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70년기획]⑧ "101살이 돼도 가장 그리운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편집자 주 :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재회하지 못한 이산가족이 5만 명이 넘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시간도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데요.
설을 맞아 그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어머니 혼자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애보기로 보내진 뒤 영영 이별
인터뷰 내내 101세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꼿꼿한 자세와 또랑또랑한 말투를 보여주신 김봉환 할머니. 1919년 3·1 운동이 있고 2년 뒤에 강원도 통천면 금남리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업을 하셨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풍어를 자랑하며 들어온 배가 전복되며 두 분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그 후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6남매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바느질과 부엌일만 알았던 어머니는 마른 생선을 가지고 나가 곡식과 바꾸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집안 살림은 큰 언니 몫, 할머니는 어린 동생들을 보살폈습니다. 둘째 딸이었던 김봉환 할머니는 언니를 돕기에도, 엄마를 따라다니기에도 애매한 나이. 결국, 식구들의 입을 덜려고 16살에 남의 집 애보기로 보내진 뒤 영영 가족과 이별하게 됐습니다.
"내가 여기로(남쪽) 오면서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사시는가 그게 제일 문제더라고요. 다 망했지 돈도 없지. 여자 혼자서 말이야. 아이들을 먹이자니 얼마나 고생하셨겠어요. 그래서 눈물이 나”
해방 전에 삼척까지 내려와 결혼한 뒤 북쪽의 가족을 찾았지만 38선은 굳게 닫히고 6·25전쟁이 터졌습니다. 피란 다니기에 급급하다가 정착해 살 만할 즈음 ‘저는 남쪽에서 잘살고 있어요.’ 이 한마디 북쪽의 어머니께 전하고 싶었지만, 소식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 "한땀 한땀 지은 예쁜 옷 한 벌 전해 드리는 게 마지막 소원입니다"
한복을 잘 지으시던 어머니의 솜씨는 딸이, 그리고 외손녀가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쁜 옷 좋아하고, 예쁘게 옷을 잘 짓습니다. 한때 김봉환 할머니 옷장엔 딸이 만들어 준 알록달록 고운 색의 옷들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모두 북한에 있는 언니 동생에게 주려고 안 입고 남겨둔 것들이었지요.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조차 부질없다는 생각에 시골집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김봉환 할머니. 백 한 살이 되고 보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어머니가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살날이 얼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지지만, 노래와 바느질로 그리움을 달래보는데요. 자식들에게는 항상 예쁜 옷 지어주시면서도 정작 당신은 제대로 된 옷 한 벌 못해 입으셨던 어머니. 한땀 한땀 지은 예쁜 옷 한 벌 전해 드리고 싶은 것이 둘째 딸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공아영 기자 (go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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