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연기 흩어지고..7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곳 DMZ
[김효은 대진대학교 DMZ연구원 객원교수]
'비무장지대', 참 역설적인 단어다. 비무장지대는 무장을 하지 않는 지역인데,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팽팽해 오히려 무장지역이 되었다. 또 하나의 역설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기에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자연만이 주인이 되었다.
DMZ의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천연기념물 산양과 고라니가 날렵하게 뛰어다니고, 멧돼지가 먹이를 구하는 모습과 천연기념물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쉬고 있는 평온하고 자유로운 모습 말이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비무장지대는 남북 대치 속에 요새화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세계적인 '긴장 완화' 속에서 비무장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냉전이 해체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2조에서 군사적 신뢰구축의 일환으로 평화적 이용을 합의했다. 초보적 합의이지만 군사 긴장 지역을 평화 지역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은 첫발을 뗐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활성화로 비무장지대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었다. 2007년 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생태계·환경 및 역사유적 공동조사·연구와 평화지대화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방안을 한반도 신뢰구축과 평화번영을 위해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설정했다. DMZ 평화·생태공원 조성, 세계평화공원 조성, 국제평화지대화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DMZ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참여 속에 남북이 비무장지대를 공동 활용하는 것이 평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철원군 김화에는 DMZ 생태평화공원이 있다. 정전 후 60여년 만에 DMZ를 일반에 개방하기 위해 환경부와 국방부(육군 3사단), 철원군이 공동협약을 맺고 탐방코스를 마련했다. 원시 생태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탐방코스는 십자탑 코스(13.1km)와 '용양보 코스(9km)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과 평화, 생태가 공존하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DMZ의 오늘이 숨 쉬고 있다.
한국전쟁 때 격전지 중 한 곳 '철의 삼각지', 그곳에 '사라진 마을 김화마을 이야기'가 있다. 병자호란때 강토를 지켜내고 김화군으로 번창했던 과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전쟁 후 수복지구가 되자 1970년 10월 재향군인 100세대가 생창리에 이주해 재건촌을 이뤘다.
접경지역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변하지 않은 자연만이 아닐 것이다. 전쟁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우리의 다짐이다.
경기북부 지역 사람들을 만나면 어릴 적 한탄강에서 물놀이했다는 추억을 이야기한다. 여름철에는 물놀이 사고도 제법 많았다고 한다. 한탄강(漢灘江)은 '큰 여울의 강'이란 뜻으로 계곡이 깊고 여울이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강원도 평강에서 발원해서 철원, 연천, 포천을 흐른다. 수십만 년 전 화산분출로 형성된 용암대지의 침식작용으로 주상절리와 폭포 등 아름다운 지형과 경관을 지니고 있다.
현무암 협곡의 청정 자연생태를 자랑하는 한탄강이 2020년 7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었다. 2015년에는 한탄·임진강 국가지질공원이 인증(연천, 포천) 받은 후 2017년에는 철원을 포함하여 국가지질공원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생태계를 보유한 지역을 대상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3대 보호지역(생물권보전지역, 세계유산, 세계지질공원) 중 하나다.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은 철원과 경기 포천, 연천 1165 ㎢에 달하며 26곳의 지질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지질공원은 보전만을 위한 지정은 아니다. 세계지질공원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자연과 인간의 지속가능한 공존이다. 관광자원 개발과 지역공동체의 적극적 참여를 중요시한다. 지자체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해설사 안내 프로그램과 문화유산 및 지역 체험 활동, 지역 축제 및 문화행사 연계, 지역협력체 발굴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협력마을, 기념품 판매, 지질관광, 협력 숙소 및 식당 지정 등 지역공동체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한탄강은 갈 때마다 놀랍게 변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지질공원의 가치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일 먼저 다리를 놓은 곳은 포천시다. 드라마에 종종 나왔다는 '하늘다리'다.
