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당해도 '쉬쉬'..말하지 못하는 노인, 편견에 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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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봉한 영화 '69세'의 사례다.
■ 고령자라고 예외?증가하는 노인 성폭력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60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6월 전남에선 노인 여성을 대상으로만 5건의 성폭력을 저지른 50대 남성이 긴급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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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편견에 성폭력 피해 숨기기 바빠
#. A씨(69·여성)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0대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는 고민 끝에 경찰에 신고했지만 고령자라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젊은 남성이 설마 노인 여성을 성폭행하겠냐는 시선 탓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69세'의 사례다. 영화는 69세 여성이 29세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 겪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69세'는 현실성이 없는 내용이라며 '평점 테러'까지 당했으나, 단지 영화 속 일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노인 성폭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어서다.
■ 고령자라고 예외?…증가하는 노인 성폭력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60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60세 이상 노인 대상 성범죄 검거 현황을 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3442건의 노인 성범죄가 발생했다.
2015년 565건, 2016년 599건, 2017년 698건, 2018년 765건, 2019년 815건으로 최근 5년간 44.2%나 증가했다. 범죄 유형별로는 강간·강제추행이 3185건(92.5%)으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일례로 지난해 6월 전남에선 노인 여성을 대상으로만 5건의 성폭력을 저지른 50대 남성이 긴급체포됐다. 2018년 서울 종로구에서는 쪽방촌에 홀로 사는 90세 노인을 성폭행한 40대 남성이 구속됐고, 2017년 전남에선 이웃에 사는 70대 노인을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30대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 방송을 통해 마을 이장에게 5년간 성폭행을 당했다는 85세 노인의 사건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노인은 고심 끝에 마을 이장 박씨를 고소했지만 사건은 불기소 처분 됐다.
증거로 제출한 CCTV 화면에 피해자가 저항하는 모습이 명확히 담기지 않았고 할머니의 진술이 자녀의 개입으로 오염됐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서 박씨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이날까지 4만8000여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 "신고율 낮은 독거노인…범죄 대상되기 쉬워"
문제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가 쉽사리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피해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실장은 "고령자일수록 사건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 범죄데이터만 가지고 노인 성범죄를 이야기하긴 어렵다"라며 "최근에는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노인 성범죄의 암수는 여전히 많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성범죄는 피해자의 연령이나 외모·옷차림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며 "홀로 사는 노인은 신고율이 낮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고, 이를 악용해 반복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례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과거 정조 개념 때문에 성폭력을 당해도 자신이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 '해선 안 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노인이 적지 않다"라며 "어렵게 사실을 알려도 증거가 없거나 믿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피해자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 성폭력은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성폭력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주변인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성폭력을 전담으로 하는 한 일선 경찰 관계자는 "노인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고 구체적인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주변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라며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란 여성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전했다.
이어 "수사 과정에선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고, 진술은 한번으로 끝내 정신적 고통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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