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신공항, 10조원짜리 청구서
2020년 한가위에 이어 이번 설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국가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직계가족이더라도 거주지가 다르면 꼭 4명까지만 모여야 합니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직후여서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2020년 설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입춘이 지났어도 아직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향 부모님 뵈러 가는 길은 조심스럽고, 자식들 얼굴 보러 움직이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젠 ‘민족 대이동’이란 말도 농경사회 유물로 남을 판입니다.
그래서 <한겨레21>이 ‘우동뉴스’(우리동네뉴스)를 준비했습니다. 명절에도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한겨레> 전국부 소속 기자 14명이 우리 동네의 따끈한 소식을 친절하고 맛깔스럽게 들려줍니다. 고향 소식에 목마른 독자에게 ‘꽃소식’이 되길 바랍니다. _편집자주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2002년부터 논의가 본격화됐음에도 오랫동안 사업이 추진되지 못하고 국가적·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초래하고 있으므로 신속히 사업 추진 방향을 확정하여 신공항 건설과 관련한 논란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음.”(찬성 의견)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의 입지를 법률 제정을 통해 결정하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특별법 제정을 통해 동남권 신공항의 입지를 가덕도로 결정하면 향후에도 특별법 제정으로 사회간접자본을 유치하려는 시도가 발생할 수 있음.”(반대 의견)
(2021년 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안’ 검토 보고)
정당 대 행정부, 부산·경남·울산 대 대구·경북 논란
가덕도 신공항 논란에 불이 댕겨졌다. 통상 논쟁적인 이슈는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진다. 그러나 가덕도 신공항 논란은 여-야 사이가 아니라, 여야 정당 대 행정부, 부산·경남·울산 대 대구·경북 사이에서 불이 붙었다. 이 이슈는 2021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깊은 관계가 있고, 전통적인 영남-호남 갈등이 아니라 영남권 내부 갈등이라는 성격도 띤다.
현재 가덕도 신공항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관련 특별법 제정 여부다. 일반적인 공항 건설 절차는 사전타당성 검토와 입지 선정,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등을 거쳐 기본계획과 실시계획을 세우게 돼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환경부 장관)과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2020년 11월 각각 대표 발의한 특별법에 따르면, 가덕도 신공항은 사전타당성 검토와 입지 선정, 예타 조사 등을 면제하거나 단축하도록 돼 있다.
여야가 이런 파격적인 특별법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사업이 지난 15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는 데 있다. 영남권 신공항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타당성 검토’를 지시한 이후 2007년·2010년·2013년·2016년·2019년 다섯 차례 걸쳐 사전타당성과 입지, 항공 수요 등을 검토했다. 박동석 부산시 신공항추진본부장은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다시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이미 다섯 차례 이상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업 타당성과 비용 대비 편익(B/C)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반대하는 쪽에선 이런 검토가 이 특별법에 포함된 입지 선정과 예타 조사 면제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2016년 입지 평가에선 가덕도(4~5위)가 김해(1위)와 밀양(2~3위)에 이어 최하위였다. 사업 비용이 많이 들고, 절토·매립 등 공사 위험이 크며, 대구·경북 지역에서 너무 멀고, 김해공항과 너무 가깝다는 등이 이유였다. 또 2019년 검증위 조사에선 김해 신공항 사업의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입지를 가덕도로 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김해 신공항 사업도 아직 취소되지 않아
신공항 입지를 다시 결정하려면 가덕도뿐 아니라, 근본 검토를 요구받은 김해 신공항이나 2016년 입지 평가에서 2~3위를 차지한 밀양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대구시 서덕찬 통합신공항건설본부장은 “검증위 결론에 따르면, 김해 신공항은 백지화된 것이 아니라 국토교통부가 ‘근본적 검토’ 중이다. 국토부가 김해를 유지할지, 다른 입지로 바꿀지 결론을 내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특별법으로 예타 조사를 면제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많다. 기본적으로 예타 조사를 하지 않으면 해당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의 타당성 여부도 모르고 최소 7조5천억원, 많게는 10조원 이상의 사업을 벌이는 건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선거를 앞뒀다고 이렇게 무모하게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예타 조사 면제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도 “비용 대비 편익이 1이 안 돼도 필요하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예타 조사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해당 사업의 결과를 평가할 수 없다. 예타 조사 면제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해 신공항 사업이 아직 취소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김해 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은 둘 중 하나만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검증위의 결론에 따라 정부는 현재 김해 신공항 사업을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김해의 운명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덕도를 추진하는 건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관련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환경부, 법무부 등은 모두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유보적이다.
민주당 2월 임시국회에서 특별법 통과 예정
한정애, 박수영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2월3일 국회 국토교통위에 상정됐다. 민주당은 부산시장 선거를 치르려면 2월 임시국회 안에 이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애초 당내 의견이 갈렸던 국민의힘도 특별법 처리에 사실상 동의한 상황이다.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또 하나의 거대한 토건 인프라 사업이 시민들에게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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