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밤 9시와 10시, 무슨 차이일까?
오늘(8일)부터 비수도권에 있는 음식점, 카페 안에서 밤 10시까지 음식이나 음료수를 먹을 수 있습니다. 헬스장에서도 밤 10시까지 운동할 수 있고, 노래방에서도 마찬가지로 밤 10시까지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단, 시설 면적 '4㎡당 1명' 등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수도권'은 17개 시도 중 서울, 경기, 인천을 제외한 나머지를 말합니다.
수도권은 일단 설 연휴가 끝나는 14일까지는 계속 밤 9시 제한이 적용됩니다. 서울, 경기, 인천의 음식점이나 카페는 밤 9시 이후는 지금처럼 포장과 배달만 가능하고 헬스장, 노래방, 당구장 등 실내체육시설과 다중이용시설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고려한 결정이라고는 하나 충분하진 않습니다. 바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1시간은 부족하다', '최소 12시까지는 영업하게 해 달라'는 반발이 많습니다.
자영업자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밤 9시와 10시의 차이가 뭐냐?' 밤 9시와 10시, 이 '1시간'이라는 차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해봤습니다.
● 밤 9시는 '방역의 시간'
얼마 전 한 정치인이 "코로나가 야행성 동물인가? 저녁 9시까지는 괜찮고 그 이후는 더 위험한가?"라며 정부의 방역 지침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영업 제한 규제의 본질은 시간 자체보다는 생활 패턴을 단순화시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저녁 시간 발생하는 다양한 종류의 '2차 활동'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직장인이 저녁 6시에 '칼퇴'를 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친구 또는 동료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합니다. 만나고, 장소 찾고 하다 보면 7시쯤 식사가 시작되겠죠. 주어진 시간은 2시간. 술을 몇 잔 곁들인다고 식사하는데 부족한 시간은 아닙니다. 하지만 식사 후 다른 장소로 이동해 '2차 활동'을 하긴 빠듯하죠. 술자리라면 2차가 어렵고, 식사 후 운동을 하러 가기도,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퇴근 후 저녁 활동이 단순화되는 거죠.
방역 당국이 '밤 9시'를 지키려 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 만난 정부 관계자는 "2차 활동이 생기면 감염 고리가 얽힌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저녁 식사를 함께 한 4명 중 1명이 확진됐습니다. 역학조사가 시작되면, 동석한 3명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됩니다. 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바로 돌아갔다고 하면 역학조사 대상이 되는 동선, 접촉자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단순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해도 마스크를 잘 착용했다면 동승한 승객들도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현재 방역 기준상, 같은 공간에서 2미터 이내에 1시간 같이 체류했더라도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대화가 없는 경우는 일상 접촉자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밤 10시나 그 이후로 시간이 연장되면 이 범위가 넓고 복잡해집니다. 동석한 밀접 접촉자가 식사 후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술을 한잔 했다거나, 집에 가기 전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거나 하면 역학조사의 동선, 대상, 범위가 늘어납니다. 2차에서 술을 함께 마신 사람들, 운동을 하며 접촉한 사람들의 동선까지도 다 역학조사의 대상이 됩니다. 앞선 사례보다 감염의 고리가 좀 더 복잡해집니다.
● 밤 10시는 '타협의 시간'
방역 당국은 이런 이유로 몇 주 전 국회에서 처음 '밤 10시로 연장'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반대했습니다. 1시간만 늦춰도 추가 활동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하지만, 계속 밤 9시를 고집하기엔 영업 제한 업종의 피해와 손실이 커졌습니다. 국민 모두를 위한 방역수칙이긴 하나 그 피해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 쏠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기가 어려워진 겁니다.
산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던 자영업자들은 시민단체와 연계해 조직적으로 정부 방역에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영업자들은 일괄적 영업 규제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규제해야 한다면 최소 자정까지는 영업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반발이 계속 나오는데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런데 지금 상황상 무작정 풀 수도 없다"라며 고민스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5일) 거리두기 조정안 발표 전날, 중대본은 거의 하루 종일 회의를 이어갔습니다. 매일 오전 총리가 주재하고 관계 부처 장관, 시도지사들이 참여하는 중대본 회의 이후에도 실무 단위로 온라인 회의 등을 이어갔습니다. 당일 8뉴스에 논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반영하기 위해 직전까지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직 회의 중'이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지역별로 의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구도 많은 데다 확산세도 줄지 않는 수도권 지자체들은 '풀기 어렵다'라는 입장이 많았고, 비수도권은 '확진자가 줄고 있는데 계속 영업을 규제하니 어렵다'는 입장이 많았습니다. (5일 비수도권 일부 시도는 확진자가 0명이었던 곳도 있습니다.)
권역별로 방침을 달리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곳은 풀어주는데 왜 우리 지역만 안 풀어주느냐라는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형평성에 대한 우려도 바로 제기됐습니다. 결국, 논의를 이어간 끝에 ▲수도권 밤 9시 유지 ▲비수도권 밤 10시로 연장, 단 비수도권 연장 여부는 지자체 자율에 맡긴다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광주광역시는 정부 발표 때까지는 '추후 논의를 거치겠다'고 했다가 당일 오후 "밤 10시로 연장" 지침을 따르겠다고 밝혔습니다.
밤 9시가 정부가 보는 '방역의 시간'이었다면, 밤 10시는 방역적 근거에 의한 결정이라기보단 다양한 이해를 고려한 '타협의 시간'인 셈입니다.
● 일주일마다 거리두기 조정…언제까지 이 혼란 계속될까?
수도권 자영업자분들은 오늘(8일) 새벽부터 개점 시위와 기자회견 등을 이어가며 정부 방역 지침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반발 때문인지 전해철 행정안전부장관(중대본 2차장)은 이날 중대본 회의 모두발언에서 "수도권도 일주일 동안 코로나19 발생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 영업시간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한 사장님은 정부의 이런 발언에 대해 "매일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일주일마다 거리두기 지침이 조정되는 혼란스러운 상황. 이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대전제는 코로나19가 하루속히 확실한 안정세 들어가는 것이겠지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좀 더 촘촘하고 신중한 방역 대책도 분명 필요해 보입니다.
(사진=연합뉴스)
박수진 기자star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