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누구보다 엄격한 자기검열 필요" [탐사기획-법관징계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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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다들 조용히 좀 하고 나가라고 했죠. 그런데 그러기 싫더라고요."
지난달 12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만난 이선희(72) 변호사는 '1호 징계 판사'라는 낙인이 찍힌 데 대해 "부당한 징계였다"고 말했다.
법관 징계는 당시로선 '일대 사건'이었다.
법조계와 언론에선 '백년사법 첫 징계자'라며 수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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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선거 운동 도왔다고 감봉 6개월
주위서 조용히 좀 하고 나가라고 압박
끝까지 버텨.. 스스로 떳떳했기 때문"
징계 받은 후 '부부는 예외'로 법 개정
지난달 12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만난 이선희(72) 변호사는 ‘1호 징계 판사’라는 낙인이 찍힌 데 대해 “부당한 징계였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인 고 이해봉 의원의 대구시장 선거를 도왔다가 ‘법원 위신 실추’를 이유로 1995년 8월 감봉 6개월을 받았다. 법관 징계는 당시로선 ‘일대 사건’이었다. 법조계와 언론에선 ‘백년사법 첫 징계자’라며 수군댔다. 그는 반발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공직선거법 처벌 규정에 ‘부부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없었어요. 입법 미비 상태였던 셈이죠. 제가 법원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난 직후(1995년 12월) 법이 고쳐졌습니다.”
‘물의’를 일으키면 조용히 퇴장하는 게 관례였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여자가 무슨 판사를 하느냐”는 성차별적 비난까지 공공연했다. 더구나 그는 법원 주류였던 서울대 출신도, 수도권 태생도, 남성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끝까지 버텼을까.
“저도 부담감이 컸죠. 주변에서는 ‘가정법원 판사 했으니 변호사로 돈 잘 벌 텐데 왜 버티냐’고 했어요. ‘판사인 당신마저 말을 못하면 어느 여성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느냐’던 지인의 말이 힘이 됐죠.”
그는 “언제까지 있을 겐가”라고 묻는 윤관 당시 대법원장의 말에 “있고 싶을 때까지 있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징계 이후인 2001년 그는 기존 판례를 거스르고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판결을 내려 이목을 모았다. 사람들은 “승진을 포기하니 저런다”고 쑥덕였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인사 불이익을 받진 않았다고 했다. 사법연수원 교수로 4년간 후배들을 가르쳤고, 퇴직 후에는 초대 양육비이행관리원장에 올랐다.
그는 이를 “스스로에게 떳떳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법관은 이 사회 어느 누구보다 엄격한 자기검열이 필요해요.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놓고 남의 잘잘못을 따질 순 없죠. 항상 거울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랍니다.”
법조팀=송은아·김선영·이창수·이창훈·이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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