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야기] '디지털 다윗'에 당하던 골리앗이 변하기 시작했다

2021. 2. 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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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4차 산업혁명과기업경쟁


거인인 골리앗은 양치기 소년 다윗의 돌멩이에 쓰러졌다. 골리앗은 청동투구를 쓰고 전신 갑옷을 둘렀으며, 키가 무려 210㎝에 달했다. 갑옷은 그 무게가 45㎏을 충분히 넘었으며, 적의 방패와 갑옷을 한 번에 뚫을 수 있는 창과 칼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다윗은 양치기 지팡이와 매끄러운 돌 다섯 개가 전부였다. 이후의 이야기는 알려진 바와 같다. 가죽 투석주머니로 들어간 다윗의 돌멩이는 투구 사이에 노출된 골리앗의 이마로 향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다윗은 기절한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목을 베었다.

 디지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모든 원자가 비트로 전환되는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면서 기존 기업들의 운명은 골리앗과 다르지 않았다. 디지털 역량으로 무장한 스타트업에 용맹하게 대항했지만 형편없는 시야와 부족한 상상력 탓에 날아오는 돌멩이를 피하지 못했다. DVD 대여점이었던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에 의해 사라지고, 애플의 등장으로 노키아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아마존의 등장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소매점이 문을 닫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디지털 전장에서 재현된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전장은 3000년 전 엘리의 계곡과는 달랐다. 골리앗들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기업들은 디지털 다윗에 의해 전통적인 경쟁자들이 쓰러지고, 업계의 질서가 재편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전략과 전술, 도구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기존 기업이 이제는 어떻게 저들과 같은 전략과 전술을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조직 차원을 넘어 구성원 개개인 역시 급변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골리앗의 변화

미국의 자동차회사 GM은 달라지는 골리앗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대기업에 의한 최초의 전기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1996년, GM의 EV1이었다. EV1은 테슬라의 전기자동차인 모델S보다 16년 앞선 시도였다. EV1 자체만으로는 대실패였지만, 이는 2010년 하이브리드카인 셰비 볼트(Chevy Volt)와 2016년 완전 전기자동차인 셰비 볼트(Chevy Bolt)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GM은 공유서비스에도 적극적이다. 차량공유 부문에서 GM은 자금난으로 문을 닫은 승차공유 기업 ‘사이드카’를 2016년 인수했다. 이를 활용해 시간단위로 차량을 빌릴 수 있는 ‘메이븐’ 서비스를 출시했다. 당시 55억달러의 시장가치로 평가되던 승차공유 기업 리프트에도 5억달러를 투자했다. 자동차 제조와 판매에 익숙한 GM의 많은 주주들은 이 결정에 못마땅해했지만, 이후 구글이 리프트에 10억달러를 투자하면서 GM의 투자수익은 21개월 만에 두 배가 됐다. 자동차 구매에서 승차구매로의 변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된 것이다.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은 GM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산업부문에서 많은 기업이 디지털 다윗을 경쟁상대로 인정하고 맞서 싸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 노력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조직 차원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3000년 전 다윗의 돌멩이가 오늘날 데이터와 인공지능임을 깨닫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기존 기업은 자신들이 보유한 데이터 자산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보유할수록 더 많은 알고리즘 우위를 획득할 수 있고, 이는 다시 더 많은 데이터 축적으로 이어진다. 이는 핵심사업을 디지털 다윗에 뺏기지 않는 한편 인접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원자재가 됨을 깨달았다. 이뿐만 아니라 대기업은 큰 혁신과 작은 혁신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이해했다. 재정적 능력이 부족한 디지털 다윗과 달리 혁신의 우선순위를 정함에 있어 제약이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대기업이 가진 막대한 자금력은 GE의 인공지능 플랫폼인 프레딕스나 BBVA의 대규모 디지털 뱅킹처럼 과감한 하향식 혁신의 근간이 된다. 동시에 디지털 다윗기업들의 장점인 상향식 혁신을 도입할 수 있다. 직원에게 혁신에 대한 권한을 부여해 조직의 리더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

많은 기업이 디지털 다윗의 전략을 배워가고 있지만, 여전히 더 많은 기업에서 디지털 전환이 하나의 선언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질적이거나 본질적인 변화 없이 겉에 보이는 디지털화에 집중한다. 본질적인 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존 강자들이 디지털 변혁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현재의 비즈니스를 잠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탓이다. 선언적인 외침만으로 디지털 역량으로 무장한 작고 빠른 경쟁자를 이겨낼 수 없다.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하고도 필름산업의 잠식을 우려해 상업화를 포기한 코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기존기업은 현명한 자기잠식을 통해 안정과 변화의 균형을 유지할 힘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면서도 인적 및 금융 자본을 별도의 채널에서 조달하는 모습들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변화된 환경에 맞게 비즈니스를 재정의하고 기업의 목표부터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디지털 다윗들은 매일 각성하고 고객과 직원, 주주들의 마음을 빼앗아오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이 너무 강력해져 대적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답을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 갑자기’ 파산한다는 헤밍웨이의 통찰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본질적인 변화를 통해 디지털 전환을 주도할 때 디지털 다윗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 포인트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디지털이 경쟁 질서의 재편 불러와
대기업도 기존 기업의 장점 활용
디지털 혁신 대열에 가세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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