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번 연주 사티의 '짜증', 로봇과 협주가 가능하네

이재훈 2021. 2. 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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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병량 '4차 산업 혁명기의 '가구 음악' : 융복합 전시·공연 사티의 <짜증> 재구성' 2021.02.08.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프랑스 출신 에릭 사티(1866~1925)는 '괴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통한다.

그가 1890년대 만든 곡 '짜증(Vexations)'은 그런 명성에 어울린다. 달랑 악보 1장에 18개의 음으로 이뤄진 단선율의 주제, 그 주제로 만든 두 개의 변주가 전부다.

그런데 사티가 악보 위에 적은 '기묘한 지시어'가 이 곡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840번을 연이어 연주하기 위해 깊은 침묵 속에서 부동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다.

14시간 가까이 연주해야 하는 '840번 연주'에는 의미나 답은 없다. 평소 엄숙주의에 반대해온 사티의 성향을 감안, 고결함과 순혈주의를 유지해온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풍자라고 추측할 뿐이다. 사티는 '가구 음악'을 추구했다. 탁자나 소파처럼 평소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거실에 존재하는 가구 같은 음악이다.

그간 연주자들이 짜증나지 않게 '짜증'을 연주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적게는 4명, 많게는 수십 명이 매달렸다.

그런데 로봇이 '짜증' 연주를 대신 한다면?

지난달 29~30일 플랫폼엘에서 펼쳐진 고병량의 '4차 산업 혁명기의 '가구 음악' : 융복합 전시·공연 사티의 '짜증' 재구성'에서 그 장면을 선보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한 '2020년 아트앤테크 활성화 창작지원사업'의 하나다.

[서울=뉴시스] 2016년 5월 국내에서 연주 대결을 펼친 로봇 '테오 트로니코'(왼쪽),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 2021.02.08. (사진 = 성남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4줄짜리 악보를 840번 반복해서 연주하는 사티의 '짜증'을 로봇과 인간의 협주를 통해 재구성했다.

최근 예술계는 로봇과 인공지능(AI)이 화두다. 최근 방송과 공연계에서는 '가객' 김현식과 김광석, 그리고 '마왕' 신해철이 AI와 홀로그램으로 부활했다. 이후 "예술은 인간과 인간만이 교류할 수 있는 감성이다" "기술이 예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등의 갑론을박이 따랐다.

SBS TV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에서는 가수 겸 뮤지컬배우 옥주현과 AI과 모창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고병량의 '4차 산업 혁명기의 '가구 음악' : 융복합 전시·공연 사티의 <짜증> 재구성'은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접점을 대결 구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구도로 조망한 점이 눈길을 끈다.

열 몇시간에 이르는 인간의 '짜증' 연주 도전의 쳇바퀴를 끊고, 로봇 연주 또는 로봇·사람과의 합주를 통해 '짜증'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로봇의 피아노 연주는 일종의 '가구'처럼 전시됐다. 관객은 로봇이 연주하는 피아노 옆의 또 다른 피아노를 로봇의 연주에 맞춰 연주할 수도 있었다.

[서울=뉴시스] 고병량 '4차 산업 혁명기의 '가구 음악' : 융복합 전시·공연 사티의 <짜증> 재구성' 2021.02.08.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일찌감치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무대 위 연주는 구현돼 왔다. AI까지는 아니지만 재즈 뮤지션 팻 메스니는 일찌감치 오케스트리온(Orchestrion·미리 입력된 기계적 장치에 따라 자동으로 악기가 연주되는 시스템)을 라이브 연주에 사용했다.

예술음악용 AI 프로그램 '이아무스(Iamus)'가 작곡한 곡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AI 작곡가로 알려진 에밀리 하웰이 작곡한 오케스트라 곡을 선보였다.

지난 2016년 성남아트센터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피아노 연주 대결이 펼쳐졌다.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 엔지니어 마테오 수지가 개발한 로봇 테오트로니코가 피아노 연주로 맞대결했다.

'4차 산업 혁명기의 '가구 음악' : 융복합 전시·공연 사티의 <짜증> 재구성'은 어느 정도 로봇과 인간이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로봇이 반복해서 '짜증'을 연주하는 가운데, 실제 연주자들이 사티의 가구 음악 가운데 선택해 편곡한 다섯 곡을 연주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고병량 작곡가는 전자음향, 데이터 소리화 등 음악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해온 작곡가다. 이번엔 인터랙티브 기술, 무작위 선택 알고리즘, 음향 변조 기술 등을 융합해서 선보였다.

최근 세계 음악계에서는 지휘자와 연주자가 적극 교감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에도 로봇을 도입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로봇이 개발 중이다. 일본 도쿄대 등이 공동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 '오르타3'가 연주자들과 교감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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