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의 아버지가 된 아우디 엔지니어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2021. 2. 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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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의 온차이나]
완강 전 과기부 장관, 비공산당원 출신 장관으로 11년 장수하며 '전기차 르네상스' 이끌어..블룸버그, "진정한 전기차 선지자는 머스크가 아니라 완강"

작년 중국 전기차 시장 성적표가 나왔습니다. 2019년보다 10.9%가 늘어난 136만7000대가 팔렸다고 하네요.

2019년에는 보조금 축소의 영향으로 2018년보다 4.0% 감소한 120만6000대를 기록했죠. 작년 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까지 터져서 판매 감소 추세가 더 가팔랐습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당초 2020년으로 잡은 보조금 지급, 취득세 면제 종료 시점을 2022년까지 2년 연장하기로 했죠. 그러자 다시 판매가 급증했습니다.

◇막오른 전기차 르네상스...개인 구매 비중 72%

질적인 측면에서도 좋아졌어요. 전기차 판매 물량의 72%를 개인 소비자들이 구입한 겁니다. 공공기관 차량과 영업용 차량 중심이었던 전기차 시장이 개인 중심으로 변해간다는 신호죠.

공급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습니다. 그동안은 테슬라, 비야디 같은 전기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을 주도했는데, 이젠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뛰어들고 있어요.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기차 가격도 내려가고 있습니다. 테슬라 중국 공장은 올해 미국산보다 30%나 저렴한 모델 Y를 내놓겠다고 했죠.

요즘 중국 전기차 시장을 보고 있으면 자가용 붐이 불었던 2000년대 후반을 떠올리게 됩니다. 고속 성장 단계에 접어드는 전기차 르네상스가 시작된 거죠. 2025년 정도면 정부 보조금 없이도 엔진 자동차와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전기차 시장화에 성공하게 되는 거죠.

중국 자동차업계는 올해 신에너지 차량 판매 대수가 180만대 정도 될 것으로 봐요. 테슬라의 중국산 모델 Y가 15만대 가량 팔리면서 전기차 시장의 르네상스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독일 자동차 엘리트가 된 반혁명분자의 아들

중국 전기차 시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완강(萬鋼·69)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입니다. 그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1년 동안 과기부장관으로 있으면서 오늘날 중국 전기차 시장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이죠.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전기차의 진정한 선지자는 엘론 머스크가 아니라 완강이다’ ‘중국 전기차산업의 아버지’라고 그를 평가했습니다.

상하이 출신인 완강은 문화대혁명의 피해자였죠. 부모는 반혁명분자로 몰렸고, 그는 1970년 불과 18살의 나이에 동북의 옌볜조선족자치주로 하방을 당했습니다. 그곳에서 농민들과 함께 농사 짓고, 연기 풀풀 나는 트랙터 고치면서 5년을 보냈죠. 어린 나이에도 똑똑하고 성실했던 덕분에 1974년 마을 공산당 지부가 그를 생산대장으로 임명했답니다. 그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반혁명분자라는 걸 알고 날 임명하는 겁니까”라고 묻자 마을 당서기는 “벌써 알고 있지만 일 잘하니까 뽑은 거야, 마을 사람들의 안목은 못 속여. 기죽지 마”라고 했다죠.

1975년에는 공농병 학생으로 추천을 받아 동북임업대학 도로교량과에 입학합니다. 1979년에는 고향 상하이로 돌아와 퉁지대학 공대 석사 과정에 들어가죠. 석사 과정을 마치고 강사 생활을 하다 1984년 세계은행 장학금을 받고 독일 클라우스탈 공대로 유학을 떠납니다.

6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자동차 소음 감소 기술에 관한 논문을 썼다죠. 이 연구 결과는 폴크스바겐이 그대로 채용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나중에 클라우스탈공대가 있는 니더작센주 정부로부터 철십자 훈장까지 받았어요.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의 소형 전기차 세단 비야디친. 작년 중국 베스트셀러 전기차 중 하나이다. /비야디

◇아우디서 10년 근무 후 돌연 귀국

1991년 아우디에 엔지니어로 입사한 그는 탄탄대로를 달렸습니다. 자동차 개발, 도색 공정 등 주요 분야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고 해요. 1998년에는 독일 자동차업계가 뽑은 10명의 엘리트 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했답니다.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죠.

부인, 딸과 함께 윤택한 삶을 누리던 완강은 2000년 돌연 귀국합니다. 중국의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이유였어요.

상하이 퉁지대학 총장 시절의 완강 전 중국 과기부 장관. /상하이정협

그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 친환경자동차 개발에 집중할 것을 정부에 제안합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강국들이 즐비해서 아무리 해도 못따라가니 아예 전기차로 ‘월반’을 하자는 거죠.

모교인 퉁지 대학에 돌아와 중국 최초로 수소 연료전지차 개발에 성공한 그는 퉁지대 총장을 거쳐 2007년 과기부 부장(장관)에 임명됩니다. 그는 귀국하면서 해외 화교 엘리트들이 주로 가입하는 치공당에 입당했죠. 비공산당원이 장관에 임명된 된 건 35년만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원자바오 총리와 리커창 부총리가 그를 적극 지지했다고 해요.

◇열정과 뚝심으로 만든 기적

장관이 된 후 완강은 매년 10개 도시를 선정해 1000대의 전기차를 보급하는 ‘십성천량(十省千輛)’ 정책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전기차 시장을 넓혔습니다. 초기만 해도 전기차 보급이 생각만큼 늘지 않아 회의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는 2020년까지 전기차 누적 보급대수를 500만대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주도면밀하게 정책을 밀어붙여 오늘날 중국 전기차 시장을 만들어냈습니다.

완강이 중국으로 돌아온 2000년만 해도 해외로 유학을 가 자리를 잡은 이들은 귀국하지 않는 분위기였다죠. 왜 그런지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중국의 공산당 독재 체제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이런 모습은 참 부러워요. 아우디에서 보장된 길을 아낌없이 버리고 중국으로 돌아온 완강의 열정, 전기차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인데도 그의 실력과 열정을 믿고 일관되게 밀어준 중국 최고지도부의 뚝심이 지금 세계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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