연천군도 소박한 다리를 놓았고, 철원군은 최근 은하수교를 자랑하고 있다. 주변을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은 기본이며, 물 바로 위를 걷을 수 있는 부교도 이색적이다. 지역의 역사·문화를 새롭게 발견하며 자연과 함께 여유로움을 느껴보면 좋겠다.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은 강원도 철원군, 경기도 포천시와 연천군이 공동으로 인증받은 만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광역지자체협력도 중요하다.
접경지역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도 등재되었다. 2019년 6월 유네스코는 '강원생태평화 생물권보전지역'과 '연천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을 지정했다. 강원도 철원, 화천, 인제, 양구, 고성 5개 군의 민통선지역 등 비무장지대에 접한 18만 2815㏊(헥타르)와 연천군 전체 5만 5412 ㏊가 해당한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은 각종 개발이나 이용사업을 직접 규제하지는 않지만 국제기구가 인증하는 보호지역에 등재됨으로써 보전지역과 이용지역을 합리적으로 구분하여 토지와 자연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억제하도록 한다. 지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주민들의 자부심과 지역 발전도 병행하면 더욱 좋겠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의 주인공은 선수들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이 '마스코트'다. 88서울올림픽하면 상모 돌리는 '호돌이'가 금방 떠오를 정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흰호랑이(백호)'였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백령도 물범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인천 백령도 두무진에서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즐겁게 살고 있던 점박이물범 삼 남매.
인천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백령도 점박이물범 보호 운동을 시작한 지 20여년이 되었다. 백령도는 황해권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점박이물범이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녹색연합은 2004년부터 백령도 점박이물범 보호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2013년에는 주민들이 '점박이물범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을 만들었고, 2017년 백령중고등학교에는 '점박이물범 생태학교 동아리'가 구성됐다. 2019년 인천녹색연합 내에 특별기구로 황해물범시민사업단을 만들고 2020년 9월에는 백령도에 사무실을 냈다.
백령중고등학교 동아리 학생들은 물범의 생태를 모니터링하고, 해양쓰레기와 해양생태계와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며, 어민들과 물범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한다. 또한 점박이물범의 인지도를 높이고 보호하기 위해 물범이미지를 상품화한 이모티콘을 만들기도 한다.
작년 8월 유례없는 홍수로 주목받은 곳이 있다. 연천군 군남댐이다. 군남홍수조절지는 한탄강 합류점 약 12km 상류의 임진강 본류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홍수조절 전용댐이다. 2006년 10월 착공해 2013년 12월 완공되었다.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높이 26m, 길이 658m이다.
댐 건설과 두루미 보호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계속되었다. 1996년-1998년 임진강 수해 피해가 크자 댐을 건설하기로 한 부지가 여울과 율무 밭이 많아 겨울이 되면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들이 찾아오는 두루미 월동지이기 때문이다. 두루미 외에도 수달, 고라니, 어름치 등 각종 희귀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자연 생태지역이기도 하다.
댐 건설 과정에서 어족 자원 고갈과 두루미 보호 문제가 제기되었다. 연천군 어민들은 마구잡이식 공사로 치어 어류 수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며 공사현장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군남댐으로 상류지역에 위치한 여울이 침수되어 야생동물 서식처가 줄어들고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인위적 먹이주기는 자칫 동물의 야생성을 잃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군남댐과 함께 2011년 10월 두루미 테마파크가 준공됐다. 두루미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으며, 두루미 대체서식지, 어도생태원, 생태습지 등의 환경영향 저감시설이 조성되었다. 서식지를 보호하려는 관계기관들은 협력체계를 구축해 두루미 생태 환경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보호하기로 했다. 2012년 3월 한국수자원공사와 문화재청·연천군·육군 28사단은 '두루미 보호와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개발과 보전, 끊임없는 숙제다. 그러나 자연이 있기에 인간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의 자연, 우리가 흔히 쓰는 '자연스럽다'는 표현처럼, 자연은 그렇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 편에서는 평화를 염원하는 곳, 전망대와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김효은 대진대학교 DMZ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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