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지식카페>아테네 민주정 유지한 힘은 '비극' 관람.. 복수의 파국 보며 포용 깨쳤다

기자 2021. 2. 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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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여신을 모신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전경. 그 아래 내려다보이는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서 재판이 이뤄졌다. 그리스 대법원 이름 ‘아레이오스 파고스’는 여기에서 유래했다. 위키미디어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그림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

■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① 세계 도시의 원형 아테네

‘오레스테이아 3부작’ 등 극장서 공연… 시민들, 적대의 파멸 통해 자비 배우고 갈등조정·격차해소

‘물리적 아테네’ 폐허 됐지만, 민주정-비극 균형 이룬 ‘정신의 아테네’는 여전히 인류 가슴에

인간 존재는 ‘죽다, 넘어서다, 모여 살다’ 셋으로 압축된다. 길어야 100년, 인간의 삶에는 끝이 있다. 영원을 누리는 신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우리의 물리적 생명은 시간의 침습을 받아 죽음으로 향해 간다. 유한성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특징이다.

그러나 인간은 패배자가 아니다. 끝이 있음을 알기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머릿속에서 보는 힘을 익혔다. 꿈꾸고 상상하면서 한 걸음 더,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역량은 우리를 독특하게 한다. 넘어서는 힘은 인간을 창조자로 만든다. 먹지 못할 것을 먹게 하고, 살지 못할 곳에서 살게 하고, 죽을 때를 생명의 시간으로 바꾸어 준다.

인간은 홀로 넘지 못한다. 영웅 숭배는 역설이다. 재앙을 혼자 힘으로 돌파하는 인간의 희소를 상징한다. 인간은 모여 있어야 간신히 넘어선다. 같이 생각하고, 함께 꿈꾸는 법을 찾아낸 후에야 인간은 비로소 자연의 정복자로 등장한다. 라틴어로 공동체를 키비타스(civitas)라고 하는데, 문명(civilization)도, 도시(city)도 모두 이 말에서 유래했다. 도시는 불가능을 어려움으로 바꾸는 인간 최고의 발명품이다. 뭉쳐서 살기 위해 개체들 사이의 차이를 존중하고 갈등을 해결하며, 폭력을 제어하고 모순을 극복하는 기술이야말로 문명의 진짜 엔진이다.

역사상 모든 위대한 도시는 오늘의 삶에도 숙고할 만한 공동 기억을 품고 있다. 한 공동체가 이룩한 ‘모여 삶’의 원리는 사상에 담기고, 체험의 정수는 문학에 남는다. 역사는 말한다. 문명은 공동의 윤리를 퍼뜨렸을 때 번영하고, 그 윤리를 저버렸을 때 파멸했다. 그러나 물리적 도시는 사라질지라도, 정신적 도시는 소멸하지 않는다. 문명의 유전자에 새겨져 이어지면서, 공동체가 위기에 빠지고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곁으로 되돌아온다.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인 서구 문명의 고향 아테네는 이를 잘 보여준다.

기원전 500년 무렵, 그리스 중앙의 소도시 아테네가 역사의 중심에 등장했다. 기원전 594년 현자인 솔론에서 시작돼 페이시스트라토스와 히피아스가 이어받고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으로 일단락된 데모크라티아(democratia·민주정) 실시가 계기였다. 다수 인구를 차지하나 보유 재산은 별로 없는 데모스의 지배를 관철한 일련의 개혁 정책은 아테네가 위치한 아티카 지역 거주민 전체에 드높은 정신적 자부와 함께 강렬한 주인의식을 불어넣었다.

대제국 페르시아와 싸워서 이긴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 전투,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은 결국 민주정의 승리이기도 했다. 희랍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는 ‘페르시아인들’에서 아테네 정신의 정수를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그들은 누구의 노예로도, 누구의 신하로도 불리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동등성에 바탕을 둔 자유의 공동체, 이것이 아테네 번영의 비밀이었다.

제도를 움직이는 것은 공감이다. 아테네에는 자유와 공동체를 양립시키는 정신의 힘이 있었다. 빈번한 내전을 유발했던 부자와 빈자, 보수와 진보, 특권과 의무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격차를 극복하는 비결이 있었다. 각자가 주인인 ‘나 잘난’의 세계에서 아테네 시민들은 혐오와 폭력을 억제하고 우애와 헌신을 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정서를 창조해 냈다. 그 수단은 ‘판아테나이아’ 축제였고, 극한까지 끌어낸 육체적·정신적 덕성(arete)을 칭송하는 경기였으며, 비극 공연을 통해 공동체 문제를 집약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극장이었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아테네 문화의 절정기에 쓰였다. ‘아가멤논’ ‘제주(祭酒)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로 이루어진 이 비극으로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58년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오레스테이아’는 아가멤논 가문에서 일어난 연속 복수 살인을 다룬다. 비극은 트로이전쟁과 함께 시작된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저주로 인해 출정을 위한 바닷바람이 불지 않자, 아가멤논은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 여신의 분노를 달랜다. 아버지가 욕망(정치적 명분)을 위해 딸을 살해하는, 강자가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야만의 세계가 이 장대한 비극의 출발이다.

