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민원인 전화도 '7분컷'? 실적 압박에 건보공단 상담사들 '속병'

박준용 2021. 2. 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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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김하나(35)씨는 민원인 1명과 하는 통화 시간이 5분이 넘어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상담 실적 압박과 악성 민원 등에 시달리는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열명 중 여덟명 이상이 '우울증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12개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은 건보공단과 도급 계약을 맺은 11개 민간위탁업체 소속으로, 지난 1일부터 건보공단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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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실적 압박 시달리며 감정노동도 위험 수치
격무 시달리며 어깨·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도 겪어
건강한노동세상 "건보공단이 고객센터 직접 운영해야"
8일 서울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 건강한노동세상이 조합원 상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김하나(35)씨는 민원인 1명과 하는 통화 시간이 5분이 넘어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관리자들이 실시간으로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상담시간 7분이 넘을 경우 전화를 빨리 끊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탓이다. ‘상담 실적’을 채우기 위해서인데, 이 시간제한은 화가 난 민원인이 전화하는 경우라고 해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김씨는 “감정을 숨기고 다친 마음을 회복할 새도 없이 친절한 음성으로 바로 다음 전화를 받는다”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 탓에 여러 군데 병원에 다니다 결국 ‘마음의 병’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상담 실적 압박과 악성 민원 등에 시달리는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열명 중 여덟명 이상이 ‘우울증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12개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은 건보공단과 도급 계약을 맺은 11개 민간위탁업체 소속으로, 지난 1일부터 건보공단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 건강한노동세상은 8일 서울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8월 고객센터지부 조합원 796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설문에 답한 이들 가운데 85%가 우울증테스트(PHQ-2)에서 ‘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93%는 ‘업무 중 무리한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공단 직원(29.4%), 관리자(22.6%)로부터도 무리한 요구를 받은 경험이 적지 않았다. 아울러 응답자의 87.2%가 고객으로부터 ‘인격 무시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53.9%는 공단 직원으로부터 인격 무시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고객으로부터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이는 81%였고, 성희롱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이도 14.4%였다.

건보공단 상담사들은 전반적인 ‘감정노동’의 정도를 측정하는 조사에서도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먼저 ‘고객 응대의 과부하 및 갈등’으로 인한 감정노동 영역에서 응답자의 93.9%가 위험 수준에 해당했다. ‘조직 감시 및 모니터링’ 영역(92.8%)과 ‘감정부조화 및 손상’ 영역(84.5%) 등에서도 상담사 대다수가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상담사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기도 했다. 상담사들이 처리해야 하는 1일 평균 콜수는 120건 수준인데, 하루 140콜 이상 처리하는 상담사도 10%나 됐다. 근골격계 질환에도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9.4%가 적어도 한 부위 이상의 신체 부위에서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한 자각 증상과 통증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환을 겪는 부위는 어깨(56%), 허리(51%), 목(47%), 손목·손가락(32%), 무릎·다리(30%), 팔·팔꿈치(16%) 순이었다.

전지인 건강한노동세상 활동가는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매일 콜수를 채우기 위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등 직무 요구도가 매우 높은 반면 업체의 상시적인 모니터링과 녹화감시 때문에 직무 자율성은 낮다”며 “성과 경쟁으로 치닫는 고객센터의 전반적인 관리시스템을 전면 개선해야 하는 것과 더불어 고객센터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건보공단의 고객센터 직접 운영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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