고 눈물이 난다" "새만금 계획안을 읽을 때마다 새록새록 감동이 밀려왔다" 등 아부성, 찬양으로 일관하는 편지글은 전북도민을 부끄럽게 했다.
편지 중엔 '감사합니다'는 표현이 7차례나 나왔다. "대통령님! 정말 감사합니다. 새만금 사업의 가치와 역할을 올바르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문장을 통해서였다.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의 훈풍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고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들 자치단체장들이 감사의 서신을 올린 배경에는 문 대통령이나 중앙정치권 실력자들에게 지역 예산이나 핵심 현안사업 지원에 대한 감사 표시와 추후 담보 확보의 뜻이 담겨 있어 보인다. 전남도의 한 관계자는 "허리 굽히는 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지역발전을 위한 '선의'나 '헌신'으로 봐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역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으로 선출직 자치단체장들의 행적 차원에서 보면 감사와 추후 정부 지원을 염두에 두고 허리를 숙였다는 해명이 틀려 보이진 않는다.
"이익유도 정치논리 답습의 산물, 대중성있는 정책전선 만들어야"
그렇다면 이 같은 지방행정 수장들의 저자세 처신이 적절한 것일까. 문제는 '과한 데에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 현안 성사에 대한 대통령의 지원에 시도민의 마음을 모아 감사드린다."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갈 정도로 기쁘고 눈물난다" 등의 문구와 '90도 절', '팬덤식 영끌 의전' 등은 민주공화정시대에 낯 뜨겁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부에선 자치단체 집행부의 저자세로 '중앙 의존증이 지나치다'는 따가운 비판도 나온다. 전남의 한 대학교수는 "지역민의 이익을 챙겨오는 게 단체장의 최고의 미덕이며, 그러려면 중앙의 실력자와 협조해 예산과 사업을 따오는 방법 밖에 없다는 전통적 관념의 산물"이라고 꼬집었다. 이른바 '이익 유도의 정치논리'를 답습한 것으로, 이 같은 형태는 중앙의존성 폐해만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높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지역 예산이 대통령이나 여당 실력자 등 큰 힘을 가진 정치인이 시도민에게 내리는 하사품처럼 인식되는 후진적인 정치인식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지방행정 책임자들의 저자세가 낳은 가장 큰 문제다"며 "자치단체 스스로의 판단을 넓혀나가 중앙 정부와 정치인들이 좀처럼 꾸려내지 못하는 대중성있는 정책 전선을 만들어내서 더 많은 예산과 사업을 따내야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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