‘아가멤논’은 트로이전쟁에서 아가멤논이 개선하는 날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딸의 복수를 꿈꾸어 온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욕조에서 전쟁에 지친 몸을 달래는 아가멤논을 도끼로 쳐 죽인다. 그녀는 “딸아이를 위해 복수하신 정의의 여신에게 바치기 위해 이 자를 도살”했다고 자신을 정당화한 후, 항의하는 시민들(코러스)한테 “그대들의 행동이 고통을 가져다주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한다. 정의가 폭력으로 실현되고 여론이 무참히 억압당하는 폭정의 시대가 열린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은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의 귀향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의 처지는 진퇴양난이다. 아폴론은 신탁을 내려서 그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행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복수 대상은 친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 누나 엘렉트라의 부추김을 받은 오레스테스는 복수를 행하기로 선택한 후, “내가 아니라 당신이 당신을 죽이는 것”이라면서 어머니를 처단한다. 이유는 셋이다. “신의 명령”과 “아버지에 대한 애도”와 “재산을 잃어 생긴 막심한 고생”이다. 둘은 명분이고, 하나가 진짜다. 신이 허락한 정의가 삿된 복수로 타락하는 순간이다. 이 때문인지 오레스테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정신이 나간 채 세상을 떠돈다. 질서가 회복되지 못하고,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야만의 세계가 지속된다.

세 번째 비극 ‘자비로운 여신들’의 무대는 아테네다.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던 오레스테스는 아테네 신전을 찾아와서 무죄를 탄원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재촉을 받은 여신들은 “무서운 입김과 함께 피를 내뿜으며” 그를 몰아친다. 해결이 무척 어렵다. 친족 살해의 죄를 묻겠다는 복수의 여신들과 아버지 복수를 위한 정당한 행동이라는 오레스테스·아폴론이 팽팽히 맞선다. 보복 살인에 집착하는 복수의 여신들은 공동체 유지를 방해한다. 피의 악순환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용서는 불의의 지속에 불과하다. 아테네 여신은 ‘배심원 재판’이라는 문명의 형식을 발명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벗어난다. 치열한 변론 끝에 오레스테스는 무죄로 방면되고, 복수의 여신들은 아테네 시민들이 마련한 신전에서 자비의 여신으로 거듭난다.

재판이란, 사적 복수를 공적 정의로 바꾸는 방법이다. 내면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복수에 집착하고 적대를 표출하는 시민들을 향해 아이스킬로스는 호소한다. “재앙에 물리지 않는 당파 싸움이 이 도시에서 미쳐 날뛰는 일이 없기를! 이 도시의 흙먼지가 시민들의 피를 마시고는 복수심에 불타 보복 살인에 의한 재앙을 반기는 일이 없기를!” 복수를 자비로 전환하는 장치가 없는 한, 공동체는 지속될 수 없다. 사소한 다툼이 증오와 보복의 무한한 실행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이아’는 적대와 복수의 정의를 폐기함으로써 신의 뜻이 포용과 자비의 정의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극의 영웅들은 모두 과도한 욕망으로 인해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스스로는 운명적 파멸을 맞는다. 아가멤논 가문에 복수의 악무한을 일으킨 것은 딸과 함께 누리는 행복 대신 영웅이 되고 싶다는 그의 선택이었다. 신분·재산·능력을 과시하는 오만(hybris)은 영웅의 눈을 가려 재앙을 부르고, 모두가 우러르던 고귀한 자를 몰락시킨다. ‘오이디푸스왕’에서 소포클레스는 말한다.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마시오.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돼 삶의 종말에 이르기 전엔.” 비극을 통해 순간의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인간 삶의 격변에 공포와 연민을 느끼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자기 자유를 돌보는 덕성을 함양하고 공동체의 무너진 질서를 회복할 것을 다짐하는 정신적 성숙을 이루어 냈다.

민주정이라는 현실의 아테네는 비극이라는 정신의 아테네 없이 작동할 수 없었다. 신전이 있던 높은 도시 아크로폴리스, 민회가 열렸던 광장 아고라, 시민을 위한 정치 학교 디오니소스 극장 등 물리적 도시 아테네는 오래전에 폐허가 됐다. 그러나 민주정과 비극이 균형을 이룬 정신의 도시 아테네는 인류 가슴에 터전을 잡고, 시간이 갈수록 영토를 넓혀 근대 이후 여러 세계 도시의 원형이 됐다.

문학평론가

△장은수 = 문학·출판평론가, 읽기 중독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문학과 인문학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해왔다. 저서로 ‘출판의 미래’ ‘같이 읽고 함께 살다’ ‘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공저) 등이 있으며, ‘기억 전달자’ ‘고릴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용어설명

희랍 비극 : 비극은 아테네 민주정과 운명을 같이했다. 살라미스 해전 이후, 아테네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들을 배경으로 하는 페이시스트라토스, 페리클레스 등의 지원을 받아서 융성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460년∼기원전 400년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이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공연되면서 절정에 올랐다. 민주정이 작동하려면 대부분 문맹이었던 시민들에게 공동체 문제를 이해시키는 정치 학습이 필요했고, 사흘 동안 펼쳐지는 비극 공연이 그 역할을 떠맡았다. 비극 관람을 통해 시민들은 공동의 가치를 연습하고, 고상한 감성을 계발했다.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하면서 비극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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