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언제 몇 채 들어서는지 몰라 미지상태서 신규 규제 여럿 만들어 공급 확대 시그널 대신 부작용 양산 변창흠 "서울 도심서 공급 물량 충분 성공사례땐 참여 더 늘 것" 주장 불구 오판땐 공급량 현저하게 줄 우려도 재건축·재개발단지 이해 득실 제각각 '사업성 우선시' 강남권 반응 시큰둥 '개발 좌초' 옛 뉴타운은 호응도 높아
지난 4일 발표된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2·4대책)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면제와 사업기간 단축, 시장 참여자 인센티브 강화 등의 방안이 포함돼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4대책에 넣은 83만6000가구라는 파격적 물량은 현재까지 확정된 곳이 하나 없는 ‘허수’라는 문제가 불거졌다. 공공시행 도시정비사업 추진에 따른 개인 재산권 침해와 ‘거래절벽’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쏟아진다. 이렇게 되면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강력한 공급 ‘시그널’을 주려던 정부 정책 취지가 훼손되고, 특단의 대책에 의한 집값 안정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했던 시장의 기대도 꺾일 수밖에 없다. 이에 세계일보는 2·4 대책이 낳은 문제점을 진단하고 장기적인 주택시장 안정을 도모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물을 2회에 걸쳐 보도한다.
“실제 공급 확정 지역과 물량이 아닌 추정치만 발표한 부동산 대책은 처음 봤다. 신뢰가 가지 않는다.”
지난 4일 발표된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2·4대책)을 살펴본 한 주택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정부가 2·4대책에서 밝힌 공급 규모는 총 83만6000가구다. 서울에서만 32만가구로, 이는 2018년 9·21대책에서 발표된 수도권 3기 신도시 총량 30만가구보다도 많다. 문제는 이들 주택이 어디에 언제 몇 채씩 들어서는지 확정된 게 현재까지 하나도 없다는 데 있다. ‘허수기반 대책’ 등의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정부는 이처럼 공급 물량은 ‘미지’의 상태인데, 새로운 주택공급 방안에 적용할 신규 규제를 여럿 만들어 시장 불안을 가중했다. 현금청산 등으로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없는 수요는 기존의 신축 아파트로 몰려 ‘풍선효과’를 부르고, 정부를 믿고 대대적 공급 물량을 기다리는 수요는 전월세난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집값 안정을 위한 공급 확대 신호를 보내려던 정부 대책이 의도와 달리 불필요한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해 2·4대책에 대해 “서울 도심에서 충분한 양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변 장관은 “서울에 2025년까지 32만3000호를 공급한다는 것은 부지확보를 기준으로 한 것이지만, (공급 목표를)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재건축·재개발사업) 성공사례가 나오면 참여율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공급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해 정부가 상황을 오판했을 경우 공급량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정부가 동참할 것으로 잡은 25% 조합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으면 공급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민 4분의 3 이상 동의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로 재개발 등의 추진요건을 완화한 것 역시 3분의 1의 요구로 정비사업의 해제를 할 수 있는 법과 충돌할 경우 무력화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민간자발의 공급 의지에 따라 향후 주택공급 총량이 변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가 목표로 한 공급량과 공급 효과의 변수는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재건축·재개발 추진 단지 반응도 이해득실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사업성을 우선시하는 강남권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한 조합원은 “정부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면제 등 인센티브를 많이 준다고 하지만 대다수 주민은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재개발이 좌초된 옛 뉴타운 지역 등은 호응도가 높다. 2017년 뉴타운에서 해제된 서울 성북5구역의 모현숙 주민대표(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번 대책으로 빠른 사업 추진이 가능해지고 정부가 수익성까지 보장한다고 하니 주민들이 대환영하는 분위기”라며 “우리 지역은 주거환경개선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개발 수단은 중요치 않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2·4대책에서 정부가 약속한 주택공급이 실행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어야 할 시장 불안에 대한 걱정도 많다. 대책 발표일 이후 개발사업 지역의 부동산을 취득하면 분양권을 주지 않고 현금청산한다는 방침에 재산권 침해 문제가 제기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업지 지정 전 매입자에게 현금청산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사업 후보지 중 거래가 빈번한 곳이 최종 선정되는 것을 최소화해 현금청산 대상자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위헌 논란에 대해선 “대책을 준비하면서 이미 법률 검토를 거쳐 위헌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거래절벽’도 우려된다. 서울에서만 222곳에 달한다는 사업 후보지가 미공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지역을 피해서 집을 사는 것이 컴퓨터 ‘지뢰 찾기’ 게임에서 지뢰를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국토부 홈페이지와 인터넷 포털 부동산 카페 등에는 “아직 공공정비사업 대상지가 한 곳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피해서 집을 사란 말이냐”는 등의 항의성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 주택 매수세는 공공개발 가능성이 낮은 곳을 찾아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해당 지역의 집값이 뛰는 ‘풍선효과’가 불가피해진다. 대표적인 곳이 신축 아파트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한 신축 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사 대표는 “대책이 나온 뒤 매도가를 올리려는 집주인의 문의가 많이 온다”며 “기존 입주권 문제로 기존 재건축·재개발단지 거래가 당분간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에 매도 우위세가 더욱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세시장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이미 3기 신도시 사전 청약 대기수요가 대거 유입된 상황에서 서울 도심권 곳곳에서 다양한 규모의 개발사업이 진행될 경우 이주수요가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에 공공분양 주택에 추첨제를 도입하면서 이를 노리는 대기수요도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청약 대기자가 발생하면서 전세수요가 늘어나고, 또한 재건축이 활발하게 되면 이주수요 발생으로 전셋값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 앞으로 전세시장 안정화를 위한 추가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 밖의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2·4대책 기조 전반이 흔들리거나 실행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나경원 전 의원은 현 정부와 달리 ‘민간주도’ 대책의 추진을 공언했다. 재건축·재개발사업 규제 완화 등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야당 유력 주자인 안철수 후보도 “주택 건설은 기본적으로 민간의 주도로, 주민의 참여로 추진돼야 참여율도 높아지고 사업이 끝난 후 재정착률도 높아진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