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최장수 장관' 강경화 떠난다 "조직 혁신은 A, 4강 외교는.."

김유진 기자 2021. 2. 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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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두고두고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8일 이임을 앞둔 강경화 외교부 장관(65)이 취재진 앞에서 밝힌 소회다. 2017년 6월 취임한 강 장관은 이날로 3년 8개월여의 임기를 마친다.

강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되돌아보면 어려운 시기도 많았는데 직원들, 관계부처, 청와대 등과 협업해서 어려운 고비를 참 많이 넘겼다”며 “언론의 비판적 질타가 있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억류된 선박 선원들이 석방된 것과 관련 “떠나기 전에 이란 선박 문제가 풀려서 다행스럽다”며 “헌신적으로 국익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께도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첫 여성 외교장관으로 임명 당시 화제를 모았던 강 장관은 문재인 정부 최장수 장관 기록도 세웠다. 그는 “(나이) 예순이 넘어서 수십년 동안 일해본 직장들 중에서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외교부에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강 장관은 역대 외교부 최고령 장관이 되는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74)에게 바통을 넘긴다. 그는 이날 여당이 단독으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한 후임 정 후보자에 대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신 분”이라며 “적극적으로 외교부를 끌고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3년8개월간 외교부를 이끌어온 강경화 장관이 8일 오후 외교부청사를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의 ‘레거시’

강 장관이 이끄는 외교부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변화는 조직·인사 차원이다. 우선 효율적 업무 환경과 수평적 조직문화를 확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임 장관 시절 관행으로 굳어진 대기성 야근, 불필요한 주말 출근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게 외교부 직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특히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존중이 빠른 시간 안에 조직 전반에 뿌리내렸다. 강 장관은 취임사에서 “일하면서 세 아이를 키운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조직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여성 직원들은 물론 개인과 가족의 삶을 중시하는 다수 남성 직원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능력 위주 인사 원칙도 비교적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특유의 폐쇄적 인사 시스템이 보다 투명해졌고, 주요 보직이나 선호 공관에 대한 인사 절차도 공정해졌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외교부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워라밸’이나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새 장관이 온다고 해도 이 같은 흐름을 거스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외교부 전체 절반 가량(2019년 약 45%)이 여성 직원이라는 현실에 맞게 여성 관리자 비중도 늘어났다. 외교부 내 여성 과장은 2016년 15.9%에서 2020년 10월 기준 39%로 23.1% 증가했다. 여성 고위공무원도 2016년 3.1%에서 6.6%로 두 배로 늘었다.

실제로 부처 내 ‘유리천장’으로 남아있던 북미국, 북핵외교기획단 등에서도 최근 첫 여성 과장이 배출됐다. 한 때는 미·중·일·러 등 4강 외교 실무를 챙기는 과장이 모두 여성으로 채워진 적도 있다.

강 장관 재임 초기인 2018년에는 남북, 북·미 연쇄 정상회담이 분주하게 전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정의용 후보자를 내정한 이후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강 장관이 “출범 초기 어려운 한반도 상황을 극복하고 북미, 남북 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헌신적으로 많은 역할과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글로벌 확산 국면에서 지역·국제회의 연설이나 외신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적극 홍보하면서 존재감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강 장관에게 “코로나 위기 상황을 맞아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특별한 공로가 있다”고 치하했다.

4강 외교 편중 현상을 탈피해 ‘외교 다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아세안(ASEAN) 회원국 순방, 아프리카 3개국 단독 순방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과의 외교관계 활성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 등을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유엔 등 다자회의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2019년 6월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간 확대 정상회담 전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플러스’는 곧 ‘마이너스’이기도

강 장관이 남긴 ‘긍정적’ 유산은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종종 ‘강경화 외교부’의 한계로도 거론됐다.

대표 업적인 조직문화 혁신 노력은 의전이나 번역 등 업무 관련 실수가 잇따르면서 ‘기강 해이’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일례다. 외교부 내 워라밸이 확산되고 직원들의 만족감도 올라갔지만, 정작 업무 역량이나 프로페셔널리즘은 낮아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9년초 스페인 외교장관과의 공식 양자회담에 ‘구겨진 태극기’가 내걸린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공관장 등 외무공무원의 성비위에 대한 강 장관의 ‘무관용 원칙’ 선언이 무색하게도 재외공관에서 성비위나 갑질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내부 평가와는 달리, 청와대에 휘둘리며 외교부가 ‘주도하는’ 북핵·4강 외교가 실종됐다는 비판도 따라다녔다. 2018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본격화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정상 간 만남의 ‘톱다운’ 방식에 의존하면서 불가피했던 측면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주요 외교 현안에서 외교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유엔 인권기구 고위직을 지낸 전문가인 강 장관의 ‘인권 감수성’이 때로는 의문시되기도 했다. 강 장관은 한 독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처 과정을 설명하던 중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합의가 없다”고 말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불렀다. 대북전단살포를 금지한 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 법률)의 정당성을 강조하다가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과 거리가 있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강 장관은 북한인권법이 규정하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도 결국 임명하지 않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페테르 시야르토 헝가리 외무장관이 31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 현장을 방문한 다음 공동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 로이터연합뉴스 +


■첫 여성 외교장관도 절감한 벽

한편 ‘성공한’ 여성 장관 개인을 타깃으로 한 일각의 비판은 한국 사회에 여전한 젠더 편견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2019년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건 당시 강 장관이 긴급대응팀을 꾸려 현장에 가자, 일부 보수 언론은 강 장관을 ‘다뉴브강의 인형’에 비유했다. 그동안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쿨한’ 반응을 보였던 강 장관도 이 때는 사석에서 매우 화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강 장관은 한 케이블 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성 첫 외교부 장관이라는 막중한 자리에서 기를 쓰고 다 하고 있지만 간혹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가’ 하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남성 위주 기득권 문화 속에서 내가 과연 받아들여지고 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할 때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강 장관의 발언은 ‘외교부 패싱 논란’과 연계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방송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강 장관은 성소수자 출신 방송인 홍석천씨가 느끼는 사회적 편견에 공감하면서 발언한 것이지 업무에 대한 지적을 ‘여성 장관’으로 피해가려 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오히려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은연 중에 드러난 장면으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한 22일 오후(현지시간)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미국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대화하는 사진을 청와대가 24일 오후 SNS에 공개했다. (왼쪽부터)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 정의용 실장, 조윤제 주미대사, 강경화 장관, 윤영찬 홍보수석,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청와대 페이스북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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