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앞두고 3金과 한자리.. 슐츠 前 국무장관 별세

김태훈 2021. 2. 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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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군부독재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던 1980년대 미국 외교 사령탑인 국무장관을 지내며 한국 등 국제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조지 슐츠 전 미 국무장관이 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학 캠퍼스 내 자택에서 별세했다.

고인의 국무장관 재임 기간은 한국의 5공 전두환정부 시절과 상당 부분 겹치는데,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연일 벌어지는 등 정치적 격동기에 미 국무장관의 한국 관련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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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외무장관실에 셰퍼드 투입.. '외교 결례' 논란
"서울올림픽 안전 개최 협조" 중·소 보장 받아내
1998년 6월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조지 슐츠 전 미 국무장관(왼쪽)이 방미 중이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특강에 배석한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이 군부독재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던 1980년대 미국 외교 사령탑인 국무장관을 지내며 한국 등 국제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조지 슐츠 전 미 국무장관이 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학 캠퍼스 내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0세.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고인은 1920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경제학자 출신으로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MIT와 시카고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최근까지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이자 후버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활동해왔다.

◆韓 외무장관실에 셰퍼드 투입… ‘외교 결례’ 논란

고인은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2년 국무장관으로 발탁돼 1989년까지 무려 7년간 재임했다. 62세에 국무장관을 맡아 70세가 다 돼 은퇴했는데 그 뒤로도 30년 이상 왕성하게 활동한 셈이다. AP통신은 고인을 가리켜 “생존해 있는 역대 정부 전직 내각 각료 중 최고령자”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수 국무장관이었다”고 소개했다.

1980년대 고인의 이름은 국내 언론에도 심심찮게 오르내렸다. 고인의 국무장관 재임 기간은 한국의 5공 전두환정부 시절과 상당 부분 겹치는데,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연일 벌어지는 등 정치적 격동기에 미 국무장관의 한국 관련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 사진은 1992년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1983년 레이건 대통령 방한을 수행하는 등 고인은 국무장관 자격으로 한국을 여러 차례 찾았다. 특히 1986년 5월 방한 당시에는 이른바 ‘셰퍼드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고인이 최광수 당시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앞둔 시점에 미국 경호팀이 회담 장소인 한국 외무장관실에 사전통보 없이 화약탐지용 군견 셰퍼드를 데리고 간 것이다. “철저한 경호를 위해서”라고 했으나 당장 ‘과잉 경호’이자 ‘외교 결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 야당은 “전두환 정권의 굴종적 대미 자세와 미국 정부 오만함의 산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 대사관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지만 분노한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서울올림픽 안전 개최 협조” 중·소 보장 받아내

미 국무장관으로서 한국 민주화에 힘써달라는 요구도 많이 받았다. 당장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경우 상원의원이던 1987년 고인에게 보낸 서한에서 “전두환 정권이 ‘양심수’로 불리는 정치범을 석방하도록 노력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이 1987년 6월항쟁을 겪으며 민주화한 뒤 고인과 한국의 관계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고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민주화로의 이행을 높이 평가했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던 1988년 7월 방한 당시에는 이른바 ‘3김(金)’으로 불리던 김대중(DJ) 평민당 총재, 김영삼(YS) 민주당 총재, 김종필(JP) 공화당 총재와 한꺼번에 만나 오찬을 함께했다. 미국 정치인이 한국에서 DJ·YS·JP 3인과 한 자리에서 회동한 건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당시 오찬에서 고인은 중국 및 소련(현 러시아) 지도자들과 만나 논의한 결과를 설명하며 “서울올림픽의 안전한 개최에 적극 협력할 것이란 다짐을 중·소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1992년 10월 제2회 서울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김용식 서울평화상위원회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패를 들어보이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처럼 한국의 민주화, 그리고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한 공로로 고인은 장관 퇴임 이후인 1992년 제2회 서울평화상을 받았다. 당시 주최 측은 “세계 평화와 인류 화합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1992년 10월 5일 서울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고인은 “지난 30여년간 대한민국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은 유능하고 정력적인 국민에게 자유, 격동 그리고 지도력이 주어진다면 어떠한 일도 성취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잘 보여 주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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