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 몰카 '유죄' 판결에 고심 깊어진 사진가들

김성호 2021. 2. 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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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법원 '유죄' 취지 항소심 파기환송
일상 외출복 촬영에도 성폭력처벌법 적용
동의 안 받는 스트리트 사진가들 고민 커
"동의받으면 맛이 안 살아" 주장 이어져
사진계에선 여전히 '동의 없는 촬영' 多

[파이낸셜뉴스] #1. A씨는 2018년 5월 버스에서 하차를 위해 서 있던 여성 B씨의 뒷모습을 휴대폰 동영상으로 8초간 촬영했다. 당시 B씨는 하의에 레깅스만 입고 있던 상태로, B씨는 촬영사실을 알고 신고했다. 검찰은 A씨의 행위가 성폭력처벌법에 저촉된다고 보고 이를 기소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해 돌려보냈다.
#2. 경력 10년의 전업 사진가 C씨(37)는 최근 친구인 변호사에게 상담을 했다. 자신이 촬영해 지방자치단체 웹사이트에 실린 사진을 보고 그 사진에 나온 여성이 보상을 요구한 탓이다. 이 여성은 지난해 여름 민소매셔츠를 입고 서울시 한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C씨가 이를 무단으로 촬영해 웹사이트에 내걸었다며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레깅스 차림의 여성을 몰래 찍은 남성이 항소심 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아 화제가 된 사건에서 대법원이 항소심을 파기했다.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을 몰래 촬영한 것을 불법으로 규정해 형사 처벌 대상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향후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음에도 성적 대상물로 판단하고, 피해 여성의 “기분이 더럽다”는 표현을 성적 수치심의 표현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기존 판결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거리에서 시민의 일상을 촬영하는 사진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SNS 상에는 각종 쇼핑몰과 유명인 등이 올린 레깅스 사진이 넘쳐난다. 이중 상당수가 레깅스를 일상복처럼 입은 사진들이다. 한 인플루언서 SNS 갈무리.

■레깅스 몰카 '유죄'에 비상 걸린 사진가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거리에서 시민들의 일상과 도시의 풍경을 촬영하는 이른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법률문제가 비화될 조짐이다. 지난달 대법원이 레깅스 차림의 여성을 몰래 촬영한 남성이 기소된 사건을 유죄로 판단하면서다.

일상복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레깅스 차림을 공공장소에서 찍었음에도 형사처벌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유사사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항소심 판결 이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남성이 여성의 하반신을 몰래 찍었음에도 무죄판결을 내린 항소심 재판부에 성감수성 논란이 인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통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그대로 찍었다는 점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 △피해자의 “기분이 더럽다”는 반응을 처벌요건인 ‘성적 수치심’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삼아 무죄로 판결했다. 레깅스가 일상복이란 관점 아래 당시 사진을 판결문에 게재하기까지 했다.

특히 판결시점을 전후해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은 사건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여름철이면 레깅스보다 더 노출부위가 많은 외출복을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촬영할 경우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 유명 사진가 스즈키 다쓰오는 지난해 후지필름과 계약을 맺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동의 없이 촬영하다 논란이 됐다. 온라인 갈무리.

■스트리트·캔디드 포토, 자유냐 불법이냐
당장 신문과 방송, 잡지 촬영기자들과 프리랜서 사진가들의 활동에 비상이 걸렸다. 과거엔 △비일상적 구도로 △노출이 많이 이뤄진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촬영해 △여성의 성적 수치심이 있어야 형사처벌이 됐지만 이번 판결로 그 기준이 크게 내려왔기 때문이다.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촬영한다면 일부 노출만 있는 복장을 촬영했더라도 처벌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성적 수치심 역시 폭넓게 인정되는 상황에서 “기분이 더러워서” 신고했다고 주장하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것이다.

외국계 유명 패션잡지와 협업해 사진을 찍고 있는 D씨(40대)는 “당연히 특정부위만 확대해서 찍고 그런다면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특정되지도 않고 분위기나 패션을 담은 사진까지 막는다면 문제”라며 “‘캔디드 포토’라고 찍힌 사람이 찍힌 줄 모르고 찍힌 사진도 예술로 평가받고 있고 해외에선 공공장소에서 사진예술의 가치가 초상권보다 폭넓게 인정되는 판례도 나오는데, 한국이 후진적으로 가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전했다.

한편 사진가들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외출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촬영돼 유포돼도 좋다고 동의한 게 아니란 주장이다. 대학 사진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사진을 공부하고 있는 김모씨(26)는 “작년에 일본 스즈키 다쓰오라는 사진가가 후지필름 전속계약 맺고 거리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불쾌해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다가 논란이 됐었다”며 “거리에서 특별한 사진을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몰래 기습적으로 찍어야 한다는 건 동의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서 안 그러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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