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정인이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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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아동이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 일명 '정인이 사건'이 발생한 후, 국민들은 많은 충격을 받았고 사회는 격분하였다. 이에 국회는 '정인이법'으로 불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달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아동학대신고의무자의 신고가 있는 경우 지방자치단체나 수사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즉시 조사 또는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의료인이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는 500만원 이하에서 1000만원 이하로 상향됐다. 국회는 "아동학대사건 대응절차를 보완해 수사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아동학대 범죄를 예방하며 피해아동 보호를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인이를 진료했던 소아과 의사가 입 안의 상처를 구내염으로 잘못 진단했고, 아동학대가 의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비난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소아과 전문의로서 입안의 상처를 외상인지 구내염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가해자가 유리하도록 허위진단서를 작성해 정인이를 구하기 위한 신고자들의 노력을 무력화시킨 의사의 면허를 박탈해달라는 취지의 청원글이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현장을 목격한 실제 의료현장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사들의 느낌과 압박은 매우 다르다.
첫째, 의사들은 아이의 몸에 멍 자국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부모가 넘어져 생긴 상처라고 강하게 주장하면 근거도 없이 의심만으로 경찰에 신고하기는 매우 어렵다. 만약 병의원에 내원한 가족 모두가 폭행을 부정하거나, 상처부위가 실제로 넘어지거나 부딪혀 생길 수 있는 부위라면 단순한 의심만으로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어렵게 신고해도 신고자가 철저히 보호되지 않으면 신고한 사실을 확인한 가족의 욕설과 협박, 그리고 직간접적인 영업방해에 시달릴 수도 있다.
특히 개원의의 경우 신원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역사회에서의 영업활동에 많은 지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에는 경찰이 아동학대 의심사례를 신고했던 한 의사의 신분을 노출했고, 그 의사는 가해 의심 부모로부터 폭언을 듣는 등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둘째, 의사가 의심사례로 신고했지만, 실제 아동학대 사례가 아닌 경우에 이에 대한 신고자 면책조항이나 보호조항이 없다.
셋째, 현재 아동학대 신고의무는 환자 비밀유지의무와 상충할 가능성이 있다. 환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비밀을 유지하는 것은 의사가 가진 중대한 의무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 형법 제317조에서 '의사가 직무를 처리하는데 얻은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의료법 제19조에서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67조에서 이를 위반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의료인의 환자비밀유지 의무조항과 함께 지역에서 유대관계를 맺으며 영업하는 개원의로서 지역사회와의 신뢰를 깨뜨리면서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의심만으로 아동학대를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넷째, 의료인들은 아동학대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 신고 후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에 대하여 의과대학이나 전공의 시절에 배운 바 없다. 이러한 상황은 의료인이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신고를 못하거나 신고를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2019년 아동학대 신고율은 23%에 그치고 의료인에 의한 신고율은 0.8%로 미국의 의료인 아동학대신고율 14.5%에 비하면 매우 낮다고 한다.
의료인의 아동학대 신고의무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단지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하지 못한 의사를 비난하고 처벌하기보다는 더 많은 의료인들이 아동학대 의심사례를 신고할 수 있도록 사회적⋅제도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에디터 코메디닷컴